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대동아 전쟁 비사>(노벨 출판사) 제 5권 중국 편의 제일 뒤엔 '남경대학살의 증언'이라는 글이 있습니다.이 글을 지은 기젠 히데이에는 중국 귀환자 연락회라는 단체에서  열성적으로 일하는 남성입니다.이 단체는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 당시 중국 전선에서 싸웠던 일본군 중 중국에서 전범으로 재판을 받은 후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뉘우치고 중국당국에게 관대한 처분을 받고 석방된 이들이 귀국하여 만들었습니다.이 단체는 중일 전쟁이 발발한 날인 7월 7일에는 매년 오사카에서 정기모임을 갖고,일본이 다시는 군국화의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결의를 합니다. 

  인간으로선 도저히 자행하기 힘든 일을 단지 명령을 이행한다는 명분 하나로 저지른 그 정신상태를 그 모임의 관계자들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일본은 일등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지나쳐 타민족을 멸시했다.살인을 영웅시하며 무사도 정신을 왜곡했다.천황절대주의의 기치아래 웃사람에게 복종하고 아랫사람에게 군림하려 드는 사고 방식이 몸에 배었으며 이 모든 사고방식을 학교교육으로부터 주입받았다.그 뿌리가 얼마나 깊었는지 전범으로 복역 중에도 한동안 '우리가 한 전쟁은 백인침략자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서 한 것이다.명령에 의해서 한 것 뿐이다.일본군은 좋은 일도 많이 했다.'등 자기 합리화에 급급했다."

 이 귀환자 연락회에선 자라나는 일본 청소년들이 군국주의를 버리고 건전한 민주정신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남경 대학살 사진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이런 전시회에 온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이런 일이 일어난 줄 몰랐다.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어디서나 독특한 존재는 있지요.일부 청소년들은 "그땐 전쟁이었다.군인은 명령을 이행했던 것 아닌가.내가 그 상황에 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는군요. 기젠 씨는 이런 반응을 보면 이 무서운 어린 군국주의자의 앞날이 일본을 위해서 무서워진다고 했습니다. 

 기젠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남경 대학살은 군인끼리의 전쟁이 아니었다.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육이었다.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위계질서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며 강자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게다가 우리 나라도 미군에게 민간인이 피해를 본  사례가 있다며 논점을 흐리는 이들도 있다.물론 일본인의 피해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것은 일본군국주의에 대한 고발과 피해자인 중국인들에 대한 사죄의 전제하에 성립할 수 있다." 또 그들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 중에는"모든 생물은 인간까지 포함하여 약자는 강자에게 먹히게 되어 있다.당신들이 남경 대학살 운운하고 있지만 명치시대 이래 일본인이  구미열강에게 얼마나 굴욕을 당했던가.그 역사를 모르는가.학살 그 자체는 나쁘다.하지만 우리 역시 원폭피해 등 사상자가 많았다.어떤 의미에선 우리도 피해자다."고 주장하며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이런 사고 방식을 지닌 이들은 역사 허무주의자입니다.역사에서 정의나 도덕을 찾아볼 수 없고 강한 놈이 장땡이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이지요.역사 허무주의자에게서 반성이니 정의니 하는 관념은 냉소를 살 뿐입니다.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다....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약자는 강자에게 당하게 되어있다....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과연 일본에만 있을까요.우리나라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도 이런 식으로 맥을 빠지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체념과 냉소가 허무주의와 만나면 정의를 추구하는 일을 방해하게 됩니다.제가 인터넷을 한 지 얼마 안되는데 과거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을 한다는 소식에 달린 댓글을 처음 접했을 때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다...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운운하는 댓글이 상당히 많아서 "요즘은 나이든 세대들이 인터넷을 많이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그런 견해를 가진 이들의 홈페이지를 클릭해서 가보니 이제 갓 제대한 2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젊어서 이상주의에 불타도 나중에 세상살다 보면 고루한 사고 방식이 쌓이게 마련인데 그 나이 때 벌써 저런 사고방식이 확고해지면  나중에 나이 든 뒤로 자식이나 손자손녀 들에게 얼마나 케케묵은 잔소리를 해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명령만 내리면 비무장 민간인들에게도 발포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고 여기고,군복무를 마친 남자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군인답고 남자답다는 사고 방식...정말 대한민국의 미래가 우려되는 사고방식입니다.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독일 소설이라고 하면 대체로 지루하고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만 그 중 예외적으로 에리히 레마르크는 비교적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습니다.번역도 꽤 많이 되어 있는데 주로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개선문>이 많이 읽힙니다.하지만 반전평화 사상을 가장 직접 드러낸 작품은 <생명의 불꽃>이지요.이 소설의 배경은 독일군이 운영하는 강제 수용소입니다.소설 마지막엔 독일군이 패주하면서 그 수용소가 연합군에게 해방되는 장면이 나옵니다.악명높은 수용소장인 독일군 지휘관은 연합군에게 체포되자 이렇게 항의합니다."대체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나는 군인으로서 명령을 이행했을 뿐이다!"그러자 연합군 측의 장교 하나가 이렇게 쏘아 붙입니다."오...그래...아무 죄가 없다 이거지...그래! 내년 쯤 이런 묘비명이 생기겠구만.여기 오로지 명령만 이행했던 충직한 군인 잠들다...그래...꼭 그렇게 써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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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0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오른쪽에 있는 것을 자부하는 사람 중엔 같은 나라 사람들을 2등 국민이라며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렇게 말하는 인간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고요. 이런 인간들 중엔 소위 '일빠'라는 인간들이 많은데 일본과의 과거문제가 나올 땐 이 인간들이 항상 들고 나오는게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이죠.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죠. 일빠는 아니지만 일본에는 사죄를 요구하면서 우리군이 저지른 학살은 정당화 하는 인간들도 쉽게 보이고요. 이런 부류가 '까라면 까는거다'를 주장하는 사람들이죠.
말씀하신 20대 초중반의 젊은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만화도 있어요. 젊은 작가 최규석의 단편 <선택>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었죠. 내용은 서로 다른 성격의 친구가 있는데 한 친구는 인터넷에서 보이는 그런 전형적인 젊은인데 군 제대 후 공사장 아르바이트에서 대충대충 일하면서 어떻게 원칙대로만 일하느냐고 하자 한 인부는 일 할 줄 안다고 치켜 세우고 다른 인부는 젊은 놈이 못된 것만 배워왔다고 비난하죠. 그런데 이 젊은이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에 뛰어드는데 그게 바로 용역 깡패에요. 그 철거 현장에서 어릴적 친구와 마주치게 되는 내용이에요.
소개해주신 <생명의 불꽃>에 상당히 관심이 가네요. 읽어봐야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5 14:51   좋아요 0 | URL
과거사 청산작업을 물타기하는 수법을 점잖은 단어로 상대화하다고 하더군요.
정우성이 나오는 비트에서 용역깡패 이야기가 나오지요.
생명의 불꽃은 현재 구할 수가 없고 헌책방에 가면 범조사에서 나온 레마르크 전집에는 있습니다.제 것은 헌책방에서 산 삼중당 문고.

비로그인 2009-02-05 18:46   좋아요 0 | URL
비트 참 재밌게 봤죠. 열심히 살아보려는 환규를 상대로 사기치고 뒤이어 닥쳐오는 용역깡패들. 그렇잖아도 검색해보니까 생명의 불꽃은 안나오네요. 헌책방에 가봐야겠어요.

파란여우 2009-02-0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님 댓글을 읽고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책장에서 꺼내 간만에 들여다 봤습니다. [선택]의 에필로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군요.

"한가지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선택이란 필요없다"

남경 대학살은 책 읽다가 너무 잔혹해서-저는 아우슈비츠같은 홀로코스트보다 남경 대학살이 더 끔찍했어요-책장을 여러번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임산부를 산채로 칼로 그어 뱃속의 태아를 끄집어내고 할머니까지 강간한다음 칼로 찔러 죽이는 그것이 인간이죠. 간혹 잔혹한 전쟁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살상행위를 두고 인간이 아니다, 또는 그것은 짐승이다 라고 하지만 저는 그 반대 생각입니다. 짐승은 그렇게 여러방식을 동원하는 살상행위를 저지르지 않죠. 단순하거든요. 단순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유형이긴 하지만 인간 자체가 악의 본능을 가진 존재라고 보거든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의 대답은 yes.

노이에자이트 2009-02-05 17:40   좋아요 0 | URL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에 대한 언급에 공감합니다.프리모 레비는 독일인들이 노골적으로 과거사를 망각하는 풍조에 더 절망했지요.게다가 이스라엘까지 예전 나치를 닮아갔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비로그인 2009-02-05 18:47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님//말씀하신김에 저도 다시 단편집을 봤어요.

로쟈 2009-02-0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악'은 인간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과 동물(짐승)과는 다른. 뒤집으면 오직 인간만이 선(선에의 가능성)할 수 있다는 뜻도 되는 듯싶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02-05 14:5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동물에겐 선악 자체를 구분할 일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