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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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름을 유심히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자꾸 옮긴이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정지인. 낯익은 이름이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옮긴 사람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문장이 참 편안했다. 원서를 번역한 티가 나지 않고 그냥 누군가 나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랄까. 어려운 개념도 술술 읽히니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책 한 권을 읽었다기보다 좋은 이야기를 오래 들은 기분이 들었다.


식물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책은 여러 번 뒤통수를 쳤다. 베란다에서 화분 몇 개를 키우면서도 나는 늘 식물을 수동적인 존재로 여겼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고, 햇빛을 못 보면 축 처지는, 전적으로 내 손에 생사가 달린 연약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그 반대에 가까웠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정교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만들어낸 존재였다. 미모사가 손끝이 닿자마자 잎을 접는 걸 보고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전기 신호를 통한 소통이라는 걸 알고 나니 예전에 키우다 시들어버린 미모사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그 식물에게는 계속 반응해야 하는 자극이었고, 그 반응을 계속하다가 지쳐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벌레와 식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자신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무조건 없애는 게 아니라, 나중에 수분을 도와줄 나방이 될 때까지 어느 정도는 견디다가 필요할 때 화학물질을 내뿜어 균형을 맞춘다는 이야기였다. 이걸 읽으면서 내가 주말농장에서 봐왔던 식물들의 싱싱함이라는 게 사실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그 나름의 계산과 인내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도시의 갈라진 보도블록 틈을 뚫고 올라오는 나무를 보면서도 그저 생명력이 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 있는 집요함과 전략을 생각하니 식물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마늘이 싹을 틔우려면 겨울의 추위를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식물에게도 기억이라는 게 있고, 그 기억을 통해 때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효율을 따지며 살아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식물이 조용히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내가 그동안 식물을 얼마나 빨리 자라야 하는 존재로만 봐왔는지 반성하게 됐다. 척박한 환경에 있는 식물일수록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부분에서는, 결국 어려움을 겪은 만큼 유연해진다는 게 사람에게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가장 남는 문장은 식물이 우리에게 생명을 빚지게 하는 존재라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 우리 몸을 이루는 당분 모두 결국 식물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나니, 식물과 나 사이의 관계가 일방적인 돌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식물을 키우는 게 아니라 식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몇 번이나 실패했던 리톱스를 떠올리며, 내가 잘못 키운 게 아니라 그 식물이 살아온 환경과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 안에서 흐르고 있을 신호들, 겨울을 기억하는 방식, 조용히 이어지고 있을 관계들을 상상하게 된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살아있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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