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면 죽어야겠군, 아! 여보게, 자네는 결혼하지 말게.
결코 자식을 넣지 말게! 자넨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 애들은 자네에게 죽음을 줄 거야."
"내가 만약 재산을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았을 거야."
p96-97
두 딸을 애지중지 키웠던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안위보다도 딸들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노년까지 이어진 자신의 역할은
딸들에겐 조건없는 희생이었지만,
병들어 자식을 찾을 땐 그의 곁을 지켜준 건 딸들이 아니었다.
이같은 비극이 고리오 영감만의 이야기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도 비슷해보인다.
나의 노후는 뒷전이고 자식 뒷바라지에 열심인 부모들이 많다.
이후에 정작 빈껍데기가 되어 불완전한 존재로 비춰진 내 모습과
갈등의 골이 쌓여간다면 무엇이 우선이고
어떤 것에 충실해야 할지를 분명히 잘 말해주고 있는 책 같다.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서 아직 읽지 못했는데
다시 꺼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삶에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서
부모 자식의 유대감과 정서적 독립,
진정한 부모의 몫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겠다란 점에서 말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p171
<스토너>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허무한 인생인가 싶다가도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살았던 삶을 비판하기 힘들었다.
내 삶을 오롯이 살았나 싶지만
상당 부분 타인의 기준과 시선 안에 맞춰 살았던 나에게도
많은 물음들에 답을 내리기 힘들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가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 본 자신의 삶에 작은 소명 하나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꽤나 괜찮았던 삶이라 생각했던 걸 보면
큰 기대와 행복들이 신기루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지키고 싶어했던 소신을 지켜낸 그 우직함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에게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얼 지켜 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싶다.
고전 문학은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라 생각했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 속에서 나의 세상과 연결된 세계 속의 변화를 모색하고
사고를 확장시키고 성찰할 수 있는 건 고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변화에 휩쓸리기도 쉽고 변수도 많은 인생을 살지만
고전은 언제나 그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고전 읽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내용의 깊이와 난해함에 겁부터 먹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고전문학의 세계와의 조우가 낯설기도 하겠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처럼 설레이기도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고전이라는 거리감과 낯선 두려움에서 시작되어
책으로 꽃 피워지는 개인의 인생사가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할지를 기대해보길 바란다.
손을 뻗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그 무게감을 이겨내고
호기롭게 고전을 과감하게 접할 기회를 더 많이 가져보면서
삶의 풍성한 이해와 성찰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중년의 시간을 넘어 노년까지 쭉 이어질 나의 독서 여행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