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가 실패로 끝난다면, 여자 화장실을 부수고 그녀의 배를 찢은 그 남자의 기억은
온전하게 남아 있게 될 터였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남자가 그날 밤의 기억을 언제까지 간직하게 될지 그녀는 궁금했다.
그 기억이 어떤 식으로 그 남자의 머릿속에서 변질되고 오염되고 흐르고,
결국 어디서 고정될지 궁금했다.
결국 모든 기억은 변한다고, 똑같은 일을 기억하는 일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느 다르다고,
기억이 흐르는 방식이야말로 한 인간이 존재하는 특정한 방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p193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잊어버리고 그걸 기억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억을
모조리 없앤다 한들, 잘못을 저지른 자신은,
그 시간 속에서 존재했던 자신은 여전히 이 세상에,
이 지구에, 이 우주에 남아 있을 것이다.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p215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이봐요, 이건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게 아니에요.
이건 삶이고, 싸움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요.
우린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p230
책의 배경이 된 신도심과 구도심의 양극화 갈등도 심각하게 보인다.
5등급으로 나뉘어 가장 극빈층을 엑스 구역이라는
위험 지역에 두고서 범죄의 취약성과
그곳에서 발생된 '여자 화장실 파괴 사건'이
주된 이야기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사건의 범인과 경찰의 취조가 이야기의 전반적 흐름이긴 하지만
기술 발전이 주는 양면성이 뚜렷하게 보여
이점과 위험 또한 존재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기술이 장악한 미래 세상에서
인간은 어떠한 입지를 가지고 목소리 낼 수 있을까.
점점 입지가 줄어가고 기술이 앞서 나갈 것을 예상해본다면
발살되어갈 존엄과 윤리,
차별과 박해가 분명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지리라 본다.
결국은 인간 혐오로 이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 전까진 좀 더 상용화 될 기술에 대한
검증과 파장 효과를 더 신중하게 염두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기억을 없애는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당신은 어떤 기억을 없애고 싶나?"
괴로운 기억들을 간편하게 지울 수 있는 편리함도
마음의 가벼움도 있겠지만,
너무 가볍고 쉽게 고통과 진실을 소멸해 간다는 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왜 일까.
인간이라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정과 기억,
서서히 잊혀지는 망각들..
쉽게 은폐해서도 소멸해서도 안될 무수히 많은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