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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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니 엘스펫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19년 3월이었다. 당시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여서 한국은 깊은 비극에 휩싸여 있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한국의 애국자가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고초를 겪고 있었다. 그들은 폭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그저 줄지어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쳤을 뿐인데도그런 심한 고통과 구속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많은한국 사람을 죽였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얼굴에 그들의 생각이나 아픔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내가 스케치한 어느 양갓집 부인은 감옥에 들어가서 모진 고문을당했는데도 일본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인한 성품을 잘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간사한 농간 탓에 조국을 잃었고 황후마저 암살당했으며, 그들 고유의 복장을 입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말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나는 길을 가다가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 옷에 검은 잉크가 마구 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경찰이 한국인의 민족성을말살시키려고 흰옷 입은 한국인들에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생각이 부족한 일본 사람들은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자국에서의 악질적인 선전 때문에 한국 사람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린 마음을 가진 몇몇 일본인은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존경하고 심지어 숭배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한국의 역사가 일본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고 또 한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1936년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외국인을 상대하는 가게의한국인 직원들은 일본 사람들만큼 영어를 잘하는데도 대우나 승진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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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랑 달걀이랑 두부랑 그런 걸 사 가더라니까. 아휴, 마음 같아서는 계산 안 하고 그냥 들고 가라고 하고 싶었지. 그집이 밥을 해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눈물이 막 나려고했대도.
밥을 해 먹는다는 게 보통 의미가 아니거든. 그냥 밥 한끼 먹는 걸로 무슨 호들갑을 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밥을먹는다는 거는 살겠다는 거거든. 안 그래? 쌀 씻어야지, 물맞춰 밥통에 넣어야지. 반찬 만드는 건 손이 좀 많이 가?
짐승도 죽기 전에는 곡기부터 끊어. 그러니 그 엄마가 밥해 먹을 찬거리 사 가는데 세상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것마냥 기분이 이상하더라니까.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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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귀를 열어 둬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야.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도 이야기 덕분이지. 이야기는 우리를 침팬지보다 코끼리보다 개보다 강하게 만들어 줘.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어. 이야기는 그저 우리가 만든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이야기의 포로가 될지도 몰라. 수백만 명이 나쁜 이야기를 믿는다면 마치 악몽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꼴이 될 거야. 그래서 인간에게는 큰 고민이 생겼어. 이야기를 막무가내로 믿으면 학교에 가고 싶은 소녀를 총으로 쏘거나, 수백만명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만들듯이 끔찍한 일을 벌이게 돼. 반대로 모든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세상은 완벽해지기는커녕 엉망진창이 되겠지.
이 문제를 해결할 쉬운 방법은 없어. 너는 자라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될 거야.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이야기를 바꾸고, 어떤 이야기를버릴지 배우는 과정은 성장의 중요한 부분이야. - P160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큰 장점이 하나 있어.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그리 많이 듣지 않았다는 점이지. 만일 네가 열 살 때 악어 괴물이나 달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거야 정말? 설마! 그건그냥 어른들이 믿는 이상한 이야기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쉰 살 때는 그 이야기를 수천 번도 더 들었을 테고, 심지어 네 자식에게까지 말했을 거야. 그때는 생각을 바꾸기가 훨씬 힘들어.
따라서 나쁜 이야기를 바꿔야 한다면, 그 일을 할 사람은 어린이뿐이야.
네 어깨가 무겁다는 뜻이지. 그리고 네게 큰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
꼭 기억해 둬, 어떤 이야기를 바꿔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질문해보면 돼.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건 아닐까?‘
어떤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면 일단 조심하는 게 좋아.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지 들려 달라고 부탁하면 더 좋지. 그런다음에 마음과 귀를 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봐.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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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다른 문방구로 갔다. 그 문방구 아저씨는 공에 바람을 넣는 데 천 원이나 받았다. 친절하게 바람을 직접 넣어 주기는 했다. 공은 금세 다시 빵빵해졌다.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와 힘껏 공을 찼다. 단단해진 공은 쉽게 담장을 넘었다. 나도 담장을 넘어가 보았다. 하지만 곱슬머리도, 동네도 없었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곱슬머리에게 줄 편지와 사진을 쳐다보았다. 아빠랑 같이 살지 않아도 내가 아빠 아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없다. 곱슬머리는 그걸 알려 주러 온 건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가 이혼했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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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야. 너는 나를 너무 이해하려고 해. 이제 그러지마. 이제 뭐든 네 나이답게 해. 있잖아..... 너도 처음이겠지만 엄마도 처음이야. 그래서 몰랐어. 어떻게 하는게 너를 위하는 건지. 처음에 네 몸에서 거품이 나왔을 때는 다내 잘못인 것 같았어. 새엄마 손에 자라서 너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싶고……. 그래서 더 다가가지 못하고 그냥 기다렸어."
엄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짧았어. 기다리지 말았어야 했어.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네가 더 힘들어지고 멀어질 수도 있는데……………. 그걸 몰랐어. 바보 같지? 너는 나를 계속 좋아해주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손이 닿았는데도 습하지 않고 따뜻했다.
"이제는 다 표현하고 살 거야. 아빠도 그러기로 했어.
생각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자란 어른들을 네가 이해해 주렴."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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