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천황 폭살 계획은 치밀하지 못했다. 우선 시관병식에 대한정보가 부족했다. 육군 시관병식은 해마다 거의 같은 날에 거행되는연례행사였다. 이봉창이 천황 폭살을 시도한 이듬해 같은 날에 열린육군 사관병식 행사에 참여한 히로히토의 동정이 <동아일보>에 실려 있다. 보도에 따르면, 히로히토는 오전 9시 20분에 궁성문을 출발하여 10시 5분에 식장인 요요기 연병장에 도착했다. 식장까지의이동에 걸린 시간은 45분, 황실 근위사단과 제1사단 약 1만 명이 참석한 관병식은 10시 20분에 시작해서 비행대 57기의 공중 분열식까지 포함해서 11시 10분에 끝났다. 관병식에 소요된 시간은 50분. 분열식이 끝나고 히로히토는 11시 15분에 요요기 연병장을 출발했다.
갈 때와 같은 방식으로 이동했다면 출발지인 궁성에는 대략 12시에도착했을 것이다.
천황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이봉창은 윤봉길처럼 자신이 목표로 한 천황의 사진을 구해 얼굴을 익히거나 천황이 행차할 때 몇 번째 마차에 타는지조차 조사해 두지 않았다. 그것이 목표를 잘못 판단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시간이 부족했던것도 아니다. 1월 6일에 알아내지 못했더라도 그에게는 시간이 하루더 있었다. 그런데도 끝내 천황의 행차 길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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