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패트릭 스벤손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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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뱀장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게 있는 기억이라고는 어릴 적 부모님이 해 주신 푹 곤 장어 국물과 그나마 2년 전쯤 얻어먹은 장어구이가 전부라면 전부이다. 게다가 나름 연장자와 함께 했던 그때 그 자리에서는 막상 장어를 굽는 법도 먹는 법도 몰라 당황스러워서 굉장히 난감했었다. 때문에 정말 얻어먹기만 했는데 이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런 나에게 패트릭 스벤손의 에세이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놀라움과 신비로움, 호기심 등을 안겨주었다. 아니 책 소개를 미리 읽지 않았더라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의 주인공이 뱀장어가 될 수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아니나 다를까 뱀장어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뭔가 어두운 느낌과는 전혀 다른 따뜻한 느낌의 표지를 생생하게 눈앞에 맞이하면서 또 한 번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뱀장어의 매력에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는 두 가지 내용을 번갈아가며 서술하고 있다. 하나는 뱀장어에 대한 모든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작가 패트릭 스벤손의 아버지와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이었다.


먼저 호기심을 끌어내듯 첫 장에는 뱀장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북서대서양의 사르가소해, 이곳의 둥둥 떠다니는 해조에서 유럽 뱀장어인 앙귈라 앙귈라가 태어난다. 이 얇고 가벼운 버들잎 모양의 유생은 즉시 유럽 해안으로 떠나는 길게는 3년이 걸리기도 하는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들은 유럽 해안에 도착하면 실뱀장어 상태가 되는데, 대체로 개울이나 강까지 올라가 즉시 민물 생활에 적응한다. 그리고 각각의 장소에서 황뱀장어로 변태한다.


꽤 긴 삶을 살아가는 뱀장어는 한 장소에서 50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 잡힌 뱀장어 중에는 80년 넘게 산 뱀장어도 있다고 하는데, 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백 년 이상 산다고도 한다. 또 일반적으로는 15~30년쯤 되면 야생 뱀장어는 갑자기 번식을 결정한다는데 이때 느닷없이 은색 줄무늬의 은뱀장어로 변신하며 태어난 그곳, 사르가소해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뱀장어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번갈아가며 작가 패트릭 스벤손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펼쳐진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도로포장 인부로 일하다가 암으로 사망한 일용직 노동자였다. '아버지'라는 말을 들으면 집 근처 개울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잡았던 뱀장어가 떠오른다는 그는 역사, 생물학, 해양학, 문학,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앙귈라 앙귈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뱀장어는 무엇인가에 대해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 그토록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p49




나는 태생이 이과생이었던 것인지 첫 장의 뱀장어 이야기에서부터 호기심과 신비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앙귈라 앙귈라'라는 귀여운 이름과 생애 동안 긴 여행을 한다는 점, 의외로 긴 수명, 그리고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면서 위는 사라지고 그동안 축적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헤엄쳐 간다는 이야기들. 게다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앙귈라 앙귈라의 비밀을 캐려는 인간의 노력은 프로이트 같은 유명인들이 등장해서 그런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조차 오랫동안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왠지 뱀장어를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또 문학, 신화 등에서 다뤄지는 뱀장어에 대한 내용들도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뱀장어를 묘사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는데, 삶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연 서식지에서 보는 뱀장어는 쾌활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좀처럼 으스대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먹고, 멀찍이서 방관하며, 어떤 관심과 인정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반짝반짝 생기 넘치며 거칠게 돌진하고 대담하게 뛰어오르는, 자아도취적이고 자만심이 강해 보이는 연어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 민물에서도 바닷물에서도 살며, 변태를 거치며, 이동하기도 하는 둘의 생활사는 그래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또 작가는 아버지를 무뚝뚝했다고 표현했지만 정작 함께 한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따스함과 순수함, 아들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느껴지기도 했다. 개울 건너편에서 낚시를 하다가 기차 소리에 납작 엎드리는 아들과 함께 할 때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고, 먹기엔 너무 작은 뱀장어를 키우겠다거나 낚싯바늘을 삼킨 뱀장어를 들고 도움을 청하는 아들의 모습에는 무심한 듯 '네가 할 수 있어'하며 그의 교육관을 보여주기도 했다. 병에 걸린 고양이를 죽이는 모습과 할머니의 고양이를 죽이지 못하는 모습에서는 하찮은 동물의 목숨일지언정 쉬이 생각하지 않는 생명관과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뜻밖의 생명체인 뱀장어를 통해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패트릭 스벤손의 에세이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덕분에 뱀장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던 최근의 일상에 오랜만에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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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쓸모 - 결국 우리에겐 심리학이 필요하다
이경민 지음 / 믹스커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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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지인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불편함 느끼지 못하던 몸에 하나 둘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참 마음이 많이 흔들렸었다. 그러다가 심리학 책을 다수 읽어 보게 되었고 다행히도 이를 통해 위안을 받고 스스로 추스를 마음의 힘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리학 개념들 중에서 핵심만 엄선한 책이 나왔다고 해서 <심리학의 쓸모>를 만나보게 되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전체를 대략적으로 보고 싶었달까.


​이 책의 저자 이경민 님은 상담심리지도사 1급·진로진학상담사 2급을 보유한 심리상담가로, 현재 서울시 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보드미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상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레짐작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 후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나'에 대해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상담 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이력이 뭔가 찡하게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었다.


​가족들을 살피고 그들의 감정 변화를 신경 쓰며 지내왔지만 정작 '나' 자신의 감정 상태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후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다른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에 대해 탐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상담 심리를 공부했습니다. 내 안에 덜컹거리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온전히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자 마음을 힘들게 하던 아픔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6쪽


​책은 그야말로 심리학의 전반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개론서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때문에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심리학에서 다루는 분야에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를 어떤 방향으로 다루는지 등을 크게 크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었다. 상담하듯 마음을 다독여주는 류의 책이 아닌 심리학의 지도 같은 책~!


예를 들면 책은 심리학의 다섯 가지 관점을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생물학적·정신분석학적·행동주의적·인지주의적·인본주의적 관점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접하는 분석심리학, 개인심리학 등은 정신분석적 접근에서 발전한 것이며, 스키너의 상자 실험 등은 행동주의적 접근 방식이라 하는 식이었다.


​때문에 심리학 전반에 대해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고, 만약 개론서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권해주기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중간중간 놀라운,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성격은 유전되는 것일까, 환경에 의한 것일까?', '지능의 발달'의 '유전 vs. 환경' 등이 그러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였다.


마음챙김(mindfulness)은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극복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마음챙김 연구가 존 카밧진 박사는 이를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비판단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마음챙김의 과정에서는 명상을 하며 신체 감각이나 감정 상태를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합니다. -293쪽


특히 이 마음챙김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행할 수 있는 것이어서 좋았는데, 10분 이상 침묵 속에서 발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거나 호흡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걷는 걷기명상, 먹는 과정에서 씹는 식감을 느끼거나 관찰하는 먹기명상 등이 소개되어 있어 기억에 크게 남았다. 나름 스트레스를 잘 받는 경향이 있어 외부 활동보다는 혼자 지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노력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 개론서로 심리학에서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큰 틀을 잡아볼 수 있는 책이면서도 또 이렇게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심리학의 쓸모>. 덕분에 굉장히 어렵고 심오하다고 느꼈던 심리학이 뭔가 훨씬 쉽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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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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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중섭의 인생과 그림에 한동안 빠져있었던 적이 있다. 어릴 적 미술 교과서에서 본 굵은 선의 소 그림은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는 다른 미술작품과 달리 강인하고 굳건하면서도 친숙한 느낌을 주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이와 달리 여행 중에 우연히 통영에서 만난 이중섭 가족의 삶은 굉장히 슬펐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방구석 미술관 2에서는 한국 현대미술을 다루고 있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만나보았다.


​방구석 미술관 1권은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이라는 부재로 프랑스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을 다루었다. 그래서 '고갱', '폴 세잔', '반 고흐'를 편하게 만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반면 이번에 나온 방구석 미술관 2권은 '미술'하면 서양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한국미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기회를 선사하고 있었다.


​​<방구석 미술관 2>는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 등 20~21세기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한국 화가 10인의 인생과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책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는데 일단 미술작품을 설명할 때 흔히들 사용하는 기법이니 사조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화가의 인생 이야기를 옛날이야기 풀어내듯 풀어내는 점, 그 과정에서 탄생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여 쉽게 그 변화를 확인하게 하는 점, 또 이를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서양화가의 작품과 비교하여 이해를 돕고 있는 점들이 좋았으며 특히 마지막 방법은 이 책만의 큰 장점이라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책의 목차는 인물 순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한국 현대미술사의 중요 인물들이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생각으로 그들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는지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만의 깨알 같은 장점이라면 방구석 미술관은 팟캐스터로도 나오기 때문에 qr코드로 해당 인물 부분의 팟캐스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 챕터는 시작 부분에 대표 작품과 화가의 사진을 실어 놓고 있는데 이는 잘 알지 못하는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이우환 등을 만날 때 특히 힘을 발휘하였다. 바로 낯선 이름과는 달리 어디선가 봤던 친숙함을 먼저 느끼게 해 주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역시 이중섭과 나혜석 편이 읽고 또 읽어도 좋았다. 이중섭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 이승훈이 세운 오산고보를 다녔으며, 민족 고유의 정신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후에 도쿄 문화학원에 다니면서 다양한 서구의 최신 회화 경향을 적용한다. 무엇보다 통영 여행 이후 이중섭의 사랑 이야기에 한동안 푹 빠져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멋지게 들을 수 있었다. 캠퍼스 커플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고 3년간 멋진 엽서화를 보낸 이야기. 마침내 결혼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제주도로 피난을 가고 생활고를 겪던 와중에도 나무판자에 그렸던 따뜻하고 환상적인 <서귀포의 환상>. 결국 폐결핵과 영양실조에 걸린 아내와 두 아들을 친정이 있는 일본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자신은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보내는 편지마다 그리움 가득 담아 따뜻한 그림들을 그려보낸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홀로 남아 담뱃갑 속 은박지에라도 그려야만 했던 그림에 대한 열정.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일본의 가족들을 짧게 재회하고 통영으로 돌아와 수많은 걸작을 남기는데 안타깝게도 그림이 팔리지 않아 생활고를 겪다가 마흔하나에 어느 정신 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더 밝은 어린아이 같은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 여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아닌가 싶다.


제목 <소의 말>. 이제, 소는 곧 중섭이 됩니다. 소년이 보았던 가축을 넘어, 청년이 보았던 민족의 상징을 넘어, 서른여섯의 사내가 본 소는 이중섭 자신이 된 것입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픈 것. 그렇지만 그는 소의 맑고 참된 숨결을 가슴에 담아 이 험난한 현실을 헤쳐나가려 합니다. -25


​특히 이런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두고 작가 조원재는 다른 작품들과 멋지게 비교 설명하여 마음에 여운을 많이 주었다. 은지화에서 시작된 작품 <도원>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무용총의 수렵도와 나란히 소개하며 반드시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염원하는 중섭을 대변한다고 하고,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 그림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진정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전한다고 했다. 그리고 추사의 난이 중섭에게로 와 한 마리 서예적 소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표현들은 다른 화가들을 소개하면서도 계속되는데 나혜석의 <봉황성의 남문>은 모네의 <루앙 대성당>과, 장욱진의 <어부>는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와, 천경자의 <황금의 비>는 요하네르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함께 보여주는 식으로 그 느낌을 절묘하게 잘 전달하여 더 기억에 남았다.


​<방구석 미술관 2> 이 책을 통해 새로 매력을 느끼게 된 화가는 김환기였다. 막장 드라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예술사에서 이를 역으로 뒤집는 '부부의 세계'를 보여준 김환기·김향안 부부. 안좌도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유학을 보내주겠다던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혼인을 하지만 속은 것을 알고 혈혈단신 섬을 탈출한다. 그리고 니혼대학에 입학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서 이상과 사별하여 고통을 겪었던 동림을 만난다. 물론 이들의 결합은 쉽지 않았다. 결국 집안의 반대 앞에 동림은 '김향안'이라는 새 이름을 짓고 둘은 '곱게 살자'라는 맹세를 하며 결혼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국에서는 달항아리를, 프랑스에서는 '조선의 미, 민족의 미'를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뉴욕에서는 '점의 우주'로 성공하게 된다.


​서양미술은 쉽지만 한국미술은 어렵다면,

이 책이 그 시작을 도울게요.

저자 조원재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있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 볼 수 있었던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라면 재미와 함께 둘 다 잡을 수 있는 책으로 <방구석 미술관 2>를 권하고 싶다. 제법 두꺼운 책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오랜만에 책을 들었는데도 시간이 순삭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놀랐고, 한동안 덕질할 새로운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의 작품을 화면이 아닌 맨눈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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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박소현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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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정말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쯤은 생기게 마련이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의 음악이라든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멋진 풍경과 함께 들었던 클라리넷 음악. 이외에도 <타이타닉>, <밀정> 등 나열하기도 숨 가쁠 정도다. 하지만 워낙에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그때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도 다시 영화를 보지 않는 한 음악만 별도로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 마침 이런 부분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책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저자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박소현 씨. 한국성서대학교 관현악 대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해설이 있는 독주회 시리즈 '알쓸신클'을 통해 일반인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추는 공연으로 더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책은 생각보다 쉽게 읽혔다. <일상 속 클래식>, <대중음악 속 클래식>, <TV 속 클래식>, <영화 속 클래식>,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속 클래식>, <문학 속 클래식>, <여기에도 클래식이?>의 7가지 챕터를 통해 자동차 후진음으로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에서부터 탱고 음악으로 재탄생한 클래식까지 우리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널리 사용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을 폭넓게 다루고 있었다. 마치 명화 속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들의 쌍둥이 버전으로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을 만난 느낌이랄까.


​책 속에 담긴 음악가의 연애사나 인생, 특정 음악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꽤나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생활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친숙한 소재를 들어 음악을 소개하다 보니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게다가 글이나 사진으로만 표현하기 힘든 음악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만큼 큐얼 코드를 통해 저자의 유튜브 영상으로 간단한 해설과 음악도 들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덕분에 고생스럽게 검색하지 않고도 책 속에 언급되고 있는 음악들을 쉽게 쉽게 들어 볼 수 있는 점이 특히 좋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들라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들고 싶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곡이었는데, 놀랍게도 '엘리제'가 누구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악필이었던 베토벤의 글씨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테레제가 엘리제로 탈바꿈되었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여겨져, 그나마 어린 제자 '테레제 말파티'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마치 모나리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 전 레미제라블을 통해서도 감명 깊게 눈물 흘려가며 들었던 <라 마르세예즈>. 때문에 그 장면만 수십 번은 봤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이념 자유·평등·박애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곡이 세상에 원래는 이탈리아 곡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때 즐겨들었던 <랩소디 인 블루>가 변진섭의 <희망사항>에도 쓰였다는 것을 새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는 생각보다 더 많이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클래식에 대한 친근감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차이점을 들라 한다면 유명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를 하나쯤은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점과 좀 더 친숙하게 좀 더 자주 클래식 음악을 대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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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나다 - 도서관 책모임이 협동조합 카페를 열다
독서동아리 책바람 지음, 박정희 엮음 / 미다스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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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가정을 꾸리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책 읽기라는 것이 큰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기회가 왔고 몇 해 전부터는 꾸준히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이제는 또 한 발 나아가 가끔은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아직은 은둔자적 성향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혼자서 책을 읽을 뿐이지만요. 그런데 며칠 전 별생각 없이 주문한 책 한 권이 제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바로 독서 모임에 참여해 볼까 하는 마음을 불쑥 불러일으켰던 <책과 바람나다>입니다.


​​<책과 바람나다>는 독서동아리 책바람 멤버들이 함께 만들고 엮은 책입니다. '책상 위의 철학, 발로 뛰는 철학, 함께 하는 철학'의 줄임말인 '책.발.함'은 '책으로부터 시작하여(發) 함께하다'의 뜻도 갖고 있다는데요. 많은 멤버들이 함께 지은 이름인 만큼 뜻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에 자못 미소짓게 됩니다.


​매주 회원들이 모여 고전 읽기를 7년째 지속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실천을 위한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는 독서 동아리, '책바람'. 그들에겐 어떤 스토리가 함께 하고 있을까요.


​2005년 광진정보도서관 독서회 2반에 주부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부담스럽지 않게 한 달에 1번 독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느낀 것이 많아 2013년에는 마을 공동체 지원을 받아 '부모 커뮤니티 사업'으로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공연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멤버들은 그들의 좋음과 아이들의 좋음에 기준 자체가 다름을 알게 되고 불가피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하게 됩니다.


​"우리들도 아이들처럼 공부한 내용을 시험 보고 결과를 집에 우편으로 보내 남편과 아이들이 보게 한다면 어떨까?" 그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늘 그런 일을 당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우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폭력적인 시스템을 갖추었는지 이야기했던 것 같다. 역지사지가 최고의 스승이다. p98


​이번에는 철학 공부! 2014년 동서양 철학사 개론을 접하면서 그 방대함으로인해 허탈감에 빠집니다. 이후 멘토의 조언에 따라 다음해부터는 고전에 해당하는 텍스트를 한권씩 읽어나가는 방향으로 접근 방식을 바꿉니다.


​2015년 철학에 대한 목마름으로 의기투합한 멤버들이 철학 스터디 모임 '책바람'을 결성합니다. 서양사를 공부하다보니 동양은 어떠했는지 궁금해져서 2018년에는 동양의 철학을 공부합니다.


이렇게 나에게 즐거움과 힐링을 주는 독서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읽은 책의 양에 비해 내 생각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은 매번 달라지지만 내가 말하는 내용은 항상 똑같아서 나의 말에 내가 질리기 시작했고, 생각이 변하면 행동도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불만이었다. …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이 '철학을 공부하자'였다. p25


​그리고 드디어 2019년에는 매년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모이던 '책바람' 멤버 7명이 처음 모임이 시작될 때의 소망인 협동조합 카페 '공간 책바람'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철학 공부를 위한 세계사 공부에 들어가지요.


아이가 성년이 되고, 남편의 퇴직이 가까워오면서 사회활동에 대한 갈망과 필요성은 커졌지만 취업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를 키우며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많이 변했고, 더 이상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내가 새로이 꿈꾼 사회 경제적 활동은 협동조합처럼 생산자이자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었다. 내 아이가 살게 될 세상이 공동체의 미덕을 유지하는 사회이길 바라게 되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고, 자본주의의 문제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할 수 있기를 꿈꿨다. p272


​이렇게 <책과 바람나다>는 도서관 독서회가 철학 스터디 모임으로, 그리고 다시 협동조합 카페가 되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여정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나 모임 중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긴 멤버들의 글을 보면서 일상과 독서회를 병행할 수 있었던 그들의 열정은 물론 성숙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으며,


​계획서 작성, 모임 일지, 독서 토론 방식 등의 모임 운영 방식은 물론 협동조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어서 '도대체 어떻게 마음을 맞추고 이뤄낸거지?'라는 궁금증을 말끔하게 씻어주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만난 인연이 도서관 독서회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과 공간에 대한 열망'으로 이루어낸 '공간 책바람'. 정말 흔치 않은 이야기였는데요. 책 모임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책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그들이 부러운 것은 저 뿐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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