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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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는 그 상황과 그 시대의 가치관에 순응하고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다수의 생각대로 산다. 공동체(가족, 학교, 직장 등)를 자신보다 더 우선순위에 놓는다. 이런 만수에게 행복이나 기쁨보다는 아픔, 슬픔, 고통이 훨씬 더 많이 찾아오고 이어진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죽음으로 존재를 드러내려하지만, 결국은 투명인간이 된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삶의 한 모습일 것이다.

 

이와는 대조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등장하는 뫼르소이다. 그는 시대의 가치관(예를 들어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어야 하는데 울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온 몸으로 저항한다. 세상이 감당치 못해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만, 투명인간은 안 되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을 때는 살아있을 때지만, 떠내려갈 때는 죽었을 때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시대의 풍조에 따라가고 있는가? 거슬러 올라가려고 힘쓰고 있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떠내려가지 않고 사는 삶의 모습일까?

 

만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의 모습을 보며 내 아이에게 아버지로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일까? 내 아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는 길잡이의 본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투명인간의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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