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옹호를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는 방법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이 논리가 워낙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사랑이니 애견사상이니 하는 것은 모두 서양에서 온 외래사상이요,이런 사상을 옹호하면 사대주의자가 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게다가 진영논리가 강한 이 나라에서는 한겨레나 경향까지 개고기를 옹호하는 글을 종종 실으니 왠지 개고기를 먹어야 애국자가 될 것 같습니다.
법정스님이 돌아가셨다니 신문방송에서 여러가지 그 분의 생전일화를 소개하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와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그 분의 무소유에 관한 책이나 일화는 워낙 유명하니까요.법정은 생전에 생명사랑운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불교 성직자이니 당연하지요.그런데 그는 용기있게도 개고기 옹호론을 비판했습니다.지금이야 식용견과 애완견이 구분되어 있다는 주장이 근거없는 헛소리(아직도 이걸 믿는 사람이 꽤 있음)라는 게 조금씩 밝혀지고 있습니다만,한때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면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을 각오해야 했지요.
당시 법정이 비판한 상대는 유명한 민속학자 주강현 씨.이 분은 글도 잘쓰고 또 언변도 좋습니다.방송강연도 잘 하구요.올해 설에도 방송강연을 하더군요.여하튼 주강현은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라는 책으로 개고기 옹호를 내세웠습니다.간단히 말하면 서양의 눈으로 우리 고유의 개고기 식습관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여기에 대해 법정은 불교의 생명윤리사상을 내세워서 동물사랑은 우리 고유의 사상이라고 반박하면서 개고기 식용반대를 주장했습니다.그래서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종종 법정도 반대하셨단 말이야! 하고 든든해 하지요.그런데 가끔 가다가 인터넷에서 개고기 논쟁이 일어나면 법정이 개고기 식용을 비판했다는 이유 하나로 '사대주의자' 라고 욕하는 댓글을 발견하고 한숨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개고기 식용반대론을 공격한 가장 해괴한 주장은 진중권에게서 나왔습니다.그는 브리짓드 바르도가 극우사상을 가졌다면서 그런 사상의 소유자가 개고기를 반대하니 개고기 반대하는 사람은 극우파라는 아주 요상한 논리를 내세우지요.게다가 나치 수뇌부들이 동물을 사랑했다는 사실까지 들먹입니다.동물애호니 개고기 반대니 하는 주장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절묘한 방법입니다.그러나...개를 사랑하는 사람과 사상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예를 들어 정치인 중에 김근태도 개를 사랑하고 안기부 출신인 정형근도 개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우스개 소리로 촛불시위에 나온 여중생이 개고기 식용을 반대할 수도 있는 것이고 가스통을 들고 온 왕년의 특수부대 출신 늙은 아저씨 중에서도 개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불교의 윤회사상이 민간에는 강했다고 보기 때문에 개고기가 우리 고유의 민족음식이라는 통속적 개고기 민족주의는 생긴지 얼마 안된다고 봅니다.불교설화에는 개가 전생에는 사람이었다는 내용이 꽤 있는 편입니다.요즘 국가 브랜드가 중요하다고 야단들인데 주강현의 개고기 옹호론보다는 법정의 생명사랑이 우리나라 국가브랜드 혹은 국격(사실 이 단어는 90년대 중반에도 몇몇 사람이 썼고 저도 그 당시 괜찮은 단어라고 해서 그때부터 가끔 쓰고 있음)을 높이는 데도 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생명사랑을 실천하신 법정스님이 저 하늘 먼곳에서도 약하고 작은 생명을 염려하실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