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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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데뷔작 <초크맨>으로 가장 주목받는 신예 작가의 반열에 오른 C. J. 튜더가 이번에는 <애니가 돌아왔다>로 돌아왔습니다. <초크맨>도 <애니가 돌아왔다>도 공포·스릴러 장르의 소설인데요.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이야기로 독자들을 또다시 설레게 만드네요.


​사실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이 첫 작품에 비해 흥행이 안되는 경우가 많기에 선택하면서 많이 고심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공포·스릴러 장르를 소설로는 잘 즐기지 않던 저도 흥미롭게 읽었던 책인데요. 뻔히 보이는 스토리 전개가 아니어서 오랜만에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반전으로 뒤통수 맞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책을 탁~ 덮으며 '영화나 미드로 나오면 재밌겠다. 나오면 또 봐야지'라고 생각했어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단편소설을 쓰던 C. J. 튜더는 어느 날 밤, 늦은 시간에 차고 문을 열었다가 아이들이 분필로 그려놓은 낙서를 보고 영감을 얻어 <초크맨>을 썼다고 합니다. 이번 <애니가 돌아왔다>는 <초크맨> 출간 당시 이미 원고가 완성된 상태였고, 작가의 어린 시절 탄광마을에서의 경험이 녹아있다고 해요. 여기까지도 작품을 써내는 그 엄청난 속도가 놀라운데요. 거기에 또다시 완성되었다는 후속작 소식이 들려 더욱 기대됩니다.


​작은 마을 안힐에서 엄마가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자살하는 처참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내 아들이 아니야'라는 피로 쓴 글씨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얼마 후 모두가 꺼리는 그 집에 영어 교사 조가 들어옵니다. 의문의 메일을 받고 어린 시절을 보낸 안힐의 모교로 부임한 조.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그리고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나를 붙잡고 있는 관계,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 나를 어떤 아이덴티티에 묶어놓는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아주 멀찌감치 도망치면 적어도 당분간은 나 자신에게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다. 자아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해제하고 다시 만들고 새로운 나를 으리으리하게 꾸밀 수 있다. 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 돌아가면 새로운 내가 임금님의 새 옷처럼 벗겨져 알몸이 드러나고 추악한 단점과 실수가 만천하에 공개된다.


​미스터리한 사건에서 시작하지만, 학교로 돌아온 조에게는 따돌림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이가 보입니다. 으레 학창시절을 소재로 하는 작품에서 다루어지곤 하는 소재인데요. 그래서 이 두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요? 궁금하게 됩니다.


​​

생각해보면 재밌는 게, 좋은 기억은 나비처럼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워낙 쏜살같고 야리야리해서 박살 내지 않는 한 포착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나쁜 기억은, 그 죄책감과 수치심은 기생충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안에서부터 조용히 나를 갉아먹는다. 151쪽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만나는 의미심장한 문장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복선일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주인공과 함께 독자도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주인공 조처럼 끔찍한 일은 아니지만 마음을 흩트려놓았던 과거를 말이지요.


인생에 승자는 없다. 결국은 잃는 게 인생이다. 젊음,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것들. 나는 가끔 인간을 진정으로 나이 들게 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들과 사물들의 소멸이라는 생각을 한다. 168쪽


​낮 동안의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여름밤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 잘 시간은 지났는데 불을 끌 수 없게 만드는 전개가 펼쳐졌는데요.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지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영화 겟아웃을 보며 그 끔찍함에 몸서리친 적이 있는데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오싹함은 살짝 그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네요.


​여태까지의 진부한 이야기들에 얼마나 자신이 젖어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은 다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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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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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이 생겨나고 다양하고 독특한 사진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하트를 누르며 우리는 좀 더 독특한 장소에 머물고 싶어졌고, 독특한 경험을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마다 생겨나는 카페는 획일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독특한 개성을 가진 공간으로 우리를 맞이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공간에 다양한 경험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경험하면서 한번쯤 내가 카페를 차린다면 어떤 공간을 만들게 될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는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라는 표지의 문구는 책 속에 어떤 답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경험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가치소비시대에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공간, 더 머물고 싶은 공간,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해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 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99쪽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는 1장에서 가게 공간을 디자인할 때 알아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과 디자인의 순서를 살펴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공간 디자인의 전체적인 규칙과 순서, 방법을 이해하게 됩니다. 2장에서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가치소비시대에 맞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공간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패턴에 발 맞춰, 더 머물고 싶은 공간,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공간을 만들어 재방문을 촉진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장에서는 각각의 공간 디자인 요소들을 잘 살린 일본의 브랜드 예시를 알아보고 뒤이어 기존의 공간에 콘텐츠를 결합시켜 이슈를 만드는 방법과 그 예시를 살펴봅니다.


​디자인적인 요소에 심리적 요소를 더하고, 공간을 방문하는 소비자를 배려하는 서비스 디자인의 영역까지 더한다면 공간의 깊이가 깊어질 것입니다. 공간의 깊이를 깊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경험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소비자의 경험이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질 때 비로소 공간은 그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187쪽


​이렇게 이 책에는 공간 디자인의 기본부터 다양한 예까지 전반적인 내용이 녹아 있는데요. 전 세계의 고급 브랜드에서 동네 가게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어 좋았고, 많은 사례 사진들이 실려있어서 어떤 방법으로 그들이 공간을 꾸몄으며 고객은 어떻게 그 공간에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사실 공간 디자인이라 하면, 음악·조명·상품배치·동선 등의 기본적인 공간 디자인 요소를 적절히 선택하고 배치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는데요. 책을 통해 직원을 위한 공간 구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고,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갖가지 활동이 언급되는 부분을 접하면서는 공간 디자인이라는 것이 제한적인 공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아닌 고객의 경험까지 설계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카페나 동네 책방 등 작은 자영업자가 많이 늘고 있는데요. 이 책은 이들에게 어떤 공간을 디자인해야 할지 그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고, 독특하고 개성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나의 취향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게 합니다. 또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공간인 뉴트로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서, 공간 디자인이 비싼 자재나 소품으로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최신의 것을 몇가지 더하는 것만으로도 색다르고 신기한 감성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 소자본으로 카페나 책방 등 작은 가게를 여는 것을 상상해 보신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어떤 취향이 담긴 공간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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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컨셉이다 - 불황기 10배 성장, 망해가는 가게도 살려내는 아주 작은 컨셉의 힘
정선생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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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특한 제목의 책 <장사는 컨셉이다>를 만나보았습니다. 예전에는 50~60대 퇴직자들이 치킨집을 냈다면, 지금은 경제 불황으로 20대 취업 준비생이 늘다 보니 20~30대에 자영업, 특히 외식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놀랄 일이 아니지만, 예전에 자주 방문하는 가게에서 만난 20대 직원이 젊은 사장님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놀랐던 기억도 나네요. 게다가 국내 자영업자 수는 600만 명에 육박하고 약 십분의 일인 60만 명이 외식업인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더욱 그 가치가 빛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 정선생은 10년간 프랜차이즈, 대기업 외식사업부 등 다양한 외식업계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일을 시작했기에 여러 업무를 두루 거치며 외식업의 전반을 다 꿰뚫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Creative lab이라는 외식 컨설팅 업체를 공동 창업하고 지금은 외식 컨설턴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답니다.


장사의 시작은 나(사장)의 본질을 바로 손님이 원하는 컨셉을 기획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45쪽


​저자는 수백 명의 사장님들을 만나며 모든 장사의 성공과 실패는 컨셉으로부터 정해진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에서는 카페, 국밥집, 마카롱 가게, 베이커리, 수산물 가게, 족발집 등 다양한 외식업에서 보고 경험한 성공 포인트를 소개하며 컨셉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안되는 가게, 죽어가고 있는 가게를 살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외식업계의 힘든 일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 그 힘듦을 이겨내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현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지요.


​3장에서는 STP 전략, SWOT 분석 기법, 4P 마케팅 기법 등 기초적인 경영 기법을 업장에 적용하며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전문성을 갖추도록 하고, 4장에서는 위생, 비용, 맛, 고객 응대법, 클레임 대응법, 단골 만들기, 직원 교육 등 전반적인 컨설팅이 이어지며,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지속 가능한 성공 프로세스 만들기'라는 주제로 실패, 목표, 리더십 등 힘이 들어 주저앉은 사장님들에게 힘이 될 응원의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사회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일이 아닙니다. 일 가운데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힘듭니다. 90쪽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일을 시작한 저이지만, 외식업에는 전혀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줄곧 어쩌면 언젠가 외식업에 몸을 담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종종 이런 분야의 책을 보곤 하는데요. 이런 저에게는 다양한 외식업에서도 각각 어떤 컨셉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기초 경영 기법들을 적용해보는 연습의 시간이었고, 주방과 홀에서 그리고 사장으로써 겪는 어려움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업종이나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힘든 일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장사는 컨셉이다>는 예비 창업자와 시작은 했지만 매출을 늘리고 싶은 사장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을 알지 못하지만 외식업으로 창업을 할 분들에게는 꽤 흥미진진하고 도움이 될 내용으로 보였고, 책 한 권의 가격으로 전반적인 컨설팅을 받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였는데요. 혹시 경영을 전공한 분들이라면 3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이 이론으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사례를 듣는 흥미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저자의 이야기에 주변 가게들이 차례로 떠올랐고, 몇 가지 상상의 가게를 정한 뒤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며 업장의 상황을 롤플레잉 하느라 바쁘게 머리를 가득 채웠는데요. 덮는 순간에는 '장사는 컨셉이다'라는 문장의 의미와 저자의 인생 이야기와 인생에 대한 태도가 가슴에 남아서 사실 저 스스로도 어리둥절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마도 저자의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밝히는 저자의 모습이나 타인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문장들에서 자신의 인생이든 타인의 인생이든 간에 모든 인생에 대한 존중감이 느껴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리더십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랑하고 이해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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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 -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양영은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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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여행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관광과 휴양을 떠올릴 수 있겠고, 이 외에도 좀더 구분해보자면 체험, 홈스테이, 워킹홀리데이, 트레킹 등 참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데요.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인생을 살수 없듯, 딱 그만큼 일상을 벗어나는 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국내에 위치하면서 이국적인 풍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제주, 그곳에서 한달살기가 유행하던 어느날 문득 기억이 났습니다. 벌써 십여년이 흘렀지만 마지막으로 제주를 다녀오던 해에 저는 지금의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와 문화가 다른 곳을 가게 된다면 적어도 한달쯤은 살다가 오는 여행을 하고 싶어~"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많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14쪽


​하지만 어느새 일상과 강력접착제로 붙어버린듯 떠나지 못했는데요. 뜨거운 커피가 살짝 부담스러워지려는 이 계절, 일본에서 한 달쯤 살다 온 사람들의 여행기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을 만나보았습니다. 책을 펴기도 전부터 제 부러움을 산 사람들은 20명이나 되었어요. 정확히 한 달이라는 날짜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렇게 볼 만큼 긴 일본 여행을 한 사람들.


​사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처럼 불편한 마음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에요. 하지만 많은 문화교류와 가까운 지리는 '일본이라면 어쩌면~ ' 이라는 마음을 먹게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그들의 여행.


​이 책의 저자들은 다양한 도시를 소개해요. 물론 도쿄가 8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이외에도 오키나와, 히로시마, 교토, 오사카, 이바라키, 고베, 와카야마, 대마도 등의 도시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워낙 유명해서 익숙한 도쿄와 달리 와카야마나 이바라키 같은 도시는 너무 생소해서 신기하기도 했고, 호기심도 생겼어요.


이국의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는 맑고, 커피는 맛있고. 망중한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26쪽


​사실 우리가 그리는 여행은 여유로운 아침의 모닝커피와 토스트, 빡빡하게 잡지 않아도 되는 관광일정, 일본의 골목, 저녁의 이자카야, 맛있는 음식, 영화 촬영지, 현지에서 사귄 좋은 친구들 일꺼에요. 이 책의 저자들도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도 여행지에서 한달 이상을 머문다면 처음 며칠은 여행자로써 이런 생활을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따라 여행자와 현지인을 오가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기도 하고, 직업을 구하고 빠듯한 살림살이의 생활인이 되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힘든 여행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모습을 보며 디지털 노마드라 할만한 프리랜서 번역가들이 부러워지기도 했어요.​


일본에 처음 왔던 한 달이 하룻밤 꿈과 같았다면, 지금은 인생에서 긴 휴가를 받은 것만 같다.108쪽

​우리는 여행을 통해 성장해요. 일상에서 만나지 못한 자신을 여행지에서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데요. 이 책의 여행자들도 자신들의 여행에서 자신을 찾게 되거나, 마음의 치유를 얻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거나,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래서 힘든 일을 겪을 때는 안타깝기도 했지만, 결국 이런 성장의 모습들을 보여줄 때에는 부러운 마음 감추기 어려웠지요.


한달 이상 머무는 여행에서는 관광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한 로컬도 아닌 반쯤 걸쳐져 있는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118쪽.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아서, 한일감정으로 보일만한 일을 겪고 컴플레인을 걸기도 하고, 우리와 다른 목욕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또 남자 목욕탕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 대한 일화는 놀랍기도 했는데요. 그런 모습들은 서로 이어져 일본의 일상이 어떨지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일본은 우리와 물가도 다르고, 역사·문화도 달라요. 그런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인으로써의 일본인들 모습에는 결국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는 사람의 일상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제주한달살기가 가능하다면 일본한달살기가 곧 유행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


​여행자와 생활인의 중간을 경험할 수 있는,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그 어정쩡한 한달이지만, 이를 통해 성장하고 인생이 달라진다면 용기는 선불입니다.


​한 달은 여행으로는 길게 느껴지지만 살아본다는 의미에서는 짧다. 적지 않은 돈을 사용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까운 시간이 되기도, 새로운 출발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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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 -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외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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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출간된 <퇴근길 인문학 수업> 3권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었지요. 그래서 이번 7월에는 읽어야지 하고 계획만 세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4권 관계 편이 나와버렸습니다. 핫(hot) 한 신간이 나왔으니 순서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어 얼른 관계 편부터 읽어보게 되었어요.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교육청과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을 바탕으로 기획된 책입니다. 이전에 출간된 1, 2, 3편은 각각 멈춤, 전환, 전진이라는 주제로 인문학을 접하고 있다면, 이번 4편은 관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정신과 전문의, 한문학자, 임상심리전문가, 경제학자, 심리학 박사, 노동인권강사, 인문학자, 연극 연출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평가, 북유럽연구소 소장, 상담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12명의 전문가들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한 명의 저자가 일주일 치 글을 담당하고 있으며, 12명이 총 3개월 분량의 인문학 수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친절하게도 책 표지를 넘기면 커리큘럼이 나와요. 1인 생활자, 개인과 사회, 소확행이라는 주제가 한 달 분량씩 진행되는데요. 그래서 커리큘럼에 따라 매일 읽어나간다면 딱 3개월 만에 끝낼 수 있기도 합니다. 


'인문학'하면 사실 어렵지 않을까 생각부터 들 텐데요. 글은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글 자체는 쉽게 읽혔어요. 하지만 글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고, 지인들을 돌아보다 보면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읽는 시간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책이었어요.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인용한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심리, 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존감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독 우리나라는 유교적 이념에 뿌리를 두고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와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 왔지요. 그래서 순응적이고 시키는 일만 충실히 하는 사람이 인정받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고 이제는 자기 확신과 미래에 대한 탐구심,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자존감의 수준과 이를 억누르는 인지 왜곡이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자존감을 억누르는 사회 분위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데요.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개인에게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 분위기로 인한 것들도 있으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예로 들고 있는 심청이와 바리데기 설화 속의 막장드라마 요소를 찾는 부분은 충격적이기도 했는데요. 자존감 같은 심리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하지 않아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의 한계를 이야기할 때는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달라져야 할 바람직한 사회 분위기를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한국의 1인 가구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1인 가구라고 하면 제일 먼저 20~30대 젊은 사람이 떠올라요. 하지만 한국이 이미 고령사회라 60대 이상의 1인 가구도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했는데요. 30~40대의 1인 가구는 스스로 자유로운 생활을 선택한 것인데 반해 노령 1인 가구는 비자발적 선택이며 소득수준이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미쳐 생각지 못한 1인 가구의 범주. 우리는 너무 젊은 1인 가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가족에 대한 환상은 가족은 혈육이니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대서 출발한다. 230쪽


우리는 가족에게 특별한 기대를 품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만큼은 나에게 무한한 사랑과 존중을 줄 것이라는 기대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더 큰 상처와 수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요술을 부린다. 213쪽



우리는 가족을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지기 이전에 두 남녀의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가족 간에도 서로 건강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요. 그래야 가족이라는 유기체가 위태로워질 때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명이 과도한 부담을 안는 일을 막을 수 있겠지요. 


엄마는 상담을 통해 점차 자신의 해묵은 불안과 딸의 진로가 별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담이 끝난 뒤 딸은 다시 좋아하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해 문예 창작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자신의 불안을 다루기 시작한 엄마는 어느새 딸에게 멀리 보고 너만의 꿈을 꾸라고 권하는 학부모로 변해 가고 있었다. 자신을 잘 아는 부모가 좋은 학부모가 된다. 220쪽


그리고 부모는 자신을 먼저 잘 알아야 건강하고 바람직한 학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노동은 일상의 삶 속에 있다. 우리는 모두 노동하며 살아가고, 노동 속에서 보람을 얻고, 노동 속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노동이 행복하면 삶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288쪽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되지 말자." 질문이나 비판받지 않는 권력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충분히 목도했다. 466쪽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노동환경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웠는데요. 20대에는 기존의 노동환경에 나를 끼워맞추기에 급급했고, 뭔가 힘들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빴어요. 그리고 창업을 해서 직원을 채용해 보기도 했는데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노동자로써 경험한 많은 일들이 부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많이 깨달았는데요. 많은 분들이 노동에 대해 좀더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내 가족 누구나 고용인 혹은 피고용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좀더 행복한 일터가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유사상은 봉건제의 생산구조로부터 뛰쳐나와 개성화에 부채질을 했고, 그 개성화는 "취향"으로 꽃피웠다. 결국 취향으로 증명되는 개성화가 자유에 대한 증거다.  321쪽

취향은 곧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349쪽


워라벨, 소확행, 휘게, 욜로 등 우리는 이제 일과 여가의 균형과 작더라도 지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소비시장의 변화로 알 수도 있는데요. 지난 우리 사회가 경제 성장을 부르짖으며 취향을 '사치'로 여겼다면, 이제는 '자유'의 의미로 여길 정도로 변했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 책은 심리, 경제, 사회, 문화, 신화, 과학, 역사, 문학, 고전 등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인상깊은 것을 몇 가지만 떠올리려고 하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기 시작해요. 이렇게 많은 글들이 제 마음에 와 닿았다는 점은 인문학이 더이상 관념적이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하는데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힘들게 깨닫기 이전에 이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면 '살아온 시간'들이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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