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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특별히 뱀장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게 있는 기억이라고는 어릴 적 부모님이 해 주신 푹 곤 장어 국물과 그나마 2년 전쯤 얻어먹은 장어구이가 전부라면 전부이다. 게다가 나름 연장자와 함께 했던 그때 그 자리에서는 막상 장어를 굽는 법도 먹는 법도 몰라 당황스러워서 굉장히 난감했었다. 때문에 정말 얻어먹기만 했는데 이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런 나에게 패트릭 스벤손의 에세이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놀라움과 신비로움, 호기심 등을 안겨주었다. 아니 책 소개를 미리 읽지 않았더라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의 주인공이 뱀장어가 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아니나 다를까 뱀장어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뭔가 어두운 느낌과는 전혀 다른 따뜻한 느낌의 표지를 생생하게 눈앞에 맞이하면서 또 한 번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뱀장어의 매력에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두 가지 내용을 번갈아가며 서술하고 있다. 하나는 뱀장어에 대한 모든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작가 패트릭 스벤손의 아버지와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이었다.
먼저 호기심을 끌어내듯 첫 장에는 뱀장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북서대서양의 사르가소해, 이곳의 둥둥 떠다니는 해조에서 유럽 뱀장어인 앙귈라 앙귈라가 태어난다. 이 얇고 가벼운 버들잎 모양의 유생은 즉시 유럽 해안으로 떠나는 길게는 3년이 걸리기도 하는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들은 유럽 해안에 도착하면 실뱀장어 상태가 되는데, 대체로 개울이나 강까지 올라가 즉시 민물 생활에 적응한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황뱀장어로 변태한다.
꽤 긴 삶을 살아가는 뱀장어는 한 장소에서 50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 잡힌 뱀장어 중에는 80년 넘게 산 뱀장어도 있다고 하는데, 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백 년 이상 산다고도 한다. 또 일반적으로는 15~30년쯤 되면 야생 뱀장어는 갑자기 번식을 결정한다는데 이때 느닷없이 은색 줄무늬의 은뱀장어로 변신하며 태어난 그곳, 사르가소해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뱀장어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번갈아가며 작가 패트릭 스벤손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펼쳐진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도로포장 인부로 일하다가 암으로 사망한 일용직 노동자였다.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면 집 근처 개울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잡았던 뱀장어가 떠오른다는 그는 역사, 생물학, 해양학, 문학,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앙귈라 앙귈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뱀장어는 무엇인가에 대해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p49
나는 태생이 이과생이었던 것인지 첫 장의 뱀장어 이야기에서부터 호기심과 신비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앙귈라 앙귈라'라는 귀여운 이름과 생애 동안 긴 여행을 한다는 점, 의외로 긴 수명, 그리고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면서 위는 사라지고 그동안 축적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헤엄쳐 간다는 이야기들. 게다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앙귈라 앙귈라의 비밀을 캐려는 인간의 노력은 프로이트 같은 유명인들이 등장해서 그런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조차 오랫동안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왠지 뱀장어를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또 문학, 신화 등에서 다뤄지는 뱀장어에 대한 내용들도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뱀장어를 묘사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는데, 삶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연 서식지에서 보는 뱀장어는 쾌활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좀처럼 으스대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먹고, 멀찍이서 방관하며,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반짝반짝 생기 넘치며 거칠게 돌진하고 대담하게 뛰어오르는, 자아도취적이고 자만심이 강해 보이는 연어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 민물에서도 바닷물에서도 살며, 변태를 거치며, 이동하기도 하는 둘의 생활사는 그래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또 작가는 아버지를 무뚝뚝했다고 표현했지만 정작 함께 한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따스함과 순수함, 아들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느껴지기도 했다. 개울 건너편에서 낚시를 하다가 기차 소리에 납작 엎드리는 아들과 함께 할 때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고, 먹기엔 너무 작은 뱀장어를 키우겠다거나 낚싯바늘을 삼킨 뱀장어를 들고 도움을 청하는 아들의 모습에는 무심한 듯 '네가 할 수 있어'하며 그의 교육관을 보여주기도 했다. 병에 걸린 고양이를 죽이는 모습과 할머니의 고양이를 죽이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하찮은 동물의 목숨일지언정 쉬이 생각하지 않는 생명관과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뜻밖의 생명체인 뱀장어를 통해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패트릭 스벤손의 에세이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덕분에 뱀장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던 최근의 일상에 오랜만에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