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의 그릇 - 90세 현역 트레이더 시게루 할아버지의 일대일 부자 수업
후지모토 시게루 지음, 박선영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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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초보자인 나에게 투자는 늘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답답한 수학 문제 같거나, 암흑 속에서 손으로 주위를 더듬으며 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무서운 길이었다. 그러다 저자의 전작인 '주식투자의 기쁨'을 읽고 투자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이번 두 번째 책에도 큰 기대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90세의 베테랑 트레이더 할아버지가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며 주식의 진정한 의미와 스스로 찾아내야 할 돌파구를 설명해 주는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하고 있다. 덕분에 마치 옆에서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나 삶의 조언을 직접 듣는 듯 편안하고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평일 아침 8시마다 주식이 너무 재미있어서 가슴이 뜬다는 낯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돈벌이 수단으로만 주식을 대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에게 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우연한 승리는 있어도 우연한 패배는 없다"는 한마디가 깊이 남아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손실이 날 때마다 늘 시장 분위기나 운을 탓하곤 했지만, 남들이 사니까 따라 사고 대충 사버렸으니 돈이 달아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할아버지가 매일 장이 끝나고 공책에 거래 이력을 수기로 적으며 어디서 놓쳤는지 스스로 복기하듯, 나 역시 일확천금의 비법을 찾기보다는 매일의 거래에서 배우며 나만의 판단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을 읽으며 주가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단순한 실적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통찰도 크게 와닿았다. 결국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전부라는 깨달음은, 단순한 숫자나 차트의 움직임을 넘어 주식 시장을 거대한 사람들의 심리전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또 완벽하게 천장과 바닥을 맞추려 욕심내기보다 몸통에서 이익을 얻으라는 '머리와 꼬리는 내어주라'는 조언이나, 매일 먹고 입는 일상 속에서 투자 힌트를 찾는 법 등 실용적인 지혜들도 편안하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돈을 버는 데 정신이 팔려 제일 중요한 가족이나 삶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당부는, 투자를 대하는 나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바르게 잡아주었다.


결국 이 책은 나에게 화려한 매매 기술보다는 최악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투자의 그릇'을 다듬는 법을 알려주었다. 시장이 좋을 때는 누구나 자신만만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90세라는 나이에도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시장을 대하는 그의 모습처럼, 나 역시 조급함을 내려놓고 차근차근 나만의 투자 그릇을 키워가며 내 삶과 투자를 조금 더 즐겁고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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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투자 불패의 법칙 - 돈 걱정 없는 노후 50년을 만드는 연금 자동화 시스템
영주 닐슨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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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면 잠깐 안심했다가도, 며칠 지나면 다시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 이 돈으로 노후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프롤로그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이야기였다. 저자가 미국이나 노르웨이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데, 슈퍼마켓 계산원이나 아파트 관리인조차 은퇴 후를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더 부지런히 사는 것 같은 한국 사람들이 은퇴를 꿈이 아니라 공포로 여긴다는 대목에서, 나도 그 평범한 다수 중 한 명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룬 기사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내쉬던 게 딱 나였다.


책을 읽으며 가장 뜨끔했던 건, 내가 그동안 투자라고 믿었던 행동들이 사실은 방향 없이 이리저리 흔들린 것에 가까웠다는 사실이었다. 종목이 좋다는 말을 듣고 뛰어들었다가 시장이 꺾이면 겁이 나서 팔아버리는 패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이게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 좀 위로가 됐다. 열심히는 했는데 남는 게 없었던 이유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과 구조의 문제였다는 것.


책에서 자산배분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ETF와 TDF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그동안 ETF는 그냥 여러 종목을 묶어놓은 상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율을 내가 직접 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도구라는 걸 알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반면 TDF는 이미 그 비율 조정까지 알아서 해주는 완성된 포트폴리오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나는 뭘 사야 좋을지, 지금 타이밍이 맞는지에만 집중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TDF를 하나만 선택하지 못하고 두세 개로 나눠 담으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결국 선택에 대한 불안을 관리하려는 것뿐이고 오히려 자산이 한쪽으로 쏠리는 결과를 만든다는 지적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게 떠올랐다.


책에서 강조하고 가장 오래 곱씹은 부분은 리밸런싱이었다. 많이 오른 자산을 팔고 덜 오른 자산을 사는 게 전부라는 설명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한 행동이 결국 고점에서 팔고 저점에서 사는 걸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는 걸 이해하고 나니 왜 이게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리밸런싱을 하면 수익이 깎이는 것 같아서 왠지 손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가 말하듯 이건 수익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수준을 계속 유지해주는 안전벨트 같은 거라는 설명이 훨씬 납득이 됐다. 자주 할 필요도 없고, 시간을 정해두거나 비율이 일정 이상 벗어났을 때만 조정하면 된다는 것도 실제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나에게 필요했던 건 대단한 정보나 종목 추천이 아니라 그냥 흔들리지 않을 구조 하나였다는 것이다. ETF든 TDF든 결국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어떻게 배치하고 얼마나 자주 손대는지가 관건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노후를 생각하면 여전히 막연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뭘 먼저 정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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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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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름을 유심히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꾸 옮긴이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정지인. 낯익은 이름이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옮긴 사람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문장이 참 편안했다. 원서를 번역한 티가 나지 않고 그냥 누군가 나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랄까. 어려운 개념도 술술 읽히니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책 한 권을 읽었다기보다 좋은 이야기를 오래 들은 기분이 들었다.


식물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책은 여러 번 뒤통수를 쳤다. 베란다에서 화분 몇 개를 키우면서도 나는 늘 식물을 수동적인 존재로 여겼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고, 햇빛을 못 보면 축 처지는, 전적으로 내 손에 생사가 달린 연약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그 반대에 가까웠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정교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만들어낸 존재였다. 미모사가 손끝이 닿자마자 잎을 접는 걸 보고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전기 신호를 통한 소통이라는 걸 알고 나니 예전에 키우다 시들어버린 미모사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그 식물에게는 계속 반응해야 하는 자극이었고, 그 반응을 계속하다가 지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벌레와 식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자신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무조건 없애는 게 아니라, 나중에 수분을 도와줄 나방이 될 때까지 어느 정도는 견디다가 필요할 때 화학물질을 내뿜어 균형을 맞춘다는 이야기였다. 이걸 읽으면서 내가 주말농장에서 봐왔던 식물들의 싱싱함이라는 게 사실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그 나름의 계산과 인내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시의 갈라진 보도블록 틈을 뚫고 올라오는 나무를 보면서도 그저 생명력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 있는 집요함과 전략을 생각하니 식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마늘이 싹을 틔우려면 겨울의 추위를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식물에게도 기억이라는 게 있고, 그 기억을 통해 때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효율을 따지며 살아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식물이 조용히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내가 그동안 식물을 얼마나 빨리 자라야 하는 존재로만 봐왔는지 반성하게 됐다. 척박한 환경에 있는 식물일수록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부분에서는, 결국 어려움을 겪은 만큼 유연해진다는 게 사람에게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가장 남는 문장은 식물이 우리에게 생명을 빚지게 하는 존재라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 우리 몸을 이루는 당분 모두 결국 식물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나니, 식물과 나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인 돌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몇 번이나 실패했던 리톱스를 떠올리며, 내가 잘못 키운 게 아니라 그 식물이 살아온 환경과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 안에서 흐르고 있을 신호들, 겨울을 기억하는 방식, 조용히 이어지고 있을 관계들을 상상하게 된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살아있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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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심리전이다 - 노벨상 수상자와 거장들이 말하는 투자의 심리학
마이클 코벨 지음, 장진영 옮김 / 이레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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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 트레이딩과 추세추종 전략으로 유명한 저자가 썼다고 해서 이 책을 순전히 투자서로만 기대했다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투자는 심리전이다'라는 제목처럼 시장 이야기도 물론 나오지만, 책을 덮고 나서 남는 것은 오히려 심리학과 자기계발서를 함께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휴리스틱, 아이의 동기, 의사의 과잉진료, 놀이의 의미, 승부의 심리까지, 투자라는 창을 통해 결국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성장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책이었다. 그래서 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특히 나처럼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곱씹을 거리가 많은 책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꺼내 읽어볼 책으로 찜해두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생각해볼 부분은 휴리스틱 이야기였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통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나 자신은 하루하루의 판단을 그렇게 내리지 않는다. 운전할 때 모든 걸 계산하며 핸들을 돌리지 않듯, 나 역시 중요한 결정을 몇 가지 익숙한 규칙, 오랜 경험에서 나온 감으로 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통계적 사고라는 게 얼마나 현실적인 기준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은 완벽한 계산이 아니라 좋은 휴리스틱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힘일지도 모른다. 노력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던 것도, 결국 학생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의 흥미와 어른이 바라는 성장 방향이 일치할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도 인상 깊었다. 손흥민의 사례를 보며, 만약 그 아이가 애초에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 창업을 준비하던 입장에서 나는 아이가 원하는 것과 내가 바라는 성장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몸을 변화시키는 데도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듯, 동기도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함께 걸어가야 만들어지는 것 같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가 결국 관련된 노래와 숫자로까지 관심을 넓히는 과정처럼, 수학이라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하여 수학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점이 사고력 전반으로 퍼져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승부와 실패 이야기에서는 학생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시험을 한 번 망친 아이가 다음 시험을 앞두고 느끼는 부담감은, 포커에서 이긴 다음 판에 대한 부담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 부담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것뿐이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매번 같은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가르쳐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하나의 정답 풀이법만 반복해서 주입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이 대목은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로도 이어졌다. 창업이라는 시작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도 결국 장점은 작아 보이고 단점은 커 보이는 착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10년 넘게 시타 요가를 수련하며 여전히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오래 곱씹게 된다. 나 자신을 변화시킨 만큼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은, 교사라는 직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학생을 가르치기 전에 나부터 계속 배우고 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특정 요인 하나로 콕 집어 증명할 수 없다는 것. 교육의 효과도 이와 비슷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표 한 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받아들이게 된다.


투자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여러차례 투자로 인해 실폐의 경험만 있는사람, 투자는 하고 있지만 자신이 없어 큰 기회가 생겨도 움직이지 못했던 사람 등 이 책은 모두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서평 서두에도 이야기 했듯 다음에 다시 읽을 책 목록에 올려둘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진정한 투자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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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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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뉴스에서 누군가의 부고를 접해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식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넘겨왔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다만 그 '언젠가'가 너무 멀게 느껴져 마치 영원할 것처럼 살아왔을 뿐이다. 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은 그런 나에게 죽음을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세운다. 죽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우리가 무엇을 겪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짚어주는 이 책은 그래서 낯설고도 신선했다.


책의 파트1 임종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흔히 듣게 되는 위로의 말들을 다룬다. 우리는 흔히 좋은 뜻으로 말을 건네지만, 그 말이 정작 당사자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 다루듯 심판하는 기분이 든다고 고백합니다."는 표현을 읽으며, 잠시 내가 죽음을 앞둔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모습 뒤에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의문이 남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찬혁의 '파노라마'와 '장례희망'이 떠올랐는데, 실제로 함께 들으니 문장 하나하나에 감정이 훨씬 깊게 스며들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에게도 이 노래들을 함께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책에서 소개된 곰페르츠-메컴 사망률 법칙은 죽음을 숫자로 바라보게 해준 부분이라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서른 살 이후 8년마다 사망 확률이 두 배로 치솟고, 일흔을 넘기면 통계적으로 충분히 오래 산 것이라서 억울해할 필요 없다는 설명을 읽으며, 문득 주변의 건강해 보이는 어른들이 생각났다. 늘 정정하시던 그분들이 사실은 죽음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앞선 이들이 나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듯 나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조용히 물러설 시간이라고 스스로 다독입니다"는 대목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삶의 길을 만들어주고 언젠가 그 자리를 넘겨주는 과정이 떠올랐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리를 받고 또 언젠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하나의 흐름 속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 장은 담담히 알려주었다. 동시에 장례를 지나치게 세세히 준비하려는 태도에 대한 지적도 인상 깊었다. 장소와 음악까지 미리 정해두는 것은 결국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일 뿐, 장례식은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의식이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죽음에 다다르면 식욕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지 한참 지난 후 일지 모른다. 후각과 미각은 점점 사라지고 아이스크림이나 냉동 과일 조각만이 잠시 마지막 감각을 깨울 뿐이라고는 설명을 읽으며, 문득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즐겨 드시던 음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장에서 가장 깊이 다가온 부분은 죽음을 앞둔 이들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을 단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라 여겨왔는데, 책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 대소변, 옷 입기, 씻기를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데서 오는 수치심, 곧 "죽음 앞에서는 온몸과 영혼이 날것 그대로 벗겨지기 때문입니다"는 표현이었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예전에 노인 복지관에서 목욕 봉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 중 유독 스스로 씻겠다고 고집하시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고집이 세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장을 읽고 나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내 몸을 씻겨준다면 나 역시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존엄성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당사자는 물론, 그 곁을 지키게 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위로의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막막한 사람,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거나 앞으로 하게 될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죽음을 남의 일로만 여겨왔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죽음을 조금 더 겸손하게, 그리고 조금 더 준비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죽음을 마주해야 할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두려움 대신 담담함을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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