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시장경제만이 최종적 승자라며 역사의 종언을 외쳤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차 미국식 자본주의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서는 형편입니다.그가 자신만만하게 시장경제의 승리를 외친지 20년이 채 안되었는데 말입니다.이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그 근본부터 재검토해보아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그러면 사회주의 몰락 전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한 번 옛날로 돌아가 보기로 합시다.
1991년 3월호 신동아에 리영희 씨의 <사회주의의 실패.지식인의 사명>이라는 일종의 고백록이 실렸습니다.한때 리영희가 비관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이 돌만큼 화제를 불러 일으킨 글입니다.원래는 그 해 1월26일 연세대 장기원 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정치 연구회의 월례 토론회에서 '변혁시대 한국지식인의 사상적 좌표'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신동아 독자를 위해 다시 다듬은 글입니다.이 글에서 리 씨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본주의의 가장 어두운 면만 보여주고 있음을 착잡한 심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특히 사회주의적인 도덕의 상징으로 그가 자주 거론하던 중국의 당산 시민들의 예-지진이 났을 때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돕는 모습을 보인 시민들-를 또 들면서 이젠 그런 모습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 아닌 것 같으며 심지어 조국의 통일논의도 좀 냉정히 접근하자고 마무리했습니다.한때 페레스트로이카를 보며 사회주의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던 그로서는 페레스트로이카도 그 종말이 보이고 있는 참에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입니다.(이 글은 마치 1848년 혁명 당시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동계급을 배반해 버린 시민계급을 보고 서구 민주주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드러낸 알렉산드르 게르첸 같은 분위기마저 풍겼습니다).그를 마음 속의 스승으로 따르던 젊은이들의 충격과 반발이 대단해서 이 글에 대한 반론이 잇따랐고 성질이 격한 이들은 배신자 운운 하기도 했죠.
1992년 2월호 신동아에는 한완상 씨의<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의 오류>라는 글이 실렸습니다.이때는 아예 소련이라는 나라 자체가 역사에서 없어진 이후입니다.한 씨가 이 글에서 주로 다룬 대상은 민중사회학을 소시민적이니,부르조아적 개량주의니 하면서 비판하는 정통적 입장의 일부 젊은급진사회학자들의 교조적 경직성이었습니다.한 씨는 학술운동으로서 이들 급진적인 젊은 학자들의 기여는 인정하면서도 지나치게 경직되어 남의 비판엔 귀를 닫아버린 자세를 지적했습니다.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방법론이 정통이며,자신들과 다른 학자들에 대해선 온갖 비난을 퍼부었지요.사회민주주의자,종속이론가,세계체제론자,민족경제론자 등등이 그들의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한 씨는 이제 열린 자세로 다른 이론과 사상에도 주의를 기울이라며 후학들에 당부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제 당시의 승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검토해 볼 차례입니다.지금도 경제분야는 물론 해박한 지식으로 여러 분야에 대해 글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논객 복거일 씨의 글입니다.1990년 11월호 신동아에 실린 그의 서평<우리 사회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던진 페레스트로이카의 충격>인데 이때는 이미 페레스트로이카의 참신성은 떨어지고 소련은 시장경제를 더욱 더 도입해야한다는 샤탈린 노선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동독은 이미 없어졌구요.복 씨가 다룬 책은 학술단체협의회의 논문집<사회주의 개혁과 한반도>한울 입니다.이 책은 사회주의의 변모에 당혹스러워하던 한국의 진보내지 급진성향 학자들이 사회주의의 변모를 비판적으로 본 글들이 실려 있었지요.사회주의의 병폐인 계획경제를 고치기 위해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 페레스트로이카라면 마르크스 주의의 위기에 닥쳐서도 계속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해선 안된다며 복 씨는 다음과 같이 주문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논의의 촛점은 페레스트로이카 자체에 맞추었으며 그것을 불러 온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 위기는 조명되지 않았다.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논의도 그것의 성과를 알차게 할 길을 찾기 보다는 그것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마도 저자들에게는 사회주의의 위기를 차분히 성찰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비쳤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지식이나 체계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으면 그 원인을 찾는 길은 그 체계의 근본적 가정을 검토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그 체계가 세워질 때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정이나 그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던 가정들을 그동안 깊어진 지식으로 검토하는 일은 언제나 보답이 크다....
역사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바뀔 때가 있지요.그렇게 의기양양하며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승리를 외치던 이들은 불과 이십년이 안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정부개입이 없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해야된다는 이들이 정부가 어서 개입하여 우리를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복거일 씨의 주문은 이제는 그대로 신자유주의자들(복거일 씨도 포함하여)에게 해도 무방합니다.남에게 자기성찰을 요구하기는 쉽지요.하지만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들이 신봉하는 근본적 가정들을 검토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과연 신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복 씨는 위기가 닥치면 철학적 성찰을 해야 하고 그런 자세는 보답이 크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