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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 -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 ㅣ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외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평점 :

이전에 출간된 <퇴근길 인문학 수업> 3권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었지요. 그래서 이번 7월에는 읽어야지 하고 계획만 세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4권 관계 편이 나와버렸습니다. 핫(hot) 한 신간이 나왔으니 순서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어 얼른 관계 편부터 읽어보게 되었어요.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교육청과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을 바탕으로 기획된 책입니다. 이전에 출간된 1, 2, 3편은 각각 멈춤, 전환, 전진이라는 주제로 인문학을 접하고 있다면, 이번 4편은 관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정신과 전문의, 한문학자, 임상심리전문가, 경제학자, 심리학 박사, 노동인권강사, 인문학자, 연극 연출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평가, 북유럽연구소 소장, 상담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12명의 전문가들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한 명의 저자가 일주일 치 글을 담당하고 있으며, 12명이 총 3개월 분량의 인문학 수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친절하게도 책 표지를 넘기면 커리큘럼이 나와요. 1인 생활자, 개인과 사회, 소확행이라는 주제가 한 달 분량씩 진행되는데요. 그래서 커리큘럼에 따라 매일 읽어나간다면 딱 3개월 만에 끝낼 수 있기도 합니다.
'인문학'하면 사실 어렵지 않을까 생각부터 들 텐데요. 글은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글 자체는 쉽게 읽혔어요. 하지만 글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고, 지인들을 돌아보다 보면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읽는 시간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책이었어요.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인용한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심리, 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존감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독 우리나라는 유교적 이념에 뿌리를 두고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와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 왔지요. 그래서 순응적이고 시키는 일만 충실히 하는 사람이 인정받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고 이제는 자기 확신과 미래에 대한 탐구심,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자존감의 수준과 이를 억누르는 인지 왜곡이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자존감을 억누르는 사회 분위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데요. 자존감이 낮은 이유가 개인에게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 분위기로 인한 것들도 있으며 그런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예로 들고 있는 심청이와 바리데기 설화 속의 막장드라마 요소를 찾는 부분은 충격적이기도 했는데요. 자존감 같은 심리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하지 않아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의 한계를 이야기할 때는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달라져야 할 바람직한 사회 분위기를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한국의 1인 가구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1인 가구라고 하면 제일 먼저 20~30대 젊은 사람이 떠올라요. 하지만 한국이 이미 고령사회라 60대 이상의 1인 가구도 많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했는데요. 30~40대의 1인 가구는 스스로 자유로운 생활을 선택한 것인데 반해 노령 1인 가구는 비자발적 선택이며 소득수준이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미쳐 생각지 못한 1인 가구의 범주. 우리는 너무 젊은 1인 가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가족에 대한 환상은 가족은 혈육이니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대서 출발한다. 230쪽
우리는 가족에게 특별한 기대를 품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만큼은 나에게 무한한 사랑과 존중을 줄 것이라는 기대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더 큰 상처와 수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요술을 부린다. 213쪽
우리는 가족을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지기 이전에 두 남녀의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가족 간에도 서로 건강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요. 그래야 가족이라는 유기체가 위태로워질 때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명이 과도한 부담을 안는 일을 막을 수 있겠지요.
엄마는 상담을 통해 점차 자신의 해묵은 불안과 딸의 진로가 별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담이 끝난 뒤 딸은 다시 좋아하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해 문예 창작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자신의 불안을 다루기 시작한 엄마는 어느새 딸에게 멀리 보고 너만의 꿈을 꾸라고 권하는 학부모로 변해 가고 있었다. 자신을 잘 아는 부모가 좋은 학부모가 된다. 220쪽
그리고 부모는 자신을 먼저 잘 알아야 건강하고 바람직한 학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노동은 일상의 삶 속에 있다. 우리는 모두 노동하며 살아가고, 노동 속에서 보람을 얻고, 노동 속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노동이 행복하면 삶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288쪽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되지 말자." 질문이나 비판받지 않는 권력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충분히 목도했다. 466쪽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노동환경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웠는데요. 20대에는 기존의 노동환경에 나를 끼워맞추기에 급급했고, 뭔가 힘들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빴어요. 그리고 창업을 해서 직원을 채용해 보기도 했는데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노동자로써 경험한 많은 일들이 부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많이 깨달았는데요. 많은 분들이 노동에 대해 좀더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내 가족 누구나 고용인 혹은 피고용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좀더 행복한 일터가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자유사상은 봉건제의 생산구조로부터 뛰쳐나와 개성화에 부채질을 했고, 그 개성화는 "취향"으로 꽃피웠다. 결국 취향으로 증명되는 개성화가 자유에 대한 증거다. 321쪽
취향은 곧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349쪽
워라벨, 소확행, 휘게, 욜로 등 우리는 이제 일과 여가의 균형과 작더라도 지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소비시장의 변화로 알 수도 있는데요. 지난 우리 사회가 경제 성장을 부르짖으며 취향을 '사치'로 여겼다면, 이제는 '자유'의 의미로 여길 정도로 변했구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 책은 심리, 경제, 사회, 문화, 신화, 과학, 역사, 문학, 고전 등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인상깊은 것을 몇 가지만 떠올리려고 하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기 시작해요. 이렇게 많은 글들이 제 마음에 와 닿았다는 점은 인문학이 더이상 관념적이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하는데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힘들게 깨닫기 이전에 이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면 '살아온 시간'들이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