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담 밑에 서 있었다.
내가 만일 감옥 방안에 있었다면 아무 관계가 없었겠지만 이미 담밑에까지 나온 후였으므로 급히 탈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남을 넘겨주기는 쉬웠으나 혼자서 한 길
반이 넘는 담을 넘기란 극히 곤란한 일이었다.
시기가 급박하지 않으면 줄사다리로라도 넘어볼 터이나,
문 밖에서는 벌써 옥문 여는 소리가 나고 감방에
있던 죄수들도 떠들기 시작했으므로 그럴 겨를이 없었다.
옆에서 약 한 길쯤 되는 몽둥이를 가져와 몸을 솟구쳐 담 꼭대기를 손으로 잡고 내리뛰었다.
그때는 최후 결심을 한 때였으므로 누구든지 내 갈 길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결단을 내버릴 마음으로 쇠창을 손에 들고 정문인 삼문(三門)으로 바로 나갔다.
삼문을 지키던 파수 순검도 비상소집에 갔는지 인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