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는 대학에서 경제관련 공부를 한 적이 없고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조적인 두 가지 반응을 보았습니다.현정부에 비판적인 한 지식인은 "30대의 무직자가 이런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없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독설로 유명한 한 국회의원은 이번 일을 "학력을 속인 신정아 사건과 같은 일이다."고 했습니다.이 국회의원은 참여정부 시절,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에선 대학을 나온 사람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서 굉장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두 사람의 성향은 판이합니다만,한 사람은 학력을  중시하고 한 사람은 현장전문 경험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는 제도권의 전문가보다 더 뛰어난 독학의 전문가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특히 4년제 대학에서 해당학과를 나와야만 전문적인 지식을 인정하겠다는 댓글도 꽤 있더군요.심지어 일부 신문기자들은 "30대 백수에게 나라가 휘둘렸다"는 등 자극적인 기사제목도 뽑고 있습니다.그런 사람들에겐 2년제 대학은 물론이고, 만약 그보다도 더 못한 학력의 소유자가 나름대로 뜻이 있어 열심히 혼자 공부하여, 어느 분야에서 지적인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기 힘든 모양입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식으로 전공을 보는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무자격자요,극단적으로 말하면 얼치기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저는 영어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았는데 영어를 가르친 경력도 있고.한문교육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았는데 한자 및 한문을 가르친 적이 있으며.심지어 도장 한번 다니지도 않았으면서도 격투기 선수 테스트 전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물론 불합격했지만요.여하튼 제대로 정규과정을 밟은 게 거의 없네요.이 곳 알라딘에서도 저는 이것 저것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고맙게도 몇 몇 사이트에서 제 글을 퍼가고 있습니다.어떤 사이트를 가보니 제 홈피를 추천하면서,"해방 전후사와 민족주의에 해박한..."이라고 소개를 해놓았습니다.참으로 과분한 칭찬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그런데 저는 역사학과를 나오지 않았습니다.학력과 학과를 중시하는 사람이  본다면 저는 제대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그런데 대학에서 무슨 무슨 학과를 나왔다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전공했다는 표현을 쓰던 것 같던데 전공이란 다른 뜻이라고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에서 그 학과에 4년 동안 다니면 진정한 의미의 전공-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을 깊이 있게 갖추었다는 뜻-을 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그냥 그 학과를 나왔다는 것일 뿐이지요. 

  지난 달,아담 스미스를 경제사상사 뿐 아니라 사회사상사 쪽에서 접근한 책을 이것저것 읽다가 일시 중단했습니다.그런데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에 대한 논문을 읽으면서 고도쿠 슈스이를 언급한 대목에서 제국주의론을 다시 공부했습니다.그러다 아담 스미스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고도쿠 슈스이가 주장한 것은 사실 경제학사나 경제사상사에선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고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가 있습니다.이 문제는 공황과 제국주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우리나라 경제학과에서 주로 배우는 주류 경제학(근대경제학의 한 분파만을 가리키는 것이기는 하지만)에선 공황론이 나오지 않습니다.그리고 요즘 누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는답니까.하지만 책에 인용된 아담 스미스의 글을 국부론에서 직접 찾아보니 그 재미도 괜찮습니다.그도 내수경제가 탄탄하면 식민지 쟁탈하는 국력의 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네르바의 전문지식은 외환거래 분야에서 굉장히 깊이를 보여주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그래서 그가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검찰의 발표를 못 믿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저도 그런 분야의 전문지식은 없습니다.단,제국주의론을 공부하려면 공황이론과 함께 금융자본론을 공부해야 하니까 그 분야의 전문서를 구비해 놓기는 했습니다.특히 저는 금융자본 자체를 다룬 책이 어려울 것을 대비해서 편법을 쓸 준비까지 해놨는데,그것은 은행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이건 좀 접근하기가  쉽죠.이 방법은 제가 전쟁을 공부할 때 쓰던 방법을 응용한 것입니다.처음엔 전쟁터의 군인과 장군들에 촛점을 두고 전쟁을 공부하다가.나중엔 전쟁외교에 관심을 돌렸고  그 다음엔 석유 확보,그 다음엔 전쟁자금은 어떻게 확보하는가로 관심을 옮겼습니다.여기서 이 순서를 보면 알겠지만.군사학에서 외교사로,그 다음은 경제사 및 경제학으로 관심이 옮겨지는 겁니다.특히 저는 금융자본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서 19세기 말 국내에 상륙한 일본의 금융자본이 나중에 만주국까지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파헤친 조선은행의 역사를 구해놓았습니다.

  원로 경제학자들이 우리나라 경제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치우친 학파를 듭니다.미국식 주류 경제학만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것이지요.이 학파의 문제점은 경제사와 경제사상사에 대한 무시를 들 수 있습니다.이런 식으로 가다간 경제학과도 법학과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법학은 분명히 사회과학의 한 분과이면서도 우리나라에선 그냥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필요한 수험 법학 밖에 안된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현실입니다.법사상사를 공부하지 않게 되었지요.경제학이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경제사나 경제사상사에 무지한 이들을 양산해내게 되고 이는 인문사회의 기초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사회과학 출신이라는 희한한 존재가 많아진다는 안타까운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사와 경제사상사를 함께 공부해보려고 합니다.제가 그런 면에서 귀감으로 삼는 책은 모리스 돕<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입니다.돕은 자본주의 이행 논쟁의 단초를 연 경제사학자로서 <자본주의 발전연구>라는 그의 책을 둘러싸고 폴 스위지가 문제제기를 하여 국제적인 학술논쟁을 벌어지게 한 전설 같은 인물입니다.이 논쟁은 들어본 사람은 많으나 실제로 그 논문들을 읽고 공부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또다른 전설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요.하지만 또 간과해선 안될 것은 그 논쟁에 참가한 일본의 다카하시 고하치로가 일본의 경제사 연구 수준을 전세계에 과시한 사실입니다.자본주의 이행논쟁을 실제로 공부했는지는 이 학자의 이름을 아는지 물어보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논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중요인물입니다.이 논쟁을 소련에서 평가할 때 그  수준으로 보아 돕이나 스위지보다 더 낫다는 호평을 받았던 인물입니다.우리나라 경제사학회 초대회장이던 조기준 씨나 그보다 조금 후배이면서 지금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주종환 씨 등의 경제사 실력은 그들이 일본에서 경제학을 배운 것에 힘입은 바 있습니다.일본은 경제사와 경제사상사를 함께 배우는 전통이 있으니까요.돕 역시 경제사학자입니다만,경제사상이나 경제이론에도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를 썼습니다.저 역시 공황이론을 정리한 장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제사와 경제사상사를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목표는 좋지만 실천은 힘들다고 합니다. 힘들어도 해보겠습니다.설마 경제학과 안 나온 사람이 경제학에 관해 글을 쓰면 안되는 법이 제정되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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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1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미네르바가 4년제 대학을 나왔다면 어느 학교인지도 따질 것이고 인지도가 낮은 학교 출신이라면 또 그것 가지고 시비 걸것이 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과는 무관하게 4년제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말씀하신 것 처럼 그 학교를 나온거지 지식인과는 거리가 멀죠. 학문을 닦는 것이 아닌 학점관리에들 바쁘신데 졸업하고 나면 머리에 남아있는게 없죠. 사회,상경계열이면 최소한 몇 가지 정도의 이론은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더 심하면 이론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죠.

노이에자이트 2009-01-13 01:01   좋아요 0 | URL
허허허...여하튼 우리나라에 줄세우고 차별하는 문화가 심하지요.
언제 한 번 조기준 씨가 일제시대 때 일본 유학가서 읽게 된 일본 경제학과 학생들의 독서목록을 한번 공개해야겠어요.

노노바바 2009-01-1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런 법이 제정되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법으로 정해지면 자기 맘대로 못하고 번거롭자나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09-01-13 00:48   좋아요 0 | URL
법은 제정되지 않아도 사람들의 관행이나 편견은 법보다 더 강하니 그걸 극복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바람돌이 2009-01-1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사건으로 이놈의 사회가 또다시 얼마나 학벌지상주의인지가 첨예하게 나타났죠. 정말 얼마나 부끄러운지.... 단순한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이 깊고도 깊은 차별의식은 어디서부터 바뀔수 있을지 참...
그나저나 노이에자이트님의 학구열은 정말 대단합니다. 이즈음 대충 어려운책은 피하고 싶은 저랑은 너무나 다르셔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1-13 16:17   좋아요 0 | URL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할지...막막합니다.일종의 인권침해 같기도 하구요.
경제사나 경제학이 두뇌소모가 많은 분야이긴 합니다.

... 2009-01-14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문중에 한가지 조금 핀트가 안맞는 비판이 있습니다. 먼저 어떤 여자 국회의원의 발언은 제외하구요. 그건 논할 가치도 없는 망발이 맞으니깐요. 다만..어떤 '전문가'가 했다는..

"전문대 학력에 독학으로만 공부해가지고는 이런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없다."

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사실 '학력'은 아닌것 같습니다. '전문적 경험'이라는 표현이 더 중요하겠죠. 현장 전문가들이 미네르바가 진짜가 아닐수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는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는 전문가를 알아보는 법인데 현실적으로 지금 구속된 박모씨가 그런 실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아니거든요. 단지 학벌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죠. 설사 구속된 박모씨가 정상적으로 대학다니면서 학점이 높고 교과서 공부 열심히 했다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실물 경제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을 수는 없습니다.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고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다하더라도 웹서치따위로는 절대 수집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이런 실전 정보들을 바탕으로 맥락이 통하는 글을 썼기 때문에 미네르바의 글이 지지를 받았던 것이고 지금 상황에서 해당분야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진짜 여부에 대해서) 의심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학력때문이 아니라는 거죠...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21   좋아요 0 | URL
제 글을 관심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쟈니 2009-01-1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교수들은 전공이라는 가상의 성을 쌓아서, 그 성을 졸업했던 사람이 아니면 함께 이야기를 하지 않죠. 그런 가상의 성이 한국 학문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합니다. 전공과 학력, 학벌을 넘어야 우리 사회의 학문이 제대로 성장할텐데.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12   좋아요 0 | URL
글쎄요...제가 교수들의 세계는 잘 모릅니다만,쟈니 님의 우려는 일리가 있습니다.

Mephistopheles 2009-01-1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건축가 중에 안도 타타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유명 건축가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사람의 학력과 출신입니다. 고졸입니다. 그리고 프로복서출신이지요. 건축전공..안했습니다. 단지 그는 매맞아 번돈으로 꼬르뷔지에(현대건축의 거장)의 건물들을 보러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후 그가 건축계에 발을 들이고 여러가지 업적들을 남기게 되죠. 일본내에서보단 국제적으로...그의 명성에 걸맞게 동경대학교 강의자리가 나왔지만 동경대교수들이 반대했었죠. 독학으로 건축을 배운 사람을 대 동경대의 강단에 세울 순 없다고...결과는 동경대 강의 했습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우리나라라면...글쎄요...매맞은 돈으로 유럽건축기행까지는 가능해도...건축계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옆나라도 학벌, 학연 엄청 따지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한쪽 숨구멍이 터져 있지만..우리나란 글쎄요. 완벽한 철옹성 같아 보입니다.세계 100위 안에 드는 4년제 정규대학하나 없는 나라에서 말입니다..ㅋㅋ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11   좋아요 0 | URL
적절한 예를 드셨군요.그리고 우리나라 기자들은 운동선수들을 이야기할 때도 고졸신인이니...하는 그런 표현 좀 쓰지 말고,대학 학번 좀 들먹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지겨워서 원...안도 타다오란 양반 멋지군요.그리고 그런 이들을 끝내 교단에 세우도록 한 학생들도 이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