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복서가 이렇게 하소연했다... 

  "사람들은 복싱이 잔인하다고 하더군요.뭐 어떻게 사람을 때리면서 운동이라고 하느냐는 거죠...그런 말하지 말라고 해요.복싱에는 규칙이 있어요.뒤통수나 척추는 때리지 못하게 해요.넘어진 상대에게도 공격을 못하게 하구요.부상을 당한 선수의 상태가 심하다 생각되면 주심은 경기를 잠시 중단시켜 그 선수를 링닥터에게 보입니다.심하다고 생각하면 경기는 중단되지요" 

  "아무리 상대를 때려서 곧 넘어질 것 같아도 공이 울리면 멈추고 제자리로 돌아서야 돼요.다음 라운드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지요.우리 복서들끼리 하는 건 시합이지,막싸움이 아니에요.시합중엔 치열하게 싸우지만 마지막 라운드가 끝나면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해줘요.열심히 싸운 시합일수록 상대에 대해 친근감이 느껴지는 거죠.판정이 나면 깨끗이 승복해요.승자에게 축하해주고요.외국선수라서 말이 안 통할 때도 있어요.하지만 그 얼굴이나 제스처로 알 수 있어요.국적이나 인종을 떠나 우정을 느끼는 거죠." 

  "선수를 아끼는 관장이나 트레이너는 시합중 자기 선수가 많이 다칠 것 같으면 바로 수건 던져요(항복의 표시).선수는 왜 그래요! 더 할 수 있는데...하면서 항의하지만 정말 선수를 아끼기 때무에 그렇게 하는 거에요.투견대회에서 진짜 못된 놈이 자기 개가 상대 개에게 심하게 물어뜯기는 데도 계속 싸우라고 소리치는 놈이에요.자기 개를 사랑한다면 어서 시합 중지시키고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가지요.동물 싸움이나 사람싸움이나 룰이 있는 거라구요." 

  "링이 잔인하다고 하는데...링을 떠나 사회 생활을 해보니 사회가 더 잔인하고 룰도 없어요.심하게 타격을 입어 넘어진 놈을 더 짓밟고...옆에서 말려주거나 하는 것도 없어요.주심이 없는 거죠.모든 게 실패한 놈이 다 뒤집어 쓰게 되어 있어요.링에서 하면 반칙패 당할 일을 서슴없이 하는 놈도 많아요.자기 개가 싸움에 져서 상금을 못타게 되니 그 피투성이가 된 개를 돌로 때려 죽인 개주인이 있었다잖아요.사회엔 그런 놈들과 비슷한 놈들이 있더라구요." 

  "복싱이건 뭐건 격투기에서 절대 금기사항이 있어요.그건 부자나 형제지간에는 싸움을 안 붙이는 거에요.아무리 팬들이 원해도 그건 절대 안 되죠.구기종목에선 때로 형제나 자매끼리 시합하던데 격투기는 그게 안 돼요.친구지간이나 사제지간 끼리의 시합까지는 되지만 형제자매끼리는 안 되지요.그런데 이 놈의 사회라는 데서는 부자지간 부부지간 형제자매지간 싸우는 일도 많아요.유산 가지고 싸우고...경영권 놓고 싸우고..." 

"링에서 싸우다가 부상도 당했지요.하지만 링을 떠난 뒤에 사회에서 입은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정말 링보다 사회가 더 잔인해요.무자비하고 인정사정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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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0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리트 파이터의 교본도 다수의 적에게 몰리면 벽을 등에 지고 싸우라고 하더군요. 복싱 역시 포스트 4개로 만들어진 사각의 공간이 전부인 스포츠라고 보고 싶어요. 사회..완벽하게 틀리죠 사바나나 정글처럼 어느 객체가 생존을 위해 다른 객체의 생명을 끊는 건 그 객체의 종말로 끝을 맺지만 사회는 아니잖아요. 한 객체를 박살내면서 그 여파가 어마어마하죠. 더불어 룰도 없고 온갖 비열하고 치졸한 술수가 묵인되며 더불어 그 결과물만이 칭송되고 복기되고..^^

노이에자이트 2009-12-05 21:14   좋아요 0 | URL
무자비한 경쟁을 정글에 비유하지만 정글에도 나름대로 법칙이 있지요.인간끼리의 경쟁은 정글보다 더 지독한 데가 있어요.

비로그인 2009-12-0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군생활 빡쎄게 했다는 직업 군인 출신들이 사회 나와서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미키 루크 주연의 영화 더 레슬러도 링 밖의 생활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잘 보여주고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싫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12-05 21:17   좋아요 0 | URL
군대 막 제대해서 세상고생 혼자 다 한듯 이야기하는 풋내기에게,제대해서 사회생활 좀 해보고 이십대 말,삼십대 초가 된 남자들이 그렇게 얘기하지요."이제 사회생활이 군대생활보다 더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될 거여..."

카스피 2009-12-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는 정말 룰없는 지하 격투장입니다.누군가를 밟고 일어나야만 하는 최종 승자만을 위한 장이죠 ㅜ.ㅜ

노이에자이트 2009-12-06 14:54   좋아요 0 | URL
그런데 다들 자기만 당했다는 사람들 뿐입니다.남에게 가한 고통은 편하게 다 잊어버리죠.우리들 스스로도 남에게 가한 고통은 없는지 반성해야겠지요.

흑해 2009-12-0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언제 접속할 지 알 수 없으니 여기서 노이에자이트 님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난 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네덜란드(Nederlands)라고 표기하던데요. 지역에 따라 즐겨부르는 명칭이 다른 건가요? 어쨌든 아프리카에서 열리니 사람들이 손톱만큼은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지길 기대해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2-10 15:55   좋아요 0 | URL
흑해 님도 복많이 받으십시오.이 곳에 블로그를 개설해도 좋을 듯합니다.

공식명칭은 네덜란드인데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지역 중 가장 부강했던 곳이 홀란드다 보니 관행상 홀란드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 여러나라가 많은데 아프리카 말을 한 줄 아느냐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 횡행하는 우리나라 오락프로그램도 문제지요.

nana35 2009-12-0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8월에 오카베 마키오 저 /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이라는 책이 번역되서 나왔는데요. 혹시 노이님 읽어보셨는지요? 서평도 없고 소개도 단촐해서 도움이 될까 여쭤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2-10 15:58   좋아요 0 | URL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저는 그대신 만주에 대한 오래된 책들은 꽤 많은 편입니다).두툼하지 않으면서도 알찬 책으로 고바야시 히데오<만주철도>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