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방학
연소민 지음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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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처럼 나의 엄마를 소환하는 아련 시간들로 이어진

단단한 고백의 여운 깊은 책을 만났다.

감추고 싶은 게 많았을 십 대의 불안정한 시기에

깨어진 가정 안에서 서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행방이 묘연해진 아빠의 부재가 모녀의 삶에 드리워지는 그늘과 희망.

화목한 가정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채

엄마와 단 둘의 생활을 그렇게 시작된다.

우울증과 저장강박증을 가지게 된 엄마를 보살피며

엄마의 필요를 채우려 노력했던 솔미.

쉼이 필요했던 솔미의 마음.

지독한 여름을 지나 가을 문턱에서

엄마를 키워냈던 어린 딸의 고단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투병 시간 이후 고향 고흥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둘은

그곳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엄마의 과거가 존재하던 그곳.

엄마이기 전에 온전히 그 이름으로 살아가던 삶을 말이다.

딸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통해

모녀는 아빠의 부재에 익숙해짐은 물론이고

서로를 지지하는 동행자로서의 형태를 갖추어 나간다.



종아리 뒤가 뻐근하게 당길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다가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야 귀가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는 걸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내가 사는 곳은 집이 아니라 엄마의 가슴속 같았다.

그 집은 쇠락해 무너져 내린 엄마 그 자체였다.

집은 사는 사람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므로.

나는 그 집 벽에 묻은 수많은 거무튀튀한 얼룩 중 하나였다.

그 얼룩은 아무리 걸레로 닦아도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면적을 키워나가다가 결국 집과 하나가 되었다.

나는 오직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집에 함꼐 갇힌 것이다.

엄마가 나를 당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묶듯 모녀 사이를 단단하게 묶어버린 것 같았다.

시골의 밤은 정말 어두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이 이곳에 있고, 빛은 전부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은 것 같았다.

p62-63

엄마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엄마에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 엄마를 가여워하며 쓰레기 집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엄마와 나를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었고 엄마와 나를 거의 동일 인물 수준으로 느끼게 되었다.

p121

나의 나이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녀들은 서로의 삶을 겹쳐왔다.

엄마만의 친구가 있고 엄만의 갈등이 있고 엄마만의 삶이 있었다.

자신이 그러하듯 타인의 삶도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왜 우리는 사람을 매 순간 평면적으로 대화하고 말까.

그런 오만과 오해는 어디서 오는 걸까.

p268

느닷없이 엄마의 가출 혹은 잠적이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지나고보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알게되어 더 특별했다.

솔미 모녀의 관계를 보면서 서로의 독립을 응원해 주는 삶이

더 성숙하고 멋진 삶이라 생각된다.

각자의 삶을 응원하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는

서로의 모습이 부러웠다.

모녀의 독립을 누구보다 응원하면서도

여전히 품 속에 끼고 사는 연약한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번뜩 정신을 차려본다.

지독한 여름을 지나 가을 문턱에서

엄마를 키워냈던 어린 딸의 고단함.

그럼에도 상처의 회복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의 존재와 의미가

스스로를 무겁게 짓눌리고 있지만은 않아 다행이었다.

가을 방학이라는 재충전과 자유를 느끼고 싶었을

그 시간이 딸의 인생에서 사계절 방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가둔 범주를 넘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던 삶을 지향하고 응원하며

솔미는 온전히 솔미의 삶으로

엄마는 온전히 엄마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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