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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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거대한 자연 속에 속한 작은 존재가

동경과 사랑을 담은 마음으로

대자연의 경의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초록으로 가득 메워진 숲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어울리는 책으로

로베르트 발저의 시와 산문이 수록된 시집이다.

아름다운 숲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영감을 불러 일으켜 준 것인가를 금새 느낄 수 있다.

숲의 흙은 양탄자처럼 푹신하고,

숲의 공기는 향유처럼 부드럽고,

숲의 목소리는 노래와 같고,

숲의 몸매는 꾸밈없고 늘씬한 나무 같다.

숲의 목소리는 사랑의 속삭임이다.

매일 아침 나는 숲이라는 집의

초록빛 수수께끼에 귀를 대고 엿듣는다.

매일 아침 나의 눈은, 사랑에 빠진 나의 눈은

숲의 말 없는 기적을 보고,

숲의 상처를 본다. 숲은 곧 죽는다.

나무줄기에서 붉은 피가 솟는다.

숲의 상처가 보인다. 숲은 곧 죽는다.

p12

어린나무와 큰 나무 들이 하얀 들판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는 듯헀고,

집들은 하얀 모자를 쓰거나 하얀 두건을 두르거나 하얀 지붕을 얹고 있었다.

그 모습이 숙련된 제빵사가 만든 부드럽고 달콤한 예술 작품처럼

탐스럽고 유쾌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침 햇살도 창문에서 반짝거렸다.

게으른 침대에서 조금만 일찍 일어나 사지를 펴고 집 밖으로 나가면 눈은 질리도록 눈을 보고,

자유를 갈국하는 가슴은 마음껏 숨 쉴 수 있다.

아름다운 입으로 그대에게 살갑게 미소짓는 앙증맞은 설경을 보러 가라.

p66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문장들의 비유가

머릿 속을 가득 메우며 자연과 삶에 펼쳐진 그대로의 풍경을 그려보게 만든다.

세심한 관찰력과 묘사 덕분에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해 보이는 건 왜 일까.

시인의 글이라 더 사색적이고 감상적인 문장들이

책 속에 빼곡하기에 읽고 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책이다.

더욱이 화가인 형 카를 발저의 작품을 이 책 속에서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더 큰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시와 글과 그림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 멋진 작품 같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주변을

고요하게 감싸는 문장의 힘이 이런걸까.

일상의 소소한 물건부터 대잔연의 웅장함을 표현한

삶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포착한 근사한 작품 말이다.

짧은 시구와 길지 않은 글이지만

여운이 깊이 남는 건 작가만의 필력이라 볼 수 있을테지..

숲의 고요와 찬란한 초록의 싱그러움이

눈을 정화시킴은 물론 마음까지도 맑아지는 기분이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쉼을 얻는 피서지에서의 낭만과 힐링을

책 속에서 대체할 수 있는 기분이란게 이런 걸까.

나를 감싸고 있는 사물들의 조용한 위로가

다정하게 느껴져 묘한 기분이 든다.

삶의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풍경을

누군가의 세심한 시선으로 담겨놓은 정갈한 문장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과

조용한 사색을 건네는 이 책의 매력에

그 누구라도 한번쯤 맘껏 빠져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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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방학
연소민 지음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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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처럼 나의 엄마를 소환하는 아련 시간들로 이어진

단단한 고백의 여운 깊은 책을 만났다.

감추고 싶은 게 많았을 십 대의 불안정한 시기에

깨어진 가정 안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행방이 묘연해진 아빠의 부재가 모녀의 삶에 드리워지는 그늘과 희망.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채

엄마와 단 둘의 생활을 그렇게 시작된다.

우울증과 저장강박증을 가지게 된 엄마를 보살피며

엄마의 필요를 채우려 노력했던 솔미.

쉼이 필요했던 솔미의 마음.

지독한 여름을 지나 가을 문턱에서

엄마를 키워냈던 어린 딸의 고단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투병 시간 이후 고향 고흥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둘은

그곳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엄마의 과거가 존재하던 그곳.

엄마이기 전에 온전히 그 이름으로 살아가던 삶을 말이다.

딸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통해

모녀는 아빠의 부재에 익숙해짐은 물론이고

서로를 지지하는 동행자로서의 형태를 갖추어 나간다.



종아리 뒤가 뻐근하게 당길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다가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야 귀가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는 걸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내가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 엄마의 가슴속 같았다.

그 집은 쇠락해 무너져 내린 엄마 그 자체였다.

집은 사는 사람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므로.

나는 그 집 벽에 묻은 수많은 거무튀튀한 얼룩 중 하나였다.

그 얼룩은 아무리 걸레로 닦아도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면적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집과 하나가 되었다.

나는 오직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집에 함꼐 갇힌 것이다.

엄마가 나를 당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묶듯 모녀 사이를 단단하게 묶어버린 것 같았다.

시골의 밤은 정말 어두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이 이곳에 있고, 빛은 전부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p62-63

엄마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에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 엄마를 가여워하며 쓰레기 집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엄마와 나를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었고 엄마와 나를 거의 동일 인물 수준으로 느끼게 되었다.

p121

나의 나이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녀들은 서로의 삶을 겹쳐왔다.

엄마만의 친구가 있고 엄만의 갈등이 있고 엄마만의 삶이 있었다.

자신이 그러하듯 타인의 삶도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왜 우리는 사람을 매 순간 평면적으로 대화하고 말까.

그런 오만과 오해는 어디서 오는 걸까.

p268

느닷없이 엄마의 가출 혹은 잠적이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지나고보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알게되어 더 특별했다.

솔미 모녀의 관계를 보면서 서로의 독립을 응원해 주는 삶이

더 성숙하고 멋진 삶이라 생각된다.

각자의 삶을 응원하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는

서로의 모습이 부러웠다.

모녀의 독립을 누구보다 응원하면서도

여전히 품 속에 끼고 사는 연약한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번뜩 정신을 차려본다.

지독한 여름을 지나 가을 문턱에서

엄마를 키워냈던 어린 딸의 고단함.

그럼에도 상처의 회복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의 존재와 의미가

스스로를 무겁게 짓눌리고 있지만은 않아 다행이었다.

가을 방학이라는 재충전과 자유를 느끼고 싶었을

그 시간이 딸의 인생에서 사계절 방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가둔 범주를 넘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던 삶을 지향하고 응원하며

솔미는 온전히 솔미의 삶으로

엄마는 온전히 엄마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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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서점 2 - 긴 밤이 될 겁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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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표지와

동양적 미학이 풍겨오는 K- 판타지 소설을 만나보았다.

1편에서는 영원한 삶을 살고 기억 또한 영원한 서주와

현생을 살아가는 연서의 슬픈 인연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라면

2편에서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한국 설화에 등장하는 요괴가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지만

<도깨비> 드라마를 열광하면서 보던 기억을 소환해보면

제법 익숙하기도 한 정서와 연대감을 느낀다고 해야할까.

이승도 저승에도 속하지 못한 남자의 기다긴 기다림 속에

매번 죽어 환생하는 여인이 공존한다는 것이 가슴 시리게 아프고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통스럽기도 하며 아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기다긴 시간 서점을 지켜오고 있던 남자와 여자가 잇닿은 서점.

책 무덤 속에 깃들어 사는 도깨비.

서점의 진짜 주인이자 서점의 존재와 연결된 분신의 등장으로

위험에 처한 서점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책도깨비 역시 끔찍한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인간 세상에 회의와 신뢰를 잃은 기억으로

친구인 서주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묘한 배신감 마저 느낀다.

연주를 향한 질투심인지 악마의 속삭임인지

자신이 겪은 과거의 아픔을 그대로 투영해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서주의 과거를 마주하게 된 연서.

갈등하는 마음의 고민이 사랑이라는 큰 마음으로

성숙하고 순수함을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책도깨비의 오래된 인연을 보게 되면서

깊은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어 기뻤다.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 역병의 신, 각시 손님의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아팠고,

도깨비의 가족과 우정은 훈훈함과 큰 매력을 느끼게 만들었다.

서주와 연서, 신과 인간의 인연이 이토록 애달프까도 싶지만

애틋해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산자와 죽은 자, 기억과 미래,

잠든 환상과 실재가 공존하는 공간인 기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서점.

길 잃은 자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떠도는 영혼이 머물자리이자 땅에 묻히지 못한 이야기가 될 안식처.

이 곳에서 모두의 이야기가 어우러짐과 함께

상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를 알만 하다.

전작에 이어 더 애틋한 감정이 깊어진 두번째 이야기.

더운 여름의 긴 밤을 잠 못 이루며 금새 읽어낸 킬링 타임용 책이지만

오래 기억될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이 하나의 여정이라면, 내용을 파악하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해석을 이어 붙여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두죠."

"그들이 누군가요?"

"이를테면 서점주인이죠. 제 서점에 제가 파악하지 못한 책은 없습니다.

미지의 도깨비굴이라고 한들."

p180

"나는 수명이 짧은 인간이라 운명이나 순리,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내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그런걸로 내 하루를 채울래요."

p225-226

장담할 수 없지만,

이어질 인연이라면 또 만나게 될 것이기에..

'영원'은 끝을 알 수 없어 더 찬란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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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영의 평생 레시피 - 죽을 때까지 나를 먹여 살릴 ‘어남선생’의 쉽고 맛있는 집밥
류수영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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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나를 먹여 살릴

'어남선생'의 쉽고 맛있는 집밥



애정하며 시청하던 방소인 <편스토랑>에서

가장 원픽으로 꼽고 있었던 '어남선생'의 요리가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었다니 예상은 했지만

만나보게 되서 더 설렌다.

우리집 주방을 든든히 지켜줄

가족들의 끼니를 해결해 줄

그만의 맛있는 레시피가 무려 79가지나 소개된다니 설렐수 밖에.

특식, 밥, 면, 국/탕/찌개, 간식으로

잘 분류되어진 다양한 요리들이 책 속에 가득 실려 있다.




맛도 맛이지만 요리를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효율을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는 훌륭한 레시피북을

선물받은 기분이라서 너무 행복해진다.

목차에 빼곡하게 실린 음식들을 보면서

오늘은 무얼 요리하면 좋을지

요리하는 어마인 내가 덩달아 들뜨는 기분이다.

무더위에 지친 가족들에게

입맛을 더해줄 특식부터 요리해보고 싶었는데

가장 맛내기 힘든 '찜닭'이 눈에 띄었다.

만만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맛의 깊이가 항상 아쉬웠던 요리라

류수영의 만 원 찜닭 레시피를 보고서

그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그만의 요리 킥이 신의 한 수이다!

여기선 짜장가루가 맛의 비결이 된다고 한다.

좀만 일찍 알았더라면

더 맛있는 요리로 밥도둑이라는 맛의 평가를 더할 수 있었을텐데

늘 먹던 레시피를 사용하다보니 아쉬울 수 밖에.

요리책을 받고서 가장 먼저 만든 요리이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큰 호응은 얻게 되서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된 걸 행운이라 생각한다.

하나씩 도장 꺠기 하듯

책의 레시피 전체를 요리해보고 싶다.

맛 보장은 물론이고

어렵지 않게 요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미지 컷과 함께 설명이 간결하고 간단하면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난이도가 어려운 요리가 없어서

요리하는 주부들에게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어남선생'으로 우리집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

류수영의 집밥 레시피는

평생 잘 해먹을 수 있는 실속있고 가장 알찬 요리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신혼 이후로 요리책을 찾아 뒤적거리며 요리하지 않는

주부 9단이라고 하지만,

늘 식상하고 뻔한 맛과 다양한 가짓수의 요리를

해먹지 못하기도 했고, 귀찮아서 배달이나 반찬가게를 이용하기 바빴는데

사먹는 것보다 열 배 이상으로 더 맛있는 집밥 요리를

이렇게 쉽고 맛있게 뚝딱할 수 있으니 더없이 강추할 수밖에.

얼큰한 고추장찌개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이 책의 레시피대로 따라 요리했는데

이전에 만들어 먹던 요리에선 매번 뭔가 밍밍하고 싱거운 맛있었는데

육수없이도 이렇게 깊은 맛이 나는 고추장찌개는 신세계를 만난듯 했다.

마트에서 사서 남은 삼겹살이 있어서

한번 만들어 볼까 하다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조리해서

푹 끓인 이 찌개가 남편의 최애가 될 줄 몰랐다.

내 인생 최고의 요리 선생이자 요리 멘토가 되어줄

'어남선생'의 집밥 레시피로

든든한 끼니를 풍성하게 만들어 맛있는 요리로

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사랑받고 싶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이 제법 신나는

요리 비법을 한 수 배워보며

가족의 건강을 책임질 집밥으로 건강밥상을 책임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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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 - 오래된 문장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신은하 지음 / 더케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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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된 문장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여러 갈래로 책을 다양하게 읽으려 많은 시도를 한다.

생각보다 쉽게 고전 읽기가 잘 되지 않는 건

쏟아져 나오는 신박한 책들 속에 마음과 눈을 빼앗겨

신간 코너에 기웃거리고 이슈가 되는 책들을 찾아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고전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은 가이드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그치고

정말 끌리는 책은 몇 권 추가해서 읽는 정도로 그쳤다.

고전이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던 내가

마흔이 넘어서 삶의 우여곡절을 다양하게 겪게 되면서

깊은 침묵 속에서 다시 꺼내든 책이 오래된 고전이었다.

이전에 젊은 시절에 읽던

고전의 맛과는 전혀 다른 묘한 감정 연결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고서는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좋은 고전 문학을 친절히 소개하는 가이드북이자

앞으로의 고전읽기의 흥미와 유익함을 제대로 이끌어주는 책이었다.




"자식들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면 죽어야겠군, 아! 여보게, 자네는 결혼하지 말게.

결코 자식을 넣지 말게! 자넨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 애들은 자네에게 죽음을 줄 거야."

"내가 만약 재산을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았을 거야."

p96-97

두 딸을 애지중지 키웠던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안위보다도 딸들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노년까지 이어진 자신의 역할은

딸들에겐 조건없는 희생이었지만,

병들어 자식을 찾을 땐 그의 곁을 지켜준 건 딸들이 아니었다.

이같은 비극이 고리오 영감만의 이야기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도 비슷해보인다.

나의 노후는 뒷전이고 자식 뒷바라지에 열심인 부모들이 많다.

이후에 정작 빈껍데기가 되어 불완전한 존재로 비춰진 내 모습과

갈등의 골이 쌓여간다면 무엇이 우선이고

어떤 것에 충실해야 할지를 분명히 잘 말해주고 있는 책 같다.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서 아직 읽지 못했는데

다시 꺼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삶에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서

부모 자식의 유대감과 정서적 독립,

진정한 부모의 몫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겠다란 점에서 말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p171

<스토너>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허무한 인생인가 싶다가도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살았던 삶을 비판하기 힘들었다.

내 삶을 오롯이 살았나 싶지만

상당 부분 타인의 기준과 시선 안에 맞춰 살았던 나에게도

많은 물음들에 답을 내리기 힘들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가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 본 자신의 삶에 작은 소명 하나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꽤나 괜찮았던 삶이라 생각했던 걸 보면

큰 기대와 행복들이 신기루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지키고 싶어했던 소신을 지켜낸 그 우직함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에게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얼 지켜 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가 싶다.

고전 문학은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라 생각했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 속에서 나의 세상과 연결된 세계 속의 변화를 모색하고

사고를 확장시키고 성찰할 수 있는 건 고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변화에 휩쓸리기도 쉽고 변수도 많은 인생을 살지만

고전은 언제나 그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고전 읽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내용의 깊이와 난해함에 겁부터 먹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고전문학의 세계와의 조우가 낯설기도 하겠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처럼 설레이기도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고전이라는 거리감과 낯선 두려움에서 시작되어

책으로 꽃 피워지는 개인의 인생사가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할지를 기대해보길 바란다.

손을 뻗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그 무게감을 이겨내고

호기롭게 고전을 과감하게 접할 기회를 더 많이 가져보면서

삶의 풍성한 이해와 성찰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중년의 시간을 넘어 노년까지 쭉 이어질 나의 독서 여행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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