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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
김용삼 지음 / 플로우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의 고개를 넘어 지난 삶을 되돌아볼 때면, 가슴 한구석을 지그시 누르는 뜨거운 덩어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세대가 온몸으로 통과해 온 그 처절했던 ‘가난’의 기억이다. 젊은 날의 우리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내일에 대한 희망 하나로 밤낮없이 달렸다. 김용삼 저자의 <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를 서재에서 차분히 읽어 내려가며,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땀 냄새와 흙먼지, 그리고 그 한복판을 지키고 섰던 한 사람의 고독한 결기를 다시금 마주했다.
이 책은 박정희라는 인물을 거창한 정치적 칭송이나 이념적 잣대로만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가장 잘 어울렸던 지도자, 화려한 해외 순방보다 먼지 날리는 공장과 경지 정리 현장을 더 자주 찾았던 한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진심’을 묵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소설이나 자극적인 각색 대신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엮어낸 이야기 속에서, 나를 가장 먹먹하게 만든 것은 그가 일평생 가슴에 품었던 ‘애민(愛民)’의 깊이였다. 그는 굶주린 국민에게 세 끼 밥을 먹이는 일을 자신의 목숨보다 중하게 여겼다. “인권과 민주 모두 좋은 말이지만, 참다운 인권은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온다”라는 그의 굳은 신념은, 오늘날 배부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는 논쟁의 대상일지 몰라도, 그 시절 당장 오늘 먹을 쌀이 없어 피눈물을 흘려본 우리 세대에게는 생존 그 자체의 언어였다.

책을 읽으며 유독 마음이 머물렀던 대목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증언한 담당 군의관의 기록이다. 서거 당시 그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고, 넥타이핀의 도금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마저 해져 있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였으나 마지막 모습조차 검소함 그 자체였던 그의 소박함은, 권력의 허무함 너머로 깊은 숙연함을 더해준다. 죽음 앞에서도 “나는 괜찮아”라는 단 한 마디로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국가와 국민이라는 짐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구어낸 오늘날 대한민국의 풍요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지도자의 결단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땀 흘려 일했던 국민들의 희생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적이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진영의 편 가르기와 오염된 정보로 과거의 역사를 너무 쉽게 재단하는 현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희>는 잊혀가는 그 시대의 진정성을 복원하고, 우리가 통과해 온 역사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같이 살며 젊음을 바쳤던 또래의 동년배들에게는 뜨거운 위로와 자부심을 선사하고,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와 번영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인생의 노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고 뜨거워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