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필독서 15 - 프리드먼부터 버냉키까지 노벨경제학상 명저를 한 권에 ㅣ 필독서 시리즈 34
홍기훈.김동호 지음 / 센시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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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서재 창가에 앉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인간의 삶이란 결국 수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견뎌내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거창한 이념이나 일시적인 열기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관통하는 차분한 이치와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다. 홍기훈과 김동호가 함께 쓴 <노벨경제학상 필독서 15>는 인류 지성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핵심 사상을 한 권으로 요약해 보여주는 고마운 안 내서다. 이 책은 복잡한 수식과 난해한 이론의 숲에 가려져 있던 경제학의 본질을 인간의 삶과 맞닿은 온기 있는 언어로 풀어낸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시대는 급격한 경제 성장과 소란스러운 변혁의 연속이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번영의 시기를 거쳤고, 때로는 예증 없이 찾아온 경제 위기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경제란 그저 통장 잔고를 늘리거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실용적 수단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흔의 눈으로 다시 만난 경제학은 단순한 돈벌이의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제한된 자원 속에서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사회는 어떻게 협력하며 위험을 관리하는가'에 관한 깊은 철학적 탐구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15명의 거장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을 해석한다. 시장의 자율성을 신봉한 폴 새뮤얼슨이나 밀턴 프리드먼의 논리는 젊은 날의 역동적인 경제 현장을 떠올리게 하고, 인간의 이성이 완벽하지 않음을 간파한 대니얼 카너먼의 행동경제학은 나이가 들며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인간적 한계와 겸손함을 돌이켜보게 한다. 특히 자산 가격의 예측 불가능성을 파헤친 유진 파마나 로버트 쉴러의 사상은, 욕망에 눈이 멀어 무모한 투기나 부질없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에게 냉철한 경종을 울린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으며, 확신에 찬 오만이야말로 삶을 흔드는 가장 큰 적이라는 가르침이다.

 

노년의 서평가로서 이 책이 특히 반가운 이유는 난해한 원전을 직접 파헤치지 않고도 인류가 쌓아 올린 지혜의 정수를 명확하게 부감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경제학적 논의를 현실의 맥락과 연결하여 대단히 정갈하게 정리해 두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장들이 한평생을 바쳐 탐구한 사상의 뼈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잣대가 되어준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지성들의 고민은 결국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가난에서 벗어나 존엄한 삶을 누릴 것인가'라는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반하고 있었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이에게 경제학을 읽는 일은 자산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통찰하는 지적 여정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검증된 원칙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책은 세상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는 지혜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거장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 그리고 세월이 주는 절제와 통찰을 더해 인간과 사회를 관조하는 즐거움이야말로 이 책을 읽으며 거두어들인 가장 값진 열매라 할 수 있다. 삶의 깊은 이치를 되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참으로 정갈하고 묵직한 가르침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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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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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가벼운 제목이었다.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나이 일흔을 넘기고 돌아보니, 세상에는 평생 ‘읽은 척’만 하며 넘겨버린 수수한 진실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다. 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적자생존이라는 네 글자로 수없이 접했지만, 막상 그 원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이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왔다 자부하면서도 다윈의 문장을 직면하기보다는 그저 요약된 지식으로만 그를 소비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고생물학자인 사라시나 이사오는 이 책을 통해 아주 명쾌하고 솔직한 제안을 던진다. 고전이란 모름지기 들여다보기엔 너무 무겁고 외면하기엔 찜찜한 법인데, 저자는 진화론의 핵심을 가장 알기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어 읽는 이의 부담을 덜어준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지식의 요약본’이나 ‘교양인의 겉치레용 가이드북’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생명의 통찰이 결코 가볍지 않다.

 

책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써 내려간 시대적 배경부터, 그가 생물 세계를 바라보며 품었던 근본적인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다윈의 진화론이 단순한 과학적 이론을 넘어 세계관의 대전환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종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모든 생명은 긴 시간 동안 우연과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해 왔다는 사실. 다윈은 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창조했다는 당대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완벽하지 않은 생명들이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를 제시했다.

 

70대라는 인생의 고개에서 이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을 울린 대목은 ‘변이’와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연선택설의 핵심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점이지만, 그 전제는 결국 수많은 차이와 다양성에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특성, 때로는 불완전해 보이는 변이들이 쌓여 결국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인생 역시 완벽하게 짜인 설계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예기치 못한 변화, 불완전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온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자연의 법칙이나 사람의 생이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또한, 이 책은 ‘적자생존’이라는 단어가 주는 차갑고 서슬 퍼런 오해를 바로잡아 준다. 흔히 승자독식이나 강자만의 생존으로 오해받는 진화는, 사실 강함의 증명이 아니라 ‘적응’과 ‘다양성’의 결과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적응한 자라는 지극히 담담한 진리. 노년의 길목에서 바라본 삶의 터전도 그러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정직한 노동과 생존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다.

 

저자 사라시나 이사오의 문체는 유머러스하면서도 학자로서의 정밀함을 잃지 않는다. 자칫 난해할 수 있는 생물학적 개념들을 일상의 비유와 입체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로 번역해 주는 솜씨가 빼어나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다윈을 ‘아는 척’하기 위해 펼쳤다가, 결국 생명의 깊이에 ‘감탄’하며 덮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채워 넣는 일이 아니라, 지난날 알고 있던 지식의 깊이를 반추하고 삶의 지혜로 삭혀내는 과정일 것이다. 청년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그저 흥미로운 과학 해설서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의 후반부에 만난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교양서 그 이상이었다. 긴 세월 동안 쉼 없이 변화하고 흘러온 지구 위의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 시대를 살다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일깨워주었다.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은 마침내 원전을 읽어보고 싶다는 건강한 지적 호기심을 지펴주는 마중물이자, 삶의 변주와 시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멋진 길잡이다. 책장을 덮으며 내 서재 한구석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찰스 다윈의 두툼한 책을 슬며시 꺼내어본다. 이제는 ‘읽은 척’이 아니라, 진심 어린 눈으로 그의 문장을 마주할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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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32
호메로스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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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길고 긴 고향 복귀 길을 다시 읽는다. 청년 시절 고전이라는 이름의 의무감으로 책장을 넘기던 때와는 감회가 아주 다르다. 그때는 눈앞에 펼쳐지는 온갖 괴물과 신들의 방해, 화려한 모험과 영웅적 투쟁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일흔을 넘긴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영웅의 기상이 아니라, 모진 세파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결국 가야 할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한 인간의 지친 등이다. 정영훈 역으로 새로 나온 메이트북스의 <오디세이>는 그 먼 길의 고단함과 삶의 깊이를 담담하고도 명징하게 전달해 준다.

 

트라이아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다. 전쟁 자체에 쓰인 10년을 더하면 집을 떠나 있었던 세월이 무려 20년에 달한다. 젊음의 절정에서 출발해 인생의 가장 눈부신 황금기를 바다 위에서 보내고, 마침내 머리가 하얗게 희어진 뒤에야 고향 땅에 발을 내딛는 서사는 그 자체로 인간 삶의 축소판이다. 10년이라는 긴 방랑 속에서 그가 만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마녀 키르케, 세이렌의 유혹, 그리고 죽은 자들이 머무는 하데스의 음산한 저승 세계는 우리가 일생 동안 마주하는 공포와 욕망, 고독,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생의 고비들과 다르지 않다.

 

특히 바다 요정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을 되짚어보는 대목에서 깊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칼립소는 그에게 영원한 생명과 늙지 않는 불사를 약속하며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청했다. 죽음과 노화라는 인간 본연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원함은 진정 매혹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매일 바닷가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멀리 고향 이타카의 연기를 그리워했다. 유한하고 쇠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 머지않아 늙고 스러질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그 찰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일흔이라는 나이에 이르러 보니 그의 선택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언젠가는 사그라질 삶이기에, 늙어가며 체온을 나누는 소박한 일상이야말로 그 어떤 영생보다 존엄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또 하나 마음을 울리는 순간은 그가 마침내 고향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다. 영웅의 화려한 귀환을 기대했던 세상의 시선과 달리, 그는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보잘것없는 거지 행색으로 자신의 궁전에 들어선다. 젊은 구혼자들이 며느리와 집안을 어지럽히는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그는 분노를 삼키며 때를 기다린다. 오랜 세월 인생의 거센 풍파를 겪어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절제와 인내다. 진짜 힘은 요란한 구호나 과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바람을 견뎌낸 뒤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데서 나온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오랜 방랑을 끝내고 마침내 아내 페넬로페와 나란히 침상에 누워 서로가 지나온 고통과 시간을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이 거대한 서사시의 정점이다. 두 사람이 공유한 것은 단순히 재회의 기쁨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변함없는 믿음과 함께 견뎌낸 세월 그 자체였다. 삶이라는 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 역시 화려한 업적이나 명예가 아니라, 함께 비를 맞춰주고 끝까지 곁을 지켜준 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 싶다.

 

정영훈 역자의 번역은 옛 고전이 주는 문학적 무게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요즘 독자들이 읽기 쉽고 간결하며 감각적인 문체로 서사를 끌고 간다. 덕분에 가독성이 뛰어나 페이지가 막힘없이 넘어간다. 메이트북스판 <오디세이>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다에서 저마다의 ‘이타카’를 향해 항해하는 항해자들이다. 수많은 풍랑을 거치며 무언가를 잃고, 때로는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나아갈 곳이 어디인지 잊지 않는다면, 그 먼 방랑조차 결국은 돌아가기 위한 숭고한 과정이 된다. 오늘 밤, 책장을 덮으며 내 지난날의 풍랑과 수고로웠던 여정을 조용히 쓸어내려 본다. 오디세우스가 그러했듯, 나 역시 내 삶이라는 길을 묵묵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걸어왔노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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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인공지능이 결코 계산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이영환 지음 / 앵글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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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서재에 가만히 앉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젊은 시절과 많이 달라졌음을 새삼 깨닫는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청춘의 계절이 지나고, 삶의 궤적을 조용히 되돌아보는 나이가 된 까닭이다. 이영환 작가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처럼 인생의 서산낙일을 등지고 서서 지나온 길을 추스르고, 남은 여정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참으로 귀한 마중물 같은 책이다.

 

제목부터가 다소 무겁고 직설적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자칫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기성세대의 훈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첫 장을 넘기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필자가 느낀 것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축적된 삶의 지혜와 철학적 성찰을 담담히 풀어내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추어 보게 만드는 따뜻하고도 준열한 대화였다.

 


70대라는 인생의 지점에서 바라본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인간다운 삶의 본질’을 진정성 있게 짚어냈다는 점이다. 물질적 풍요나 명예, 사회적 성공 같은 덧없는 가치들이 결국 세월의 바람 앞에 얼마나 쉽게 바스러지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작가는 수많은 인문학적 통찰과 일상의 소박한 비유를 통해, 삶을 진짜 삶답게 만드는 것은 외적인 성취가 아니라 내면의 도덕적 성찰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스스로를 대면하는 진실함이라고 역설한다.

 


특히 필자의 마음을 깊이 울린 대목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비단 삶을 시작하거나 한창 달려가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일수록 이 질문은 더욱 절절(切切)해진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넘어, 남은 날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꾸어 나갈 것인가. 작가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기보다 조용한 울림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일깨운다.

 


책의 문체 또한 인상적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과장된 웅변 대신, 깊은 샘에서 차올라 온 맑은 물처럼 담백하고 단정하다.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무게감은 작가가 걸어온 삶의 깊이를 그대로 증명한다. 서재의 조용한 불빛 아래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노학자의 속삭임 같기도 하고, 오랫동안 묵혀둔 장독에서 꺼낸 깊은 장맛처럼 그윽하다.

 


요즘 세상을 둘러보면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문명과 극단적인 경쟁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중년은 삶의 무게로, 그리고 우리 같은 노년은 소외감과 상실감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곤 한다. 이러한 시대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시대를 관통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자녀 세대에게는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노년의 독자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품격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을 준다.

 

책을 덮고 뜰 앞을 바라본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물들어 가는 단풍처럼, 인생 역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물들어 가야 함을 다시금 되새긴다. 나이 일흔에 만난 이 한 권의 책은 나에게 남아있는 날들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숙제를 안겨주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남기고 갈 것인가.” 그 질문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내 삶의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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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일흔, 처음으로 ‘나’로 살기 시작했다
장미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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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이라는 숫자는 참 오묘하다. 인생의 칠부능선을 지나며 이제는 정상이 아니라 내려오는 길을 바라보아야 할 때라고들 말하지만, 막상 그 나이에 도달하고 보니 세상이 정해놓은 나이테가 그리 절대적이지 않음을 느낀다. 장미킴 저자의 <내 나이 일흔, 처음으로 ‘나’로 살기 시작했다>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언가를 정리하고 내려놓는 마침표가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첫 문장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돌아보면 지난 세월은 나 자신보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시작해 누군가의 부모로, 한 가정의 가장이나 사회적 직함으로 살아온 시간은 숭고했지만 때로는 무거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어야 했고, 내가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지 되물어볼 여유조차 누리지 못했다. 저자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려온 인물이다. 그러나 일흔의 문턱에서 그녀는 결연히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는 타인의 기대와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왔다면,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나’라는 존재의 이름으로 살아볼 수 없는가?”

 

이 책이 유독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는 저자의 고백이 거창한 이론이나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나이테처럼 담담하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70대는 세상에서 볼 때 늙어가는 시기일지 몰라도, 내면으로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는 때다. 사회적 의무와 기대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서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책을 펼쳐 들 여유가 생기고, 길가의 풀 한 포기와 바람의 결을 마주할 여백이 열린다.

 

저자는 일흔이 되어서야 시작한 자신만의 일상, 소소하지만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도전들을 따뜻한 필치로 그려낸다.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을 갖고 첫발을 내딛거나, 그동안 묻어두었던 자기만의 취향과 창작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모습은 나이라는 한계가 사실은 스스로 만든 벽에 불과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단순히 쇠퇴하는 과정이 아니라, 비워낸 자리에 새로운 호기심과 지혜를 채워 넣는 성숙의 시간일 수 있다는 성찰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 같은 70대에게 커다란 용기와 위로를 준다.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완벽함’을 내려놓고 ‘나다움’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젊은 시절 우리는 성과와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곤 했다. 그러나 일흔의 지혜는 더 이상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준다. 서툴더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내 속도대로 하루를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인생 후반전을 맞이한 어르신들의 에세이에 그치지 않는다. 노년의 길목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고, 나아가 언젠가 그 나이에 다다를 젊은 세대에게는 나이 듦이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훌륭한 이정표가 된다.

 

책을 덮으며 서재 창밖을 바라본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매년 새잎을 피워내는 나무처럼, 나 역시 오늘도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진다. 일흔은 인생이라는 책의 결말이 아니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 써 내려가는 가장 아름다운 장(章)의 시작일 뿐이다. 나이라는 숫자 뒤에 숨지 않고 오늘 하루도 내 삶의 당당한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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