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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전쟁 - 네 총대주교, 세 황후, 두 황제와 5세기 교회사
필립 젠킨스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5세기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잔혹했던 단성론 논쟁이 교회를 뒤흔들던 시기였다. 신학적 교리의 차이가 표면적 명분이었을지 모르나, 그 이면에는 정치적 권력욕과 각 지역 총대주교좌 간의 자존심 싸움, 그리고 황실의 개입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필립 젠킨스의 『예수 전쟁』은 바로 이 혼란스러웠던 5세기의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를 중심으로, 거룩함이라는 탈을 쓴 권력 투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밝혀낸다.
인생의 고갯길을 여러 차례 넘어 70대에 들어서서 이 책을 읽으니, 신학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진 인간의 집착과 권력욕이 한층 더 씁쓸하고도 명확하게 다가온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세상만사의 본질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된 나이에 바라본 5세기 교회사란, 과연 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었는지, 아니면 한낱 인간의 오만과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는지 깊이 고찰하게 만든다.

이 책의 원제는 『Jesus Wars』다. 직역하자면 '예수의 전쟁'인데,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사랑과 평화, 포용의 메시지는 간데없고 ‘예수가 어떤 분인가’라는 정체성을 두고 파벌을 나누어 서로를 단죄하고 도륙했던 역사를 비꼬는 제목이다.

저자는 네 명의 총대주교(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로마)와 세 명의 황후, 두 명의 황제가 어떻게 교회를 이념적 전쟁터로 만들었는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키릴로스는 상대 파벌을 무너뜨리기 위해 폭동을 일으키고 뇌물을 뿌렸으며, 군대를 동원해 반대파를 유배 보냈다. 그 과정에서 신학적 담론은 상대를 파문하고 비인간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나이가 들면 세상의 논리에 쉽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교리 하나, 문구 하나를 두고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붙이며 피를 흘리게 했던 그 당시 위정자들과 교부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정치적 진영 논리나 사상적 대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의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을 악마화 하던 모습은, 인간이 명분에 매몰될 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지점은, 승리한 교리만이 정통이 되고 패배한 신학은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5세기의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오늘날의 기독교 신학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거나 신성하지 않았다. 수많은 음모와 폭력, 국가 권력의 강압이 동원되어 얻어진 결과였다.
70대의 시선에서 보면 인생에서 ‘완벽한 승리’나 ‘절대적인 정의’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대에는 절대적인 진리라 믿으며 상대를 멸절하려 했던 칼케돈 파와 단성론 파의 갈등은 결국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교회를 분열시켰고, 이후 이슬람 세력이 손쉽게 그 지역을 정복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들의 오만이 결국 자신들의 터전 자체를 약화시키는 역사적 역설을 낳은 것이다.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명분이나 지식, 확신보다는 포용과 이해, 그리고 겸손함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예수 전쟁』은 나에게 참된 신앙과 인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교리가 사랑을 압도하고, 신학적 지식이 타인을 향한 칼날이 된다면 그것을 과연 진리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 필립 젠킨스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지나친 열정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냉철하게 경고한다. 신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곁에 있는 인간을 미워했던 5세기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타산지석이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사가 아니다. 치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는 거울이자, 명분에 눈이 멀어 본질을 놓치지 말라고 경고하는 지혜의 서서다. 삶의 경험이 쌓인 이들이 읽는다면, 역사 속 인간들의 미련함과 욕망을 꿰뚫어 보며 참된 평화와 겸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깊이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