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이 사는 모습은 이를 목격한 중국인 허웨이가 보낸 편지가 황성신문에 실리면서 조선에 알려졌어요..
"멕시코 이주민의 참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어요.
조선인이 여러 용설란 농장으로 흩어져 일할 때 부인이 아이를 팔에 안고 혹은 등에 업고 길가를 돌아다니는 모양은 참으로 소, 말과 같고 보는 이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조선인은제일 등급이 낮은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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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정부의 조직 개편과 김구의 등장-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될 당시 초대 국무총리에 이승만, 내무총장는 안창호가 뽑혔어. 하지만 이승만은 상하이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임지 정부 직제 (직무나 직위에 관한 제도 )에도 없는 대통령 행세를 했지. 그래서 초기 임시 정부는 한동안 안창호가 이끌어 갔어. 그런 가운데 1919년9월 임시 헌법을 개정해 임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자 이승만은 그 이듬해인 1920년 12월에 상하이로 부임해 왔어.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이전부터 국제 연맹에 청원서를 내어 우리나라를 위임 통치해 말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 이러한 이승만의 외교 노선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은 불만이 매우 많았지. 우리나라를 대신 통치해 달라고 남의 나라에 부탁하다니 불만이 많을 수밖에. 특히 무장투쟁을 주장했던 이동휘, 신채호 등의 불만은 더욱 거셌어. 신채호는 이승만의 위임 통치 요청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어.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은 존재하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나라를 되찾기도 전에 팔아먹었으니 더 큰 역적이란 말이오.
게다가 이승만은 미주에서 거둔 후원금을 자기 마음대로 썼다는 의혹이 있어 그러니 임시 정부 요인들 사이에서 불신과 갈등의 골이 깊어기에 이러한 일들로 무장 투쟁론자인 이동휘 같은 사람은 결국 상하이임시 정부를 떠나 본거지 연해주로 돌아가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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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월 스님에게 배운 고구려 정신을 떠올렸다. 천손 민족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다물 정신은 하늘의 아들로서 단군의 땅을- 되찾으려는 불굴의 투지와 주인 의식을 말한다.
 광개토 대왕님은 그 정신으로 개마 무사들을 이끌고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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