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솔로몬 - 오늘을 빼앗긴 당신에게 건네는 3,000년 지혜의 인생 처방전
신동운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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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참 많은 것을 겪었다.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고, 처자식 건사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다. 치열했던 젊음이 지나가고 은퇴 후 내게 남은 것은 주름진 손과 제법 커버린 자식들, 그리고 조금은 쓸쓸한 여유뿐이다. 이 나이가 되니 세상의 온갖 자기계발서나 성공을 보장한다는 비법서 같은 책들은 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삶의 본질을 꿰뚫는 묵직한 고전에 마음이 간다. 그러다 우연히 신동운 선생이 엮고 번역한 <초역 솔로몬>을 집어 들었다. 젊은 시절 스치듯 읽었던 솔로몬의 잠언과 전도서가, 머리가 하얗게 센 지금에야 비로소 가슴을 치는 진짜 지혜로 다가왔다.

 

솔로몬이 누구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와 권력, 명예를 누렸던 왕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노년에 남긴 전도서의 첫 일성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였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젊어서는 그 ‘헛되다’는 말을 패배주의나 노인네의 허무주의로 치부했다. 하지만 칠십 고개를 넘어보니 안다. 내가 움켜쥐려 했던 재물,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기를 썼던 알량한 명예가 결국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았음을 말이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가져본 후에야 그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신동운의 초역은 이 무거운 깨달음을 현대적인 언어로 정제하여, 삶을 관조해야 하는 노년의 내게 큰 위로와 공감을 안겨준다. 내 손에 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의 소박한 기쁨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책에 담긴 잠언의 구절들은 남은 여생을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명확한 나침반이다. 특히 ‘말’에 대한 지혜는 여러 번 곱씹게 된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초역 솔로몬>은 더 깊은 통찰을 준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라는 구절처럼, 노년의 언어는 정제되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자식이나 젊은이들에게 내 낡은 경험을 강요하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솔로몬이 강조한 ‘듣는 지혜’와 ‘겸손’을 옷 입듯 둘러야 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지난날 내 가벼운 입방정으로 상처받았을 사람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 책은 단순히 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맑은 거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신동운 저자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자칫 딱딱하고 종교적인 텍스트로 갇힐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누구나 쉽게 읽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초역’이라는 형식으로 깔끔하게 뽑아냈다. 눈이 침침한 노인도 머리맡에 두고 한 구절씩 음미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짚어주는 편역 덕분에, 복잡한 배경지식 없이도 솔로몬이라는 위대한 인간이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절절한 인생의 비기를 오롯이 흡수할 수 있다.

 

인생 칠십, 고희(古稀)라 했다. 뜻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았던 지난날을 원망하기보다, 이제는 <초역 솔로몬>이 들려주는 지혜에 기대어 마음의 평수를 넓히고 싶다. 남은 날들은 아등바등 채우려 하기보다 아름답게 비워내는 연습을 하련다. 이 책은 나처럼 인생의 늦가을을 걷고 있는 동배들에게는 삶을 포용하는 넉넉함을,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린 젊은이들에게는 삶의 진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귀한 죽비가 될 것이다. 곁에 두고 매일 아침 한 구절씩 읽으며, 그저 나이만 먹은 늙은이가 아니라 지혜롭게 나이 든 ‘어른’으로 남은 생을 반듯하게 다듬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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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낭만, 일본 소도시 여행 - 소박한 멋과 맛, 낭만이 있는 일본의 작은 여행지 45곳, 최신 개정판
우승민 지음 / 꿈의지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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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도 참 많이 달라졌다. 젊은 시절의 여행이란 모름지기 남들 다 가는 유명한 명소를 바쁘게 찍고 돌아오는 일종의 ‘숙제’ 같았다. 화려한 도심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이름난 맛집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제대로 된 구경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리가 금세 무겁고 복잡한 인파 속에서는 머리가 어지럽다.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거대 도시의 번화가는 어딘가 모르게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피곤하기만 하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우승민의 <소소낭만, 일본 소도시 여행>은 지친 마음에 나지막한 숨구멍을 터주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화려한 대도시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일본 곳곳의 작은 마을들. 고요한 호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목조 건물, 작고 정갈한 간이역, 그리고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책장마다 단아하게 펼쳐졌다. 글쓴이가 안내하는 소도시의 풍경을 눈으로 가만히 좇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의 속도도 그 한가로운 풍경에 맞춰 천천히 느려지는 기분을 받았다.

 

이 책이 전하는 소도시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비워냄’에 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고 배워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거닐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나이 든 이에게 소도시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붐비는 사람들에 떠밀릴 필요도 없고, 다음 일정 때문에 시계를 자꾸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마을의 자그마한 찻집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기울이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시골 마을버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나온 삶의 노고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젊은 저자의 시선도 참으로 기특하고 따뜻하다. 자극적인 볼거리나 요란한 정보 나열 대신, 골목길 귀퉁이에서 만난 작은 꽃 한 송이, 주민들의 소박한 인사에 담긴 온기를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담아냈다. 칠십 평생을 살며 깨달은 삶의 진리 중 하나는, 인생의 진짜 보물은 커다란 성공이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순간 속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일본의 작고 고요한 마을들에서 발견해 낸 낭만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거창한 수식어 없이도 마음을 묵직하게 울리는 풍경들이 지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점점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낯선 환경에 선뜻 발을 내딛기가 저어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곳이라면 나 같은 늙은이도 배낭 하나 짊어지고 한가로이 거닐 수 있겠구나’ 하는 자그마한 용기와 설렘이 가슴 한구석에서 싹튼다. 거창한 목적지 없이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길을 조금 잃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뜻밖의 인연과 풍경을 선물해 준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여행은 새로운 것을 채우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가슴속에 쌓인 번뇌와 미련을 하나씩 비워내는 과정에 가깝다. 조용하고 한적한 일본의 소도시들은 그런 비움의 시간을 갖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처럼 보인다.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갈한 휴식을 꿈꾸는 또래의 노년들에게도 이 책은 한 점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 것이다.

 

책장을 닫으며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이름 모를 자그마한 간이역 벤치에 앉아 덜컹거리며 들어오는 1량짜리 시골 열차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세월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온전히 그 순간의 고요와 낭만을 누리는 삶. 우승민 저자가 선물해 준 이 소박한 설렘 덕분에, 잊고 지냈던 여행의 즐거움을 다시금 품어보게 된다. 참으로 마음이 평온해지고 따스해지는 기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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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역사 - 중동의 3천년 역사를 이해한다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시토미 유조 지음, 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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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랍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역사의 깊이를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았다. 중동이라 하면 흔히 석유와 분쟁, 혹은 낯선 종교적 열정이 떠오르곤 하지만, 이는 서구 중심의 시선이나 현대 언론이 만들어낸 짧은 단면에 불과하다. 시토미 유조의 <아라비아 역사>는 그 단편적인 편견을 너머 광활한 사막과 해양을 가로지르며 인류 문명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아라비아반도의 참모습을 묵직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세상의 여러 변화를 목도해왔지만, 역사라는 것은 늘 읽는 이의 삶의 궤적에 따라 새로이 다가온다. 젊은 시절의 역사가 사건과 인물의 성패를 쫓는 역동적인 무대였다면, 노년의 서재에서 만나는 역사는 인간과 문명이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성찰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척박한 풍토 속에서도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일구고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 아라비아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아라비아반도를 단순히 이슬람의 탄생지로만 한정 짓지 않는다. 이슬람 이전의 고대 문명부터 유목민과 정착민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독특한 사회 구조, 그리고 향신료 무역로를 통한 동서양 문명의 중계지로서의 역할까지 차분하게 이끌어간다. 사막이라는 거친 환경 속에서 싹튼 그들의 삶은 결코 열등하거나 고립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의 제약을 극복하며 구축한 그들만의 공동체 규범과 상업적 수완은,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기 쉬운 삶의 근본적인 유연함과 호기심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7세기 이후 이슬람의 등장과 확장 과정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나름의 신념으로 분열된 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그것이 순식간에 세계적 문명으로 팽창해 간 역사는 단순히 종교적 열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명사적 사건이다. 저자는 이를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에서 치밀하게 조명하며, 아라비아인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을 포용하고 유연하게 조화시켜 나갔는지를 객관적인 필치로 입증한다.

 

이러한 포용성은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온 노년의 눈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자의 문화를 흡수해 고유한 문명을 피워낸 그들의 지혜는, 갈등과 대립이 넘쳐나는 오늘날의 세계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인류의 삶을 지속하게 한 힘은 편협한 배척이 아니라 언제나 타인을 품어내는 유연함과 성숙함에 있었다.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객관적인 서술 방식 역시 마음에 든다. 특정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사료를 바탕으로 아라비아의 역사적 궤적을 짚어 나가는 태도는 책의 신뢰도를 높여준다. 번잡한 화려함보다는 사실의 깊이에 무게를 둔 글쓰기는, 조용히 책과 독대하며 삶의 이치를 되새기는 서재의 시간과도 잘 어우러진다.

 

책을 덮으며 아득한 사막의 바람 소리와 그 위를 지나갔을 무수한 상인들의 발자국을 떠올려본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의 일생이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가듯, 거대한 제국과 문명 역시 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과 지혜는 문자라는 기호를 타고 오늘날 먼 이국의 늙은 독자에게까지 전해져 깊은 생각을 안겨준다.

 

<아라비아 역사>는 단순히 낯선 지역의 과거를 알아가는 지식의 탐구를 넘어, 문명의 번성과 소멸, 그리고 인간 삶의 질긴 생명력을 돌아보게 하는 뜻 깊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넓고 깊어지는 삶의 길목에서, 낯선 세계의 아득한 시간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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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
김용삼 지음 / 플로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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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의 고개를 넘어 지난 삶을 되돌아볼 때면, 가슴 한구석을 지그시 누르는 뜨거운 덩어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세대가 온몸으로 통과해 온 그 처절했던 ‘가난’의 기억이다. 젊은 날의 우리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내일에 대한 희망 하나로 밤낮없이 달렸다. 김용삼 저자의 <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를 서재에서 차분히 읽어 내려가며,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땀 냄새와 흙먼지, 그리고 그 한복판을 지키고 섰던 한 사람의 고독한 결기를 다시금 마주했다.

 

이 책은 박정희라는 인물을 거창한 정치적 칭송이나 이념적 잣대로만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가장 잘 어울렸던 지도자, 화려한 해외 순방보다 먼지 날리는 공장과 경지 정리 현장을 더 자주 찾았던 한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진심’을 묵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소설이나 자극적인 각색 대신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엮어낸 이야기 속에서, 나를 가장 먹먹하게 만든 것은 그가 일평생 가슴에 품었던 ‘애민(愛民)’의 깊이였다. 그는 굶주린 국민에게 세 끼 밥을 먹이는 일을 자신의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다. “인권과 민주 모두 좋은 말이지만, 참다운 인권은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온다”라는 그의 굳은 신념은, 오늘날 배부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는 논쟁의 대상일지 몰라도, 그 시절 당장 오늘 먹을 쌀이 없어 피눈물을 흘려본 우리 세대에게는 생존 그 자체의 언어였다.

 

책을 읽으며 유독 마음이 머물렀던 대목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증언한 담당 군의관의 기록이다. 서거 당시 그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고, 넥타이핀의 도금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마저 해져 있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으나 마지막 모습조차 검소함 그 자체였던 그의 소박함은, 권력의 허무함 너머로 깊은 숙연함을 더해준다. 죽음 앞에서도 “나는 괜찮아”라는 단 한 마디로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국가와 국민이라는 짐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구어낸 오늘날 대한민국의 풍요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결단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땀 흘려 일했던 국민들의 희생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적이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진영의 편 가르기와 오염된 정보로 과거의 역사를 너무 쉽게 재단하는 현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희>는 잊혀가는 그 시대의 진정성을 복원하고, 우리가 통과해 온 역사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같이 살며 젊음을 바쳤던 또래의 동년배들에게는 뜨거운 위로와 자부심을 선사하고,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와 번영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인생의 노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고 뜨거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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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오디세이 ㅣ 메이트북스 청소년 1
호메로스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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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어서면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선이 점점 또렷해진다. 체력의 한계, 기억력의 감퇴,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사회적·심리적 테두리다. 고전이란 대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로 느껴지기 십상이지만, 호메로스의 원작을 정영훈이 편저하고 이선미가 옮긴 <청소년을 위한 오디세이>를 서재에 가만히 펼쳐 들고 읽어 내려간 시간은 내 안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친 항해사를 다시 일깨우는 묵직하고도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번역된 덕분에 오디세우스의 길고 험난한 여정이 눈앞에 그리는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건넜던 바다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와 달콤한 유혹의 사이렌, 그리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만들어낸 인간 한계의 시험대였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혜와 의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그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우리네 인생길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의 70년 생애를 가만히 돌이켜보았다. 젊은 시절에는 생계와 가정을 위해, 그리고 직장이라는 거대한 돛단배를 조종하느라 정작 나라는 선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은퇴 후 비로소 내 서재라는 작은 항구에 닻을 내렸을 때, 문득 삶의 두려움이 엄습하곤 했다. 이제 항해는 끝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잔잔한 항구에 머물다 스러져가는 것인가 하는 쓸쓸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위해 쉽고 다정하게 다듬어진 오디세우스의 고투는 나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인생의 진정한 ‘오디세이아’는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 순간’마다 새로 시작된다고 말이다. 오디세우스가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갈 때 사용했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노 젓는 기술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나 새로운 지식을 향한 열정까지 내려놓을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마음을 끌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만난 ‘사이렌’의 존재다. 귀향길에 만난 사이렌의 노래는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오늘날 70대의 나이로 살아가는 나에게 사이렌의 노래는 바로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라는 무력감’일 것이다. “이제 쉴 때도 됐잖아”, “새로운 걸 배워서 뭐 하겠어”라는 내면의 목소리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달콤한 유혹에 돛대에 몸을 묶어서라도 저항하고, 다시 펜을 잡고 생각의 노를 저으라고 독려한다.

 

또한 이 책이 청소년을 겨냥한 책이라는 점은 나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내 자녀들, 그리고 나아가 손주 세대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 역시 저마다의 키클롭스와 사이렌이 도사리는 바다일 터다. 70대의 할아버지가 이 책을 먼저 읽고 그 깊은 맥락을 짚어내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근사한 유산이 된다. 쉼 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삶의 태도와 지혜를 전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나에게 준 가장 소중한 역할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 뇌 기능이나 판단력이 저하되는 것을 당연한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쓰면 쓸수록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근육과 같다. 서재에 앉아 매일 새로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느끼는 지적 호기심은 결코 헛된 몸부림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활력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선 이들에게 읽기와 쓰기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나만의 이타카를 찾아가는 거룩한 항해다. 비록 신체적 스피드는 예전만 못할지언정, 오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삶의 궤적과 깊이 있는 통찰이 더해진 지금이야말로 가장 깊고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세월이 선물한 지혜라는 지도와 굳은살 배긴 통찰의 키를 쥐고 있기에, 지금의 항해는 젊은 날의 그것보다 훨씬 고요하면서도 묵직하다.

 

<청소년을 위한 오디세이>라는 고전이 오늘날 나에게 준 진정한 메시지는 단순한 영웅의 신화가 아니라 ‘제한을 두지 않는 삶의 태도’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나의 서재라는 항구에서 다시금 마음의 돛을 올린다. 세파가 아무리 거세고 세월이 흐른다 해도, 내 삶의 오디세이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한계를 뛰어넘어 깊이를 더해가는 진짜 항해는 바로 지금, 70대의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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