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디세우스의 지혜, 흔들려도 가라 -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건너는 53가지 인생 지혜
호메로스 지음, 강현규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아득히 길어진 70대의 언덕에 서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에 일상의 소란함은 꺼지고 고요한 깊이가 들어앉는다. 젊은 시절 그토록 연연했던 세속의 성패와 타인의 평판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아득해지고, 마침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만이 오롯이 남는다. 고대 서사시의 거장 호메로스의 원작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강현규 편저의 <오디세우스의 지혜, 흔들려도 가라>를 펼쳐 든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정점에서였다. 고전이 주는 서늘하면서도 명징한 울림은 일흔의 나이에 접어든 내 영혼을 가만히 두드렸다.
이 책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10년 여정을 담고 있다. 거친 풍랑과 외눈박이 거인 거친 세이렌의 유혹, 그리고 기억을 잃게 만드는 연꽃을 먹는 자들의 섬까지, 오디세우스가 마주한 숱한 역경은 단순히 신화 속 모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70대의 시선으로 읽어 내려가는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곧 우리네 인생길의 완벽한 비유이자 거울이었다. 돌아보면 우리 역시 저마다의 이타카를 향해 항해하며 거친 풍랑을 맞았고, 수많은 유혹과 시련 속에서 흔들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책 제목인 ‘흔들려도 가라’라는 문장은 칠십 평생을 살아낸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젊은 시절 우리는 흔들림을 실패나 좌절로 여겼고, 늘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평온만을 갈구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건너온 지금 비로소 알게 된다. 삶이라는 바다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배는 없으며, 참된 지혜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센 풍랑 속에서도 키를 놓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달콤한 노래에 혹(惑)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었던 것처럼, 삶의 수많은 위기 속에서 나를 지켜낸 것은 거창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절제와 본향을 향한 고집스러운 집념이었다.

편저자는 호메로스의 문장을 고스란히 옮겨 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담담하고 정갈한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십 년의 세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힘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과 ‘오늘을 살아내는 의지’에서 찾는다. 70대에 이르러 이 대목을 마주하니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 사회적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결코 삶의 포기나 퇴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록 걸음은 느려지고 몸은 마모되었을지언정, 마음에 품은 삶의 방향만큼은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은 매우 깊고 절제되어 있다. 인생의 비바람을 견뎌낸 오디세우스의 절개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가볍게 휘발되지 않고 깊은 온기를 머금고 있다. 서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세상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시간이 다가온다. 노을은 눈부시게 밝은 한낮의 햇살보다 훨씬 더 깊고 그윽한 위로를 준다. 우리의 70대 삶 역시 그 노을을 닮았다. 너무 기뻐서 날뛸 일도, 너무 슬퍼서 저 밑바닥으로 꺼질 일도 많지 않은 지금, 인생의 거친 파도를 다 건너온 이들에게 이 책은 따스한 안식처이자 격려가 되어준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후반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혹은 세파에 흔들려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이 책은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의 안부 인사가 되어줄 것이다. 남은 계절 동안, 나 역시 지나온 삶의 흔들림을 긍정하고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이 가을의 시간을 가만히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