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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오브 라이프 3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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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플라워 오브 라이프 3권

후미 요시나가


 후미 요시나가의 학원물 [플라워 오브 라이프]는 어느 작품과는 달리 생기가 넘친다. 표지를 장식한 주인공들의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강력한 포스를 느낀다. (물론 시니컬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마는 표지에서조차 무표정이다.) 3권의 표지를 장식한 두 사람도 역시나 뭐가 즐거운지 사이좋게 웃고 있다. 백혈병을 이겨낸 소년 하나조노와 매니악한 마지마에 의해 만화가의 능력을 뒤늦게 알아버린 다케다(2권에서 링에서 나오는 비디오 귀신인 사다코로 불림) 이 두 사람의 조합은 그다지 어울린다고 할 수 없지만, 스마일은 누구나 예쁘게 보이도록 하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2권에서는 다케다의 교내 인기 만화가 데뷔와 학교축제를 담았다. 돈에 찌든 아니 돈에 눈이 획 돌아간 마지마의 축제 연극 출연으로 벌벌 떨어야 했던 학급 반장의 마음고생은 웃으면서도 반장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생각하니 그가 불쌍했다. 또 마지마의 농간으로 다케다는 자신의 만화 작품을 BL물로 내용수정을 해야만 했던 사건 등 주로 괴짜 마지마의 대활약이 맘껏 펼쳐졌었다. 

 

  3권에서는 하나조노와 미쿠니의 우정 재확인 사건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파티에 들떠있던 하나조노 반 친구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다. 하나조노의 반 친구들은 묻혀있던 조연 캐릭터들인 줄만 알았는데 뜻밖의 그들의 출연이 신선하다.

 

 엄마의 재촉으로 옷을 사러 나온 다케다는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쇼핑을 한다. 하지만 다케다는 옷 보다는 화방에 마음이 가 있다. 친구들도 각자 관심 있는 아이템이 다르다. 이런 경우는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친구라고 해서 관심거리가 같을 순 없지 않는가. 결국 그들만의 쇼핑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내놓는다. 보통 여고생들의 고민거리를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담은 작가의 세심함이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사이가 매우 좋은 하나조노와 미쿠니의 우정 재확인 에피소드도 꽤나 즐겁다. 만화 스토리담당인 미쿠니와 그림을 맡은 하나조노의 팀워크에 비상이 걸렸다. 얌전한 미쿠니가 화를 내는 모습은 아마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 듯, 하나조도도 버럭 화를 내는 모습에 이 둘의 관계가 걱정된다. 물론 하나조도와 미쿠니는 그들의 만화 세계 속에서 화해를 이끌어낸다. 그 밖에 크리스마스 파티에 역할 분담을 한 반 친구들을 좌충우돌 준비기와 담임선생님의 ‘크리스마스 드라마 만들기’를 통해 밝혀지는 마지마와의 은밀한(?) 관계가 폭로된다.


 마지마만 없으면 평범한 학원물인데, 오타쿠의 최고 단계를 초월하려는 마지마의 존재감은 그야 말로 강하다. 마지마야말로 이 플라워 오브 라이프의 무게중심일 수도;;;

 마지마의 다크 포스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보다 한 수 위인 듯 하다. 아~참, 작가는 보너스 에피소드를 마지마의 다크 포스로 끝내신다.

 

 2권에 비해 빨리 우리 곁을 찾아온 [플라워 오프 라이프 3권], 4권도 3권만큼 빨리 나오도록 해주세요. 4권에서 마지마의 웃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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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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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가의 화제작 [사신 치바]를 도서관에서 빌려보려 했으나 역시나 예악한도 초과로 컴퓨터 스크린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서점을 뒤성거리다가 찾아낸 그의 또 다른 작품 [중력 삐에로]를 덜컥 사버렸다. [사신 치바]가 단편집인데 반해 이 작품은 장편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신 치바는 몇 페이지 안되는 단편물인데, 나는 단편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단편이란게 읽을 때는 좋아도 읽고 나서 남는 여운이랄까 아니 힘이 잘 전달이 안된다. 물론 개중에 멋진 단편물도 있지만, 역시 길이에 제한이 있어서 그만큼 임팩트가 강해야 한다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만족스러운 작품을 보기 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대학교 1학년 때 [국어와 xx]이라는 과목이라는 수업에서 세계 명단편집을 읽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정해서 서평을 써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단편집 작가들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유명 작가의 이름들로 차례에 열거 되어 있었다. 그들이 작품들은 딱히 머리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것은 두 세번 읽어야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는 내러티브가 뒤죽박죽인 작품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몇 페이지 않되는 엽편에다가 내러티브가 정돈되지 않았으니...오죽했겠어. 그리고 비유가 얼마나 고전적인지...이게 다 내 무식을 알리는 것이겟지만 친해질 수 없는 단편들이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못 모르고 단편을 사면 결국 대표작만 읽고 나머지 작품은 안 읽는 깔끔하지 못한 버릇까지 생겨 버렸다.

 어쨋든, 이사카 작가의 장편 [중력 삐에로]가 집에 도착했다. 책 표지는 연두빛 보다는 에메랄드색 바탕에 무섭게 생긴 삐에로가 떡 하니 서있다. 인도 사람들이 미간 사이에 찍는 점(빈디)을 찍은 태양이 멀리서 삐에로를 보고 있는 듯한 표지...좀 묘하다. 무섭기도 하고...아리송한 표지다. 표지에 한참 넋이 나가있다가 책 윗뚜껑을 열었다.

범죄의 얼룩이 지워진 가족

 연일 일어나는 방화사건에 관심이 쏠린 낙서 클린 전문가 하루. 하루는 유전자 검식 회사에 다니고 있는 형에게 연속 방화사건에 어떤 룰이 있다고 알린다. 그리고 이들은 방화간 난 곳에 예고 표시로 있다는 그레피티 아트(벽낙서)를 보러 다닌다.

 하루, 그의 탄생비밀은 참으로 기구하다. 그는 어머니가 강간을 당해서 낳은 아이이다. 하지만 평범하지만 대단한 어머니의 남편은 하루를 낳아도 된다고 허락을 한다. 그의 이복 형인 이즈마와 하루는 잘 지낸다. 물론 이즈마의 아버지가 이즈마에게 하루의 탄생비밀에 대해 알려준 이후 집안에는 강간이나 그와 비슷한 소재가 나올 때마다 서로 경계한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그저 행복한 가정일 뿐이다. 가족 구성원이 약간 남다른...또는 범죄사건으로 재구성된 가족인 것이다.

 이즈마는 그런 동생을 아낀다. 동생이 자신의 탄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 섹스에 자체를 불경하게 여기는 말을 자주 해도 이즈마는 하루를 이해하려고 한다. 하루는 사드나 바티유의 이론에 대해 전면 반대를 외친다. 성적인 것 그리고 타인에게 주는 피해의식을 쾌락으로 여긴다는 이론을 증오한다. 그리고 비폭력을 외친 간디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여기며 간디의 명언을 형인 아즈마에게 Ÿ섦母?말한다. 하루는 피에 흐르고 있는 강간범의 DNA를 거부하기 위한 자신만의 금욕적인 수련방법인 듯 하다.

 두 형제의 연속 방화범 따라잡기에 그들의 아버지, 엄밀히 말하면 암으로 투병 중인 아즈마의 아버지도 동참학 된다. 물론 아버지는 병원에서 말이다. 

끊고자 했지만, 중력을 거부할 수 없는 삐에로

 하나씩 나타나는 방화범의 정체와 그 이후 나타나는 이들 두 형제의 운명.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중력에 눌려 있는 우리 사회의 숨 막히는 룰에서 벗어나고자 했을까. 아니다. 작가는 우리가 생각보다 편견과 오만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과학적 맹신이 가져다 준 무서운 사고의 기울림에 우리는 얼마나 저항력이 있을까. 하루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고자 한다. 강간범의 유전자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 생각에 하루는 자신의 아버지의 원죄를 씻어내기 위한 자신의 정화로 친아버지를 죽이러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살인이라는 또 다른 피해의식으로 남아있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 또는 그것에서 열심히 도망을 쳤지만 결국 다른 의미에서의 피해자가 된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이라 할지 호러 소설이라 할지 장르를 구분하기 애매하다. 추리 소설과 호러 소설은 서로 궁합이 맞으니 뭐 어떤 장르로 구분을 하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자아내는 하루의 불안에 흔들리는 형 아즈마의 시선에서  전달된다. 동생을 지키려 하는 형 아즈마의 평범하고도 순진한 모습에서 웃음이 새워나오기도 한다. 아마 작품이 동생인 하루의 목소리를 빌렸다면 아마도 엄청난 암울모드에 아마도 읽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추리,호러 소설이라는 점 이외에도 연속 방화범의 룰을 푸는데 필요한 정보에 대한 설명들이 과학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서 그 재미가 솔솔하다. 유전자 정보를 비롯해서 원인류에 대한 얘기까지, 전문적인 지식까지는 아니어도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을 듯 하다. 물론 써 먹을 때는 그다지 많진 않겟지만...

 무거운 무게를 다 떨쳐버린 무중력 삐에로가 된 하루가 땅에 발을 내디딜 것이라는 희망으로 남긴 작품. 책 읽는 3일 동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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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앤 존 Martin & Jhon 마틴 앤 존 2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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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랑

[Martin & John]

박희정


마틴과 존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시공간을 넘어선 사랑을 나눈다. 마틴과 존은 마치 한 쌍의 페어로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춘향이와 이몽룡, 콩쥐 팥쥐(이건 좀 아닌가...^^;;;)처럼 바늘과 실처럼 그들은 운명의 굴레에 묶여 있다. 마틴과 존, 이 이름으로 묶여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왠지 그들의 윤회의 고리를 타고 계속 이어지는 듯 하다. 설사 그들이 다른 공간에서 만나더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이다.

 

그들은 남성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물론 마틴과 존이 남성 이름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남성의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이 거친 남성들의 숨소리로 가득 차 있는 여느 BL물과는 다른 차별화된 스토리와 이미지로 채워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어느 커플의 화려한 데이트에서 흔히 등장하는 밝고 유쾌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아마도 보이는 사랑을 굳이 다루고 싶지 않은 작가 박희정의 소신일 수도 있겠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마틴과 존은 왠지 답답한 사랑을 하고 있다. 마틴이 존에게, 존이 마틴에게 갖는 감정, 느낌, 혼잣말은 음영으로 싸여있어 보호받고 있는 글씨체에서 독자에게 전해질 뿐이다. 마틴과 존, 그들은 각자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말할 뿐 서로의 감정은 전달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의 소통은 제3자의 말을 통해 전해진다. 또는 시간이 흐르고 예전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서 그 때는 못 느꼈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에 흐느낀다.

 

마틴과 존이 사는 세상은 메말랐다. 그것이 우리 일상이든 저 머나먼 어느 행성이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그들이 갖고 있는 무게로 짓눌러 있다. 황무지의 황폐함이 머문 곳 아니면 새벽 바다에 서린 안개 위에 떠 있는 소파에 있는 마틴과 존. 공허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 누구와 그를 안고 있는 그가 있는 책 표지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들의 관계는 결코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이다. 연못에 반사된 나르시스의 모습과 나르시스를 달리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닮아가고 닮아가려고 애쓴다. 서로의 반쪽을 완성해 가는 멀고도 짧은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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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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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그냥 내리 읽어버렸다.

사실 여백이 큰 편이라 빽빽하게 글자로 채워져 있는 여타 책보다는 눈피로가 덜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이라든지 연애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해본 내가 아직 어린애인지 소설의 소재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눈을 못 때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무래도 충분히 논쟁적인 소재이기 때문일까. 읽고 나서 머리 속이 복잡해 졌다.

  남자만 바람피냐, 아니다 여자도 바람을 필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여자는 바람을 핀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결혼을 두 번하게 된다. 이혼도 없이, 재혼도 아니고... 그걸 받아들이는 주인공 남자의 속타는 심정이 구구절절하게 펼쳐져 있다. 아마 그의 투정을 그냥 들었으면 지켜울 텐데, 축구의 룰과 유명 축구 선수들이 했던 명언들과 함께 그 자신의 이야기를 대유해서 마치 '축구의 이모저모'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정당한(?) 다부일처제

 다른 남자와 결혼한 아내도 싫고 그 남자도 싫단다. 하지만 아내를 사랑하기에 이혼할 수는 없다. 결국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그걸 용납하는 남자 주인공은 책 속에서도 말하지만 정말 나사 하나가 빠진, 제정신일 수 없다.

  하지만 남자들의 바람에 항상 상처 받는 여자들의 심정을 애처롭게 다룬 한(恨)서린 우리 옛소설에서 답답한 모습들을 봤다면, 이 소설에서는 두 남자 다 사랑하며 평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물론 주인공은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은 커리어 우먼으로서, 주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소위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 일을 강요받는데, 그녀는 어느 것 하나 소흘하지 않고 완벽하게 해낸다. 왠지 비현실적인 그녀에게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문학 작품에서 숱하게 등장하여 결국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고정관념을 한 방에 쳐내려간다. 그야 말로 속 시원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 남자의 이해할 수 없는 넓은 아량이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더욱 심한 것은 그녀와 결혼한 또 다른 남자...그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둘째 서방님????

아무튼 그의 순종적인 태도는 실로 자존심을 져버린 한 남자 아니 인간의 순애보라고 할 정도로...애처롭다.

 

역할 투쟁의 승자, 그녀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바꾼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마치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룬 것이 한참 이슈가 된 것처럼...

실제 커플들의 사랑과 같지만...성역할이 무너진 그런 것이 아닐까. 주인공 남자는 여성성을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가 여성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성은 여성에게 꼬리를 내리고 말고 여성은 결국 주도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오히려 성적인 측면에서 남성의 넓은 아량과 마인드는 어느새 그녀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결국 남성성과 여성성은 실로 역할이 만들어내는 것인가 하는 꽤나 말 많게 만드는 개인적 의견만 늘어놓고 말았다. 에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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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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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무료한 7월 말을 보내고 있던 나는 한달 여 전에 KBS1의 'TV 책을 말한다'라는 책 소개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 프로그램은 늦은 시간에 방영을 해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본 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이 프로그램에 눈을 고정하게 되었다. 한 여성 패널이 가슴이 굴곡이 보이는 검은 망사 못을 입고 빛나는 눈동자로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그녀의 인터뷰를 계속 지켜보게 된 것은  화면에는 그녀의 약간 부담스러운 노출에 대한 반감에서 였다. 나는 '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저자가 저런 옷을 입다니'하는 시비조로 화면 속 그녀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노출도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명쾌한 대답과 자신감 넘치는 자태는 실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바둑 두는 저자]와 [측천 무후]의 저자 샨사였다.

 그녀의 성장배경은 평범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0대 중반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지금까지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중국에서는 9세이 시집을 출간을 할 정도로 시작에 능했다고 한다. 프랑스에 와서는 7년만에 프랑스어로  처녀작 [천안문]을 지필한다. 그 이후로 평단의 호평을 받는 작품들을 써왔다. 그녀는 중국인이지만 프랑스 소설가로 유명하다. 그녀의 지필 공간이 프랑스이고 작품은 전부 프랑스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책을 말한다.'에서 그녀는 불어로 말을 했고 그녀의 말을 따라 흐르는 여자 성우의 더빙은 어색했지만, 그녀의 당당한 모습과는 사뭇 어울리기도 했다. 저자의 이미지가 계속 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콩쿠르 데 리쎄앙>상을 수상한 그녀의 작품 [바둑 두는 여자]를 서점에서 샀다. <콩쿠르 데 리›恃?gt;은 프랑스 고교생이 가장 읽고 싶은 책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예민한 감성과 아직 뿌리를 미처 내리지 못한 어린 나무 같은 이성을 지닌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이 책에는 충만한다. 우선 간간이 등장하는 중국 소녀와 대학생 민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 묘사는 한 편의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도화지에 그들의 흔들림이 보인 듯 하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일부 채워주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만의 추측이지만... 그 밖에는 사랑이 정신적 사랑과 물리적 사랑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사랑의 단계의 기존 관념을 쫓지 않는다. 플라토닉 러브이다. 단순히 언어로 표현된 플라토닉 러브가 아닌, 그것의 진가가 어렴풋이 전해져 온다.  

 [바둑 두는 여자]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중국의 만주 일대로 일본군은 중국 테러리스트를 처단하기 위해 잠시 주둔해 있는다. 만주에 살고 있는 학자 집안 출신의 중국 소녀와 만주로 중국 테러리스트를 처단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 군대의 한 장교의 이야기이다. 중국 소녀의 시점과 일본군 장교의 시점이 한 장씩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중국소녀와 일본 장교의 시점은 너무나 다르다. 오히려 그들은 적과 아군의 관계같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다만 국가와 국가 간의 벽이 있고, 민간인과 군인이라는 그 누구도 그어놓은 구분에 갇혀 있을 뿐이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둘은 만주 쳰훵 광장에서 바둑 맞수로 만난다. 맞수라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막대한 상금이 걸린 현대의 바둑이 아니다. 그들의 대결은 서로의 영혼을 확인하는 깊은 대화이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은 바둑을 둔다. 소녀의 이른 사랑으로 바둑판은 도중에 말 없이 끝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국 소녀와 일본국 장교의 스토리는 바둑과는 별개로 보인다. 하지만 대국이 지속되면서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무언의 사랑에 빠진다. 저자 샨사의 비유와 문체는 실로 중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그것도 빨갛게 활짝 피는 장미의 화려한 향이 독자를 끌어 당긴다. 이백의 시처럼 풍유가 돌기도 하고 두보의 시처럼 세상사의 깊은 고욕이 속을 애린다.  

 마지막 포로와 일본군 장교로 다시 재회하는 이 둘의 끝을 따라가니 책장에 어느새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그녀의 향으로 가득 채워진 이 책에서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 장 전까지는 유지가 되었지만 마지막 문장에 나는 결국 무너진다.

-내 사랑하는 이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나는 눌을 계속 뜨고 있으려고 애쓴다.-

  쓰라린 사랑의 맛을 알아버린 중국 소녀는 사랑에 대해 믿지 않는다. 일본군 장교는 매춘부에게서 일시적인 관계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으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과거는 사랑을 할 자세나 마음가짐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은 과거나 마음가짐이 필요 없다. 사랑은 언제나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사랑은 고귀한 자, 정결한 자만의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깨닫는 것이 힘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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