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간질일 수 없다 문학동네 시인선 98
이희중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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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사고력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고, 얼마만큼 확장될 수 있을까를 보여준 시집 같다. 시만으로는 126페이지, 한 편의 시를 읽기에는 굉장한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만큼 시인의 사유에 깊은 힘이 있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인생의 어느 순간을 그리고 있고, 범인은 도무지 생각지 않던 면을 노래하고 있어 묵직한 감동을 받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시는 총론과 젊은 예술가를 위한 노래다. 대체로 시를 읽은 후에는 시 뒤편에 붙은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곤 하는데, 이 시집에서는 읽고 싶지 않았다. 작가의 시와 나만의 감상이 누군가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시인은 앞 시집을 낼 때 아이가 태어났고, 그 다음 시집인 이 책을 낼 때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감동적인 시를 자주 만날 수 없었다는 점에 깊은 아쉬움과 함께 그가 보냈을 고독과 현실적 문제에 대해 가늠해 봤다. 시인이 시를 써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올 수 있을까. 문득 어두운 미래를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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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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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창작 노동자를 꿈꾸는 대학생들이 등장하는 리얼궁상만화. 지질하고 힘겹게 느껴지기만 하는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잘 녹여냈다. 캐릭터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었지만, 눈에 띄는 캐릭터는 오히려 사슴 정도였고 이 삭막한 반지하방에서 네 동거인들의 주고받는 대화가 눈에 띄었다. 물론 그들의 행동과 말이 캐릭터를 만들겠지만, 일관성은 있지만 캐릭터가 살지는 않았다고 본다. 오히려 작가의 철학과 웃픈 유머가 눈에 띄었다. 

  여러 장면들이 가슴을 치고, 이들 캐릭터들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나도 그런 시절을 겪었고 어쩌면 지금도 그런 시절과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05년에 초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와 스토리, 작가의 철학이 갖는 힘이 13년이 지나서도 이 책을 찾아 읽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13년이 흘렀음에도 변한 것 없는 사회가 이 만화의 자생력을 길러줬는지도 모른다. 젊음은 그저 불확실성 앞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말마따나 현실에 발을 넣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져 이렇게나마 버티고 살아남을 힘을 소진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이 있기에 용기를 얻고, 한 번 아프게 웃어버리고 내일 다시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최군부터 사슴까지, 그들의 눈빛만은 영롱히 빛나 살아있기에 기쁘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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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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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재일교포 1세의 아들로 태어나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사는 사람이다. 경계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을 일들로 인해 더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자기 젊은 날 고민하는 데에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담담히 자기 사유의 결과를 적었다. 

  지금을 살아간다는 고민으로 서장을 열고서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에 대한 사유를 적고, 마지막으로 늙어서 ‘최강’이 되라는 조언으로 맺음한다. 그의 질문은 개인이라면 한 번쯤 물어봤을 것들이지만 어설프게 고민을 그치지 말고 진지하고 끈질기게 고민을 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정보를 많이 안다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명확한 구분, 청춘은 나이와 관계없는 것이며 정서적으로 원숙함에 이를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청춘이라는 정언을 건넨다.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타력본원에 있지 않고 자기 고민의 결과물로 내린 답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적 타자로서 배려받길 원하기에 일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사랑은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라는 새로운 정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죽음이 무의미한 것은 삶도 무의미하다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관계를 찾으라는 조언과 분별없는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고민할 것을 충고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뻔뻔하게 도전하겠다는 저자의 다짐에 나 역시 용기를 얻게 된다.

  그의 책을 읽으며 변해가는 사회분위기 속에 위축되지 말고 나만의 끈기를 갖고 진지하게 사색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중단하지 말고 그 고민의 끝까지 파고 들어갈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불안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으로 노회한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 책을 추천해 준 이는 이 책을 인문학에 분류했고, 출판사에서는 에세이라고 하였으나 내게는 고독을 경험한 가슴 따뜻한 중년의 어른이 건네는 따뜻한 조언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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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Gift Edition) (유시민 친필 인쇄 문구가 담긴 청춘의 노트 포함)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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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신장판, 특별판을 포함해 90쇄를 찍은 책이다. 스스로 ‘지식소매상’이라 명명한 이는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게다가 정말 많은 책이 출판되고 있고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어떤 책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 답을 구하고 싶은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작가가 발췌한 작가의 문단을 주의 깊게 읽고, 마지막 후기를 읽었을 때 진한 배부름이 느껴지는 책.

  고전은 워낙 그 제목이 익숙해져 버리고, 누군가가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나도 모르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관념에 사로잡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전에 읽었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생각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는 것도 즐겁고, 문장이 어려워 읽기 꺼려졌던 책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좋았던 점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 A4 1장의 메모를 하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 내게 이 논리적인 정리가 훌륭한 습관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감상을 위주로, 기억에 남을 부분을 위주로 기록할 테지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작가의 논리적 태도와 기반한 지식, 동반하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통찰이 참으로 좋았다. 

  후기에서 작가는 책이란 모두 주관적으로 읽는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 책에서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 자신의 눈에 들어온 부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문학작품을 소개한 부분에서 자신이 사회학도의 시각으로 보았음을 인정한다. 이 열린 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믿음을 간직한 이 책을 지적 성숙을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는 “이제 갓 세상에 나가 길을 찾는 딸에게”라는 헌사가 붙어있다. 1차적으로는 이런 지적 가르침을 주는 부모를 가진 그의 자녀에게 부러움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 누구나 전인미답의 길을 매일 스스로 찾아가고 있음을 감안할 때, 때로는 연약하고 자주 강단 있는 존재로 살고 있을 모든 인간에게 바치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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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과학책 - 누적 조회 수 5억 뷰 최고 인기 과학 유튜브 채널 ASAP SCIENCE
미첼 모피트.그레그 브라운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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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AP SCIENCE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미첼 모피트와 그레그 브라운의 과학 상식 이야기. 실생활에서 궁금해 하는 내용들을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때때로 너무 쉽게 표현하다 보니 과학적 사실을 생략하고 비유적으로 넘어가기도 해서 전문서로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다 싶다. 하지만 쉽게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중학교 수준에서라면 호기심을 갖고 읽으며 더 깊이 있는 과학적 사실로 접근할 수 있는 대중과학서라는 생각이다. 

  실생활에서 궁금해 하는 질문에 답해주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추위와 감기의 상관관계(집에 있는 것이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이 높으니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나갈 것을 권유), 출산의 고통과 남자 성기 채였을 때 통증 비교(통증은 주관적이라는 결론), 콧물의 유효성, 늙으면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이미 경험한 것을 재경험하기 때문에 신선한 경험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느끼는 것. 그러므로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경험할 것을 권유), 숙취의 과학(물, 달걀, 과일이 필요), 셀카의 과학(사진보다 못생겨 보이는 이유는 좌우가 달리 보이기 때문인데, 타인은 사진에 찍힌 관점에서 나를 본다. 우리가 거울을 통해 보는 모습이 셀카로 찍히는 나의 모습. 익숙한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등등이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다. 자각몽에 관한 챕터도 있는데, 이것이 진짜 과학에서 인정하는 사실인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꿈을 적어보라는 시인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서 곧바로 꿈을 적는 것이 해가 되진 않을 것 같다. 하루에 2~5번의 꿈을 꾼다고 하니 그곳에서 나만의 영감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삽화가 분량상 비중 있게 들어가 있고 텍스트도 읽기 편한 대중과학서. 중학생 조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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