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의 완역본을 읽은 뒤 축약본과 대조해보면 역시 완역본 읽기를 잘했다 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축약본에는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와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하지만 완역본을 보면 그때까지 이미 100쪽이 넘게 진행되는데 거기에도 정말 주옥같은 장면이 많습니다.미리엘 주교의 가계가 프랑스혁명 때 몰락한 이후 왕당파가 된 사연....그러면서도 미리엘 주교가 자신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국민공회 출신의 노인을 문병갔다가 임종까지 지키는 장면...사형집행 입회 후 사형제도 폐지를 찬성하게 되는 계기 등 굵직한 내용들이 풍성하게 들어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이고 묵직한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면 외에 완역판에는 다소 장황하리만치 길게 묘사된 인물됨됨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그 치밀함에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다음은 어느 재수없는 인간에 대한 묘사입니다.직역투는 제가 손질해서 인용합니다.
----세상에는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인데도 남의 행위를 엿보려고 기를 쓰는 인간들이 있다.왜 저 사람은 늘 석양에만 나갈까? 왜 아무개는 목요일마다 나갈까? 왜 그 남자는 꼭 뒷골목으로만 다닐까? 왜 저이는 언제나 자기 집서랍 속에 담뿍 두고도 편지지를 사러 갈까? 등등...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그들은 자기에게는 아무런 쓴 것도 아니고 단 것도 아닌 그런 의문점을 풀기 위해서,숱한 선행을 하고도 남을 엄청난 시간과 수고를 낭비한다.그렇다고 그 의문점을 푼다고 무슨 특별한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오로지 목적은 호기심 충족이다.그것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며칠이고 자기가 목표로 하는 사람의 뒤를 밟는가 하면, 길모퉁이나 골목길에서,춥고 비오는 밤 몇시간이고 서서 망을 보기도 하고,사람을 매수하기도 하며,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왜 그러는가.아무 이유도 없다.오직 알고 싶고 들추고 싶은 일념에서이다.그저 지껄이고 들추어내지 않으면 못 배기기 때문이다.그리고 흔히 그 목적이 성공해서 그 대상이 되는 인물의 비밀이 알려지고,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파국이 일어나서 질투,파산,가정파탄은 물론 그 사람의 인생자체가 망가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그런데도 하등의 이해관계도 없이 단순한 본능에서 남의 인생을 그렇게 망치고도,그런 발견을 한 보람으로 즐거워한다.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다.---
이런 인간의 한 예가 바로 비투르니엥입니다.이 여인에 대한 묘사 또한 기가 막힐 정도로 재치있고 빼어납니다.그녀는 팡틴느의 뒤를 캐서 그녀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옵니다.계속 인용해 봅시다.
--- 이런 짓을 한 그 아낙네는 비투르니엥이라는 수다스러운 추녀인데,모든 사람의 정조를 다 캐고 다니는 것이 취미였다.나이는 쉰 여섯인데,본래 못생긴데다가 나이가 들어 얼굴이 쭈그러져 있었다.이런 늙은 아낙에게도 젊은 시절은 있었던 것이니,그녀는 성직자 출신의 자코뱅당원과 결혼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쌀쌀하고 퉁명스럽고,앙칼지고,화가 나면 파르르 떨고,까다롭고,표독스럽기까지 했다.그러면서도 자기를 억누르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옛남편을 가끔 그리워했다.왕정복고 때에 그녀는 독실한 신자로 돌변했기 때문에 성직자들은 그녀의 죽은 남편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또 그녀는 자신의 보잘것 없는 재산을 사후에 어느 수도원에 기증하기로 한 사실을 엄청나게 떠벌이고 다녔다.아라스 교구에서는 그녀에게 대단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바로 이 비투르니엥 부인이 몽페르메유에 갔다 와서,"그 여자의 숨겨놓은 어린 딸도 보고 왔지."하고 말했던 것이다...
아마 레미제라블 완역본을 독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저는 60년대에 번역된 정음사판 번역본을 읽었는데 작은 활자가 빽빽한 데도 세권이나 되고 총 1500쪽이 넘습니다.요즘 낸다면 다섯권은 되겠지요.하지만 도전해볼만 합니다.위고의 소설 중 가장 방대하고,통속적인 재미도 있습니다.저는 요즘 10년 만에 두번째로 읽고 있는데 역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축약본만 보신 분들은 반드시 완역본에 도전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