자유당의 이승만 후보와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가 맞붙었던 1956년 대선의 투표율은 무려 94.4%. 그 당시엔 교통이 불편해서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1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서 투표소에 갔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70이상의 노인들도 노구를 이끌고 먼길을 걸어서 투표장에 나왔다고 하니 대단한 정신이지요.문맹자들은 후보자의 번호를 외워서 투표했습니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은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신익희가 급서하고 본의 아니게 조봉암이 단일후보가 된 점도 있었고 또 조후보가 과감하게도 평화통일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점도 있습니다.조봉암은 관권선거가 판을 치는 난관을 뚫고 선전하여 이승만과 자유당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지요.결국 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1959년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맙니다.

  이 당시만 해도 영남지역 특히 대구경북지역의 혁신진보세가 대단히 강했지요.조봉암 지지표가 이승만을 앞섰으니까요.지금의 정치지형으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투표소가 있고 사람들의 학력이라든가 생활수준도 더 높아졌습니다.이렇게 여건은 더 좋아졌는데 투표율은 더 낮아져서 심지어 대의정치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하니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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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6-0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에는 이승만을 교체하려는 변화의 욕구가 많았을 때죠.촌부도 이처럼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투표를 했는데 지금은 말로만 변화와 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 투표를 하지 않으니 문제지요ㅡ.ㅜ

노이에자이트 2010-06-02 08:19   좋아요 0 | URL
관권과 폭력이 난무한 속에서도 조봉암 지지표가 많이 나온 걸 보면 대단했다는 생각입니다.

동탄남자 2010-06-0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장을 찍어야 하는 이번 선거는 참으로 복잡해서 누굴 찍어야 하느냐고 고민을 전해 오는 사람들이 많네요. 이래저래 조언같은 의견을 말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타지역 출마자까지 알게되네요. 시끌ㅅㅣ끌 확성기 소리도 그렇지만 이 복잡함도 어쩌면 사람들에게 정치 혐오감을 주는지 모를 정도... ^^;;

노이에자이트 2010-06-02 15:16   좋아요 0 | URL
하하하...잘 모르는 분들에게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그래도 한꺼번에 8명을 뽑지 않고 하루에 한명씩 뽑는 것보다는 더 간단하다고 생각해야지요.다른 나라들도 이렇게 한꺼번에 여럿 뽑으니까요.

꼬마요정 2010-06-0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8표라고 하지만 평소 조금만 관심 있다면 어렵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표를 찍어야 한다고 해도 어떤 정당 피하고, 어떤 정당 찍으면 되니까요..(^^;;) 중요한 건 정책이랑 당의 성향이랑 이런 걸 파악하기엔 천안함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게 된다는 거죠.. 이런 얄팍한 넘들.. 어쨌든 제 주위는 부재자 투표까지 하는 투혼을 발휘하여 20,30대 20명 넘게 투표했습니다. 대학교 부재자 투표도 2배 가량 늘었고, 결과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희망을 갖고 싶습니다. 제발...제발..

노이에자이트 2010-06-02 15:17   좋아요 0 | URL
투표권 행사는 권리이자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지요.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평범한 명제조차 일부러 강조해야 하는 세태가 씁슬합니다.

비로그인 2010-06-0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님은 방명록...확인 안하시져?
흥~

노이에자이트 2010-06-07 17:32   좋아요 0 | URL
확인했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