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은 이미 칠순이 넘은 원로학자가 되셨고,요즘 사회학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로서는 김동춘을 들 수 있겠습니다.그의 글은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거의 그대로 해주고 있습니다.특히 '마름기질'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저도 꽤 씁니다.윗사람에겐 약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선 온갖 위엄은 다 부리는 인간형...마루야마 마사오가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의 '초국가주의적 심리'에서 말하는 억압이양의 법칙도 결국은 이런 근성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지요.그거 일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닙니다.다음은 김동춘이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의 소신을 솔직하게 풀어낸 글에서 뽑았습니다.참고로 이 인터뷰에는 기존학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 읽을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출전은 장석만 고미숙 윤해동 김동춘<인텔리겐챠>(푸른역사2003)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대학개혁운동이랄까, 교육문제 해결의 주체가 못된다.특히 이른바 이류대 삼류대 콤플렉스를 지닌 학생들은,내가 공부 못해서 이리 되었다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모든 걸 자기 탓으로만 돌리니까, 공부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했듯, 학력 콤플렉스는 종교보다도 더 무섭다.모든 이들이 차등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지금 일류대 학생들은 기득권을 누리려고 하는 입장이다....자신을 객관화하지 않고,수혜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한쪽은 피해자인데도 스스로 개혁에 나서지 않고,다른 한쪽은 수혜자니까 당연히 누리려고 하고.우리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계급사회가 되어가는 징후다... 353쪽에서
---사실 주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다른 지역 공동체나 동호인,사회단체에서 지내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거의 없다.친지 외에는 모이는 일이 거의 없다.어릴 때부터 다양한 사회관계를 형성해나가는 훈련이 굉장히 중요하다.우리 가족,우리 회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 다른 공동체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385쪽에서
---가능한 한 나를 죽이고 내가 가진 것을 부인하고 힘 센 저쪽의 것을 택하는 게 한국인들의 행동기준이었다.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타자 지향적 인간이다.자기 성찰의 계기나 자기중심이 없으니 남이 어떻게 볼까,어떻게 생각할까를 행동기준으로 삼게 된다.여기서 물론 타자는 힘센 쪽이다....395쪽에서.
위아래 따지고 힘센자 옆에 붙으려 하는 정신은 모든 인간을 줄세우려는 정신과도 일맥상통합니다.결코 현정부의 교육정책만이 줄세우기 방식이 아닙니다.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외국인에 대해서도 적용합니다.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사람들은 잘해 주고 못사는 나라사람들은 무시합니다.일종의 줄세우기지요.어젠 이런 기미 정도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사는 외국인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인의 잘못된 근성을 지적하며 하사관 근성이란 표현을 썼습니다.학력도 좋은 장교들에겐 위축되다가 일반사병들에겐 못되게 구는 사고방식을 비판한 것이지요.과연 이게 옛일본 제국 군대에만 해당되는 얘기일까요.지주에겐 굽신거리며 소작농에겐 큰소리 빵빵치는 마름근성은 권위주의 서열의식의 한 예입니다.상급자에게 자기가 당한 것을 복수할 용기는 없고, 끊임없이 자기보다 약한 자를 찾아내어 화풀이하는 삶도 알고 보면 불쌍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