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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ㅣ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평점 :

최근에 이중섭의 인생과 그림에 한동안 빠져있었던 적이 있다. 어릴 적 미술 교과서에서 본 굵은 선의 소 그림은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는 다른 미술작품과 달리 강인하고 굳건하면서도 친숙한 느낌을 주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이와 달리 여행 중에 우연히 통영에서 만난 이중섭 가족의 삶은 굉장히 슬펐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방구석 미술관 2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을 다루고 있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만나보았다.
방구석 미술관 1권은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이라는 부재로 프랑스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을 다루었다. 그래서 '고갱', '폴 세잔', '반 고흐'를 편하게 만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이번에 나온 방구석 미술관 2권은 '미술'하면 서양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한국미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기회를 선사하고 있었다.
<방구석 미술관 2>는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 등 20~21세기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한국 화가 10인의 인생과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책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는데 일단 미술작품을 설명할 때 흔히들 사용하는 기법이니 사조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화가의 인생 이야기를 옛날이야기 풀어내듯 풀어내는 점, 그 과정에서 탄생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여 쉽게 그 변화를 확인하게 하는 점, 또 이를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서양화가의 작품과 비교하여 이해를 돕고 있는 점들이 좋았으며 특히 마지막 방법은 이 책만의 큰 장점이라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책의 목차는 인물 순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 인물들이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생각으로 그들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는지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만의 깨알 같은 장점이라면 방구석 미술관은 팟캐스터로도 나오기 때문에 qr코드로 해당 인물 부분의 팟캐스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 챕터는 시작 부분에 대표 작품과 화가의 사진을 실어 놓고 있는데 이는 잘 알지 못하는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등을 만날 때 특히 힘을 발휘하였다. 바로 낯선 이름과는 달리 어디선가 봤던 친숙함을 먼저 느끼게 해 주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역시 이중섭과 나혜석 편이 읽고 또 읽어도 좋았다. 이중섭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 이승훈이 세운 오산고보를 다녔으며, 민족 고유의 정신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후에 도쿄 문화학원에 다니면서 다양한 서구의 최신 회화 경향을 적용한다. 무엇보다 통영 여행 이후 이중섭의 사랑 이야기에 한동안 푹 빠져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멋지게 들을 수 있었다. 캠퍼스 커플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고 3년간 멋진 엽서화를 보낸 이야기. 마침내 결혼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제주도로 피난을 가고 생활고를 겪던 와중에도 나무판자에 그렸던 따뜻하고 환상적인 <서귀포의 환상>. 결국 폐결핵과 영양실조에 걸린 아내와 두 아들을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자신은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보내는 편지마다 그리움 가득 담아 따뜻한 그림들을 그려보낸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홀로 남아 담뱃갑 속 은박지에라도 그려야만 했던 그림에 대한 열정.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본의 가족들을 짧게 재회하고 통영으로 돌아와 수많은 걸작을 남기는데 안타깝게도 그림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를 겪다가 마흔하나에 어느 정신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더 밝은 어린아이 같은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 여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아닌가 싶다.
제목 <소의 말>. 이제, 소는 곧 중섭이 됩니다. 소년이 보았던 가축을 넘어, 청년이 보았던 민족의 상징을 넘어, 서른여섯의 사내가 본 소는 이중섭 자신이 된 것입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픈 것. 그렇지만 그는 소의 맑고 참된 숨결을 가슴에 담아 이 험난한 현실을 헤쳐나가려 합니다. -25
특히 이런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두고 작가 조원재는 다른 작품들과 멋지게 비교 설명하여 마음에 여운을 많이 주었다. 은지화에서 시작된 작품 <도원>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무용총의 수렵도와 나란히 소개하며 반드시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염원하는 중섭을 대변한다고 하고,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 그림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진정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추사의 난이 중섭에게로 와 한 마리 서예적 소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표현들은 다른 화가들을 소개하면서도 계속되는데 나혜석의 <봉황성의 남문>은 모네의 <루앙 대성당>과, 장욱진의 <어부>는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와, 천경자의 <황금의 비>는 요하네르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함께 보여주는 식으로 그 느낌을 절묘하게 잘 전달하여 더 기억에 남았다.
<방구석 미술관 2> 이 책을 통해 새로 매력을 느끼게 된 화가는 김환기였다. 막장 드라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예술사에서 이를 역으로 뒤집는 '부부의 세계'를 보여준 김환기·김향안 부부. 안좌도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유학을 보내주겠다던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혼인을 하지만 속은 것을 알고 혈혈단신 섬을 탈출한다. 그리고 니혼대학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서 이상과 사별하여 고통을 겪었던 동림을 만난다. 물론 이들의 결합은 쉽지 않았다. 결국 집안의 반대 앞에 동림은 '김향안'이라는 새 이름을 짓고 둘은 '곱게 살자'라는 맹세를 하며 결혼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국에서는 달항아리를, 프랑스에서는 '조선의 미, 민족의 미'를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뉴욕에서는 '점의 우주'로 성공하게 된다.
서양미술은 쉽지만 한국미술은 어렵다면,
이 책이 그 시작을 도울게요.
저자 조원재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있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었던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라면 재미와 함께 둘 다 잡을 수 있는 책으로 <방구석 미술관 2>를 권하고 싶다. 제법 두꺼운 책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오랜만에 책을 들었는데도 시간이 순삭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놀랐고, 한동안 덕질할 새로운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의 작품을 화면이 아닌 맨눈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