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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 -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양영은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여행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관광과 휴양을 떠올릴 수 있겠고, 이 외에도 좀더 구분해보자면 체험, 홈스테이, 워킹홀리데이, 트레킹 등 참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데요.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인생을 살수 없듯, 딱 그만큼 일상을 벗어나는 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국내에 위치하면서 이국적인 풍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제주, 그곳에서 한달살기가 유행하던 어느날 문득 기억이 났습니다. 벌써 십여년이 흘렀지만 마지막으로 제주를 다녀오던 해에 저는 지금의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와 문화가 다른 곳을 가게 된다면 적어도 한달쯤은 살다가 오는 여행을 하고 싶어~"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많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14쪽
하지만 어느새 일상과 강력접착제로 붙어버린듯 떠나지 못했는데요. 뜨거운 커피가 살짝 부담스러워지려는 이 계절, 일본에서 한 달쯤 살다 온 사람들의 여행기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을 만나보았습니다. 책을 펴기도 전부터 제 부러움을 산 사람들은 20명이나 되었어요. 정확히 한 달이라는 날짜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렇게 볼 만큼 긴 일본 여행을 한 사람들.
사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처럼 불편한 마음이 전혀 없는 곳은 아니에요. 하지만 많은 문화교류와 가까운 지리는 '일본이라면 어쩌면~ ' 이라는 마음을 먹게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그들의 여행.
이 책의 저자들은 다양한 도시를 소개해요. 물론 도쿄가 8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이외에도 오키나와, 히로시마, 교토, 오사카, 이바라키, 고베, 와카야마, 대마도 등의 도시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워낙 유명해서 익숙한 도쿄와 달리 와카야마나 이바라키 같은 도시는 너무 생소해서 신기하기도 했고, 호기심도 생겼어요.
이국의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는 맑고, 커피는 맛있고. 망중한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26쪽
사실 우리가 그리는 여행은 여유로운 아침의 모닝커피와 토스트, 빡빡하게 잡지 않아도 되는 관광일정, 일본의 골목, 저녁의 이자카야, 맛있는 음식, 영화 촬영지, 현지에서 사귄 좋은 친구들 일꺼에요. 이 책의 저자들도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도 여행지에서 한달 이상을 머문다면 처음 며칠은 여행자로써 이런 생활을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았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따라 여행자와 현지인을 오가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기도 하고, 직업을 구하고 빠듯한 살림살이의 생활인이 되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힘든 여행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모습을 보며 디지털 노마드라 할만한 프리랜서 번역가들이 부러워지기도 했어요.
일본에 처음 왔던 한 달이 하룻밤 꿈과 같았다면, 지금은 인생에서 긴 휴가를 받은 것만 같다.108쪽
우리는 여행을 통해 성장해요. 일상에서 만나지 못한 자신을 여행지에서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데요. 이 책의 여행자들도 자신들의 여행에서 자신을 찾게 되거나, 마음의 치유를 얻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거나,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그래서 힘든 일을 겪을 때는 안타깝기도 했지만, 결국 이런 성장의 모습들을 보여줄 때에는 부러운 마음 감추기 어려웠지요.
한달 이상 머무는 여행에서는 관광객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한 로컬도 아닌 반쯤 걸쳐져 있는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118쪽.
이 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아서, 한일감정으로 보일만한 일을 겪고 컴플레인을 걸기도 하고, 우리와 다른 목욕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또 남자 목욕탕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에 대한 일화는 놀랍기도 했는데요. 그런 모습들은 서로 이어져 일본의 일상이 어떨지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일본은 우리와 물가도 다르고, 역사·문화도 달라요. 그런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인으로써의 일본인들 모습에는 결국 우리와 별반 다를바 없는 사람의 일상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제주한달살기가 가능하다면 일본한달살기가 곧 유행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어요.
여행자와 생활인의 중간을 경험할 수 있는,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그 어정쩡한 한달이지만, 이를 통해 성장하고 인생이 달라진다면 용기는 선불입니다.
한 달은 여행으로는 길게 느껴지지만 살아본다는 의미에서는 짧다. 적지 않은 돈을 사용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까운 시간이 되기도, 새로운 출발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