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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 외에는 감정이라든가 이전에 사건이나 사실 등의 기록 또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든, 감정이든, 그 무엇이든 인간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전 역사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이성과 감정 때문에 전쟁이나 이상기후로 망했기에 기억전달자 한 사람에게만 기억하게 한 것이 아닐까?
생사여탈권(임무해제)도 직업도, 사물의 색깔은 물론이고, 농산물, 기후(날씨)도 가정과 가족의 수까지도 소위 원로라는 사람들이 통제한다. 이 원로들만이 어른이고, 나머지는 어른들이 돌보아야 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더 나쁘게 말하면 미개인, 개, 돼지)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오히려 아이인 조너스(많이 봐주어도 청소년)가 이전 시대에 안 좋은 사실과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원로들보다 더 신뢰하는 것 같다.
통제를 통해서 원로들 손아귀에 있게 되면 세상은 안전하고, 안정되고, 평화롭다고 여긴다. 그럼 인간 아기를 왜 낳게 할까? 아기 낳는 것을 중단시키고, 로봇을 생산하면 되지 않는가? 로봇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통제가 더 잘 될텐데 그러지는 않는다. 더 딱딱하고 차가운 로봇보다는 통제할 수 있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렇게 그들을 비판하면서 문득 나를 보니 나도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내 아이들을 원로들처럼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보다 교사인 내가 다 솔선수범(?)을 한다. 힘들어하고 피곤해하면서도 그러고 있다. 안전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미명하에 말이다. 많은 부분 아이들을 믿고 위임해주어도 될 일이 많은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체험학습장이 아니라 전제군주정인 교실이다. 이러니, 생활과 삶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하니 사회 어느 곳에서도 소위 꼰대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작은 상처와 실패에 어른이고 아이고 생명을 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나와 우리 교실을 바꾸고 싶다. 서로 비난과 통제보다 허용적이고 따스한 분위기, 실수하고 넘어져도 서로서로 있는 그대로 용납되고 토닥여주는 경험을 하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이런 것을 솔선수범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