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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낭만, 일본 소도시 여행 - 소박한 멋과 맛, 낭만이 있는 일본의 작은 여행지 45곳, 최신 개정판
우승민 지음 / 꿈의지도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여행에 대한 생각도 참 많이 달라졌다. 젊은 시절의 여행이란 모름지기 남들 다 가는 유명한 명소를 바쁘게 찍고 돌아오는 일종의 ‘숙제’ 같았다. 화려한 도심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이름난 맛집 앞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제대로 된 구경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리가 금세 무겁고 복잡한 인파 속에서는 머리가 어지럽다.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거대 도시의 번화가는 어딘가 모르게 남의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피곤하기만 하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우승민의 <소소낭만, 일본 소도시 여행>은 지친 마음에 나지막한 숨구멍을 터주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화려한 대도시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일본 곳곳의 작은 마을들. 고요한 호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목조 건물, 작고 정갈한 간이역, 그리고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책장마다 단아하게 펼쳐졌다. 글쓴이가 안내하는 소도시의 풍경을 눈으로 가만히 좇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의 속도도 그 한가로운 풍경에 맞춰 천천히 느려지는 기분을 받았다.

이 책이 전하는 소도시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비워냄’에 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고 배워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거닐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나이 든 이에게 소도시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붐비는 사람들에 떠밀릴 필요도 없고, 다음 일정 때문에 시계를 자꾸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마을의 자그마한 찻집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기울이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시골 마을버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나온 삶의 노고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젊은 저자의 시선도 참으로 기특하고 따뜻하다. 자극적인 볼거리나 요란한 정보 나열 대신, 골목길 귀퉁이에서 만난 작은 꽃 한 송이, 주민들의 소박한 인사에 담긴 온기를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담아냈다. 칠십 평생을 살며 깨달은 삶의 진리 중 하나는, 인생의 진짜 보물은 커다란 성공이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순간 속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일본의 작고 고요한 마을들에서 발견해 낸 낭만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거창한 수식어 없이도 마음을 묵직하게 울리는 풍경들이 지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은 점점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낯선 환경에 선뜻 발을 내딛기가 저어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곳이라면 나 같은 늙은이도 배낭 하나 짊어지고 한가로이 거닐 수 있겠구나’ 하는 자그마한 용기와 설렘이 가슴 한구석에서 싹튼다. 거창한 목적지 없이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길을 조금 잃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뜻밖의 인연과 풍경을 선물해 준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여행은 새로운 것을 채우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가슴속에 쌓인 번뇌와 미련을 하나씩 비워내는 과정에 가깝다. 조용하고 한적한 일본의 소도시들은 그런 비움의 시간을 갖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처럼 보인다.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갈한 휴식을 꿈꾸는 또래의 노년들에게도 이 책은 한 점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 것이다.
책장을 닫으며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이름 모를 자그마한 간이역 벤치에 앉아 덜컹거리며 들어오는 1량짜리 시골 열차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세월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온전히 그 순간의 고요와 낭만을 누리는 삶. 우승민 저자가 선물해 준 이 소박한 설렘 덕분에, 잊고 지냈던 여행의 즐거움을 다시금 품어보게 된다. 참으로 마음이 평온해지고 따스해지는 기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