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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당신의 마지막에 관하여, 개정판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26년 6월
평점 :
평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뉴스에서 누군가의 부고를 접해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식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넘겨왔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다만 그 '언젠가'가 너무 멀게 느껴져 마치 영원할 것처럼 살아왔을 뿐이다. 롤란트 슐츠의 '죽음의 에티켓'은 그런 나에게 죽음을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세운다. 죽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우리가 무엇을 겪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짚어주는 이 책은 그래서 낯설고도 신선했다.
책의 파트1 임종에서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흔히 듣게 되는 위로의 말들을 다룬다. 우리는 흔히 좋은 뜻으로 말을 건네지만, 그 말이 정작 당사자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 다루듯 심판하는 기분이 든다고 고백합니다."는 표현을 읽으며, 잠시 내가 죽음을 앞둔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모습 뒤에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의문이 남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찬혁의 '파노라마'와 '장례희망'이 떠올랐는데, 실제로 함께 들으니 문장 하나하나에 감정이 훨씬 깊게 스며들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독자들에게도 이 노래들을 함께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책에서 소개된 곰페르츠-메컴 사망률 법칙은 죽음을 숫자로 바라보게 해준 부분이라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서른 살 이후 8년마다 사망 확률이 두 배로 치솟고, 일흔을 넘기면 통계적으로 충분히 오래 산 것이라서 억울해할 필요 없다는 설명을 읽으며, 문득 주변의 건강해 보이는 어른들이 생각났다. 늘 정정하시던 그분들이 사실은 죽음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앞선 이들이 나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듯 나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조용히 물러설 시간이라고 스스로 다독입니다"는 대목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삶의 길을 만들어주고 언젠가 그 자리를 넘겨주는 과정이 떠올랐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리를 받고 또 언젠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하나의 흐름 속에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 장은 담담히 알려주었다. 동시에 장례를 지나치게 세세히 준비하려는 태도에 대한 지적도 인상 깊었다. 장소와 음악까지 미리 정해두는 것은 결국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일 뿐, 장례식은 나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의식이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죽음에 다다르면 식욕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지 한참 지난 후 일지 모른다. 후각과 미각은 점점 사라지고 아이스크림이나 냉동 과일 조각만이 잠시 마지막 감각을 깨울 뿐이라고는 설명을 읽으며, 문득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즐겨 드시던 음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장에서 가장 깊이 다가온 부분은 죽음을 앞둔 이들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을 단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라 여겨왔는데, 책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 대소변, 옷 입기, 씻기를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데서 오는 수치심, 곧 "죽음 앞에서는 온몸과 영혼이 날것 그대로 벗겨지기 때문입니다"는 표현이었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예전에 노인 복지관에서 목욕 봉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 중 유독 스스로 씻겠다고 고집하시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고집이 세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장을 읽고 나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내 몸을 씻겨준다면 나 역시 결코 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의 존엄성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당사자는 물론, 그 곁을 지키게 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위로의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막막한 사람,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거나 앞으로 하게 될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죽음을 남의 일로만 여겨왔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죽음을 조금 더 겸손하게, 그리고 조금 더 준비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죽음을 마주해야 할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두려움 대신 담담함을 건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