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르스회의 그림은 이러한 휴식의 기능을 잊은 우리에게 잠시 그 순간에 젖어들 기회를 안긴다.
가령 그의 작품 <책상 앞에 있는 여인(이다)>도 보다 보면 마음이 묘하게 차분해진다.
화폭 속 여인은 햇빛이 드는 방에 홀로 서 있다.
그녀 또한 혼돈에서 벗어나 잠시 조용한 평화에 젖은 듯하다.
단조로운 모양의 액자와 책상, 어두운 빛깔의 커튼은 공간 속 은은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p49
작품 속 여인은 홀로 서 있다.
가만히 있는 그 모습이 조용히 스스로 집중하고 있는 평온함마저 보인다.
뭔가 분주히 해야 함을 끊임없이 생각해내는 것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로서 고요한 침묵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안정감을 그림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런점에서 하메르스회는 조용한 화가답게
어두운 색감과 쓸쓸한 감정을 잘 표현하는
몽환적 색채를 구사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이젤이 있는 인테리어> 등
주변의 고요함과 적막함이 숨이 막히는 것이 아닌
감상자로 하여금 쉼을 택하도록 그림이 이끄는 느낌이다.
미술사를 통틀어 위로의 화가로 부상하고 있는 그의 그림은
잔잔함과 적막함 속에서 평화로움을 선물해준다.
나에게도 지금의 조급함과 조바심을 다스릴 여유를
그림에서 찾게 만드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발로통은 이 시기에 그의 생애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를 만들었다.
가령 <그라스의 일몰, 주황색, 보라색 하늘>은 잔잔한 꿈결을 걷는 듯한 몽환적 기분을 안긴다.
가라앉는 해와 이를 끌어안는 바다, 화폭에 살짝 걸친 나무와 들판 등
명확한 윤곽선과 구성은 다른 감정 없이 평화로움에 집중케 한다.
p170-172
남들의 간섭과 참견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발로통은
늦게나마 관계의 조화를 풀어갈 키를 찾아낸다.
엄청난 재력의 처가 집안에 어울리는 고상한 예술가로 살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야했던 발로통.
짓눌린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다루지 못했던 그를 보면서
관계에 있어서 나를 갈아내면서까지
나를 잃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풍경화에 집중하게 되면서 마음의 평안과 쉼을 찾게 된 발로통은
다시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을 알게 된다.
늦게나마 꿈과 가족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게 된 발로통의 안도가
나에게도 더 늦지 않게 나를 발견하고 소중히 여기라는
소중한 메시지를 남기는 듯하다.
온전히 나로서 제대로 서있는 것이 우선이다.
가족들도 그런 나를 보며 함께 기대어 울고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불완전했던 나의 찬란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여전히도 휘청거리는 중년의 여성으로 살아가지만
적어도 다시 의연하게 되돌아갈 수 있는 노련함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대단하진 않지만 이렇게 그림을 보고
작가들의 삶의 태도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발견하면서
인생의 반짝이는 나를 조금씩 다듬어가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런 과정 속에 그림과 더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삶은 여전히 살아갈만하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