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점에서는 나도 궁금해졌다. 무엇이 좋았을까? 성곽, 바위, 산, 어디서나 볼수 있는것인데.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림이 잘 나오는 곳은 하나같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를테면 바위산 꼭대기의 옛 성터라든지 신전이 서 있는 언덕같은 곳이었는데, 여행 다큐멘터리의 출연자는 언제나 그런 곳에 앉아 생각에 잠겨 메모를 하거나 천천히 거닐어야만 했다. 춥다고 오두방정을 떨어서는 곤란하므로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무너진 신전의기둥 사이에서 걸어나와 천천히 카메라의 앵글 밖으로 걸어나가야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런 촬영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중간중간에 PD는 마이크를 들이대고 보시니까 어떠세요?" 같은 질문을 던져왔고, 그때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내가 시칠리아에대해 알고 있는 빈약한 지식을 떠들어댔다. 그러나 이 모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나는 시칠리아를 좋아하게 되었다. 시칠리아에 불과 일주일 남짓 있었을 뿐이고 대부분의지역을 주마간산식으로 주파하였으며 시칠리아 주민들과 인간적인관계를 맺을 기회가 전혀 없었음에도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왜였을까? 시칠리아에는 내가 상상하던 시칠리아 대신 다른 어떤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도대체 뭘까?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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