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명나라를 높이고 찬양하는 일은 조선을 지켜내지 -못한 기득권세력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이는 이후 다시금 큰 전쟁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요.
선조는 조선의 27명 왕 중에서 명필 중의 명필이었다고 해요.
선조의 딸인 정명공주가 쓴 ‘화정(華政)‘이라는 두 글자는 아버지 선조와 매우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높이 평가받습니다(이것은 오늘날 간송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즉, 선조는 학문을 좋아하고, 영특하여 후궁의? 소생이었음에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선조는 국가의 리더로서 책임감이 부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포용력이 부족했던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조는 조선왕조 최악의 군주로 평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