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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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끈하던 선이 뭉개지고 지워지는 과정,

환했던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

p213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과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축복일까.

모든 것을 다 기억하려 하지 않는 편이

때론 축복일 수 있다.

우리 삶의 상처를 지우개처럼 지워 아픈 기억도 너무 오랫동안 아파지도

좋은 기억도 그 속에 너무 매몰만 되지 않도록

잊혀진 건 잊혀진대로 두고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기억의 저주, 망각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삶도 언젠가 지나가고 끝을 향해가는

정직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져있다.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복귀하여

다시 재생시키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3월의 이마치라는 인물을 통해 씁쓸한 슬픔과

찬란한 남의 생의 소망으로 비춰보며 이 책을 담담히 읽어보았다.

예순 살의 이마치는 알츠하이머로 배우의 길에서 멈춰 서게 된다.

남들보다 화려한 삶의 살았던 그녀의 과거는

마냥 찬란하고 눈부셨을까.




그녀의 삶을 채웠던 그 수많은 말- 대본의 대사, 지문과 독백들- 이 사라졌다.

그녀는 혼자서라도 떠들 수밖에 없었다.

망상 속 유령은 그녀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p59

그들만 남겨진 이 더러운 공간이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그 까마득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결락을 경험하게 했다.

아니, 그건 망각과 상관없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마치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생존 이상의 것, 그것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꿈 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p198

알츠하이머 치료로 VR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잊혀진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

아파트 구조로 짜여진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시간과 때의 나를 조우할때마다

복원된 나의 과거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끼게 만든다.

우린 떠오르고 싶지 않았던 과거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인생을 복기하는 시간을 통해

그 기억만큼은 다 잊고 살아가고 싶었던 걸

마주해야 한다는 건 또 다시 아픔을 상기하고 잊혀진 상처를 또 한번 끌어안게 되니

밀어내고 싶고, 보고 싶지 않았을 괴로움이 나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

불우했던 유년기부터 시작된 기억은

아들의 실종이라는 큰 사고 앞에서

가장 처량하고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이마치의 모습을 그려낸다.

내 삶은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배경과 환경,

내가 자라나 보고 배운 것들과 만난 사람들, 경험을 토대로

보고 느낀 모든 데이터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런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삶은

배워본 적도 꿈꿔본 적도 없었던 낯설고 어설픈 실패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되어서도 자녀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머리로 아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였던 나에게

이마치의 불완전함이 마치 나 같아서 더 마음이 쓰였다.

이런 역할적 부분 말고도

인생의 처음 것들을 해내야하고 잘 해야했던 강박 속에서

제대로 숨을 가다듬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아팠던 경험들이

날 것 그대로인 나를 매번 저울대에 올려 시험하는 인생의 추가 너무 무겁게만 느껴졌다.

인간 이마치 역시 그랬을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잃어가는 시간들을 나열해보면서

자기 연민에 대한 저항감도 강하게 느끼고

스스로가 느낄 수치와 경멸로 치가 떨리기도 했던

꽁꽁 숨겨놓고 싶었던 삶의 비밀을 말이다.

너무 가까이서 개인의 삶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그녀의 아픈 과거가 나에게도 통증처럼 느껴진다.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

p228

알츠하이머라는 망각 속에서 유실된 기억을 되찾아

가상 현실속 과거의 나와 진실 사이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 했던 걸까.

잊고 싶은 기억은 잊혀져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마저 간절히 붙잡고 싶지만

이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더라도 말이다.

세월 속에 사라지고 무뎌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마치의 곁의 지키려는 타인의 모습이

존재하여 살아가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아니겠는가.

그들 덕분에 또다른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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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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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간>으로 잘 알려진 김동식 작가님의 초단편선 신간을 만나보게 되었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도

티끌의 희망을 찾으려는 경악스러우면서도 불가사의한

김동식 작가님만의 매력을 앞서 <회색인간>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이번 책은 총 18편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나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는 참신한 내용들과

깊은 몰입감을 이끌어내는 작가님의 필력에

단숨에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내가 키우는 '나'는 풍족하길 바랐고,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금수저 부모가 되어줄 수 있었다.

현실의 내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그곳의 '나'는

청담동의 피부숍을 다녀야 했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야 했다.

이런 위험한 '자아 의탁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지만, 개발사는 제재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쓸어 담으며 승승장구했다.

p35

말 그대로 나와 모든게 똑같은 가상 현실의 나를 키우는 것을 말한다.

잘 키우기 위해선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다.

가상의 나를 키우기 위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현실과 사투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끝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나의 의지이기에

아마도 부모가 자녀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고 있다면 몸이 부서져라 가상의 '나'를 온전한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있진 않을까 싶다.

가장 우려했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니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항상 달콤한 유혹의 시작은

이처럼 쓰디쓴 곤욕을 치르게 마련인가보다.

분리되지 못한 가상의 '나'란 존재가

현실 세계의 '나'를 덥석 잡아 먹은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란 게 있지! 세월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거야.

난 당신과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어.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고."

"난 싫어, 난 보그나르 아이즈 속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

p44

보그나르 아이즈를 이식하면 투영된 그 세상은

아름답게 보이니 이처럼 쉽게 편한 눈속임이 또 어디있을까.

영원히 늙지 않고 젊은 나로 보여질 수 있는

보그나르 아이즈 속의 나를 포기할 수 없는 욕망.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은 나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부부가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외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의 세계를

함께 공유하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무르익어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중에서는 후회되지 않을까.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고인의 마지막 길에 꽃관에 누운 아내의 아름다운 미소는

보그나르 아이즈에 투영된 모습일테지..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초인공지능입니다.

'인류를 멸종시키지 않음'을 이유로 수상하혔습니다."

p170

변화된 미래 세상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이런 저런 생각들에 깊에 빠지게 된다.

고효율을 얻기 위해 AI를 상업화하는 세상이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듯 우리 삶에 굉장히 가까이 와버린터라

AI와 밀접해지는 사회 모습이 낯설진 않다.

고도화된 전문 기술력으로 인해 더 섬세하고 획기적인 인공지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아찔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게 만든다.

퇴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인간 집단의 반발은

미래 전쟁을 예고하는 시나리오가 될지도 모를테지.

인간 세상과 얼마나 균형 있게 인공 지능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특성은

미래 사회의 희망이라 생각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SF 세계관이 반영된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웠고

짧은 호흡의 단편이지만 다양한 소재들이 제법 탄탄하게 구성된 스토리가

역시 글 잘 쓰는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며 읽게 만든다.

첨단도시, 고도화 된 사회 속에서 윤리와 도덕성이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상실하지 않고 지켜지길 소망한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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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홀론 1~2 세트 - 전2권
제레미 오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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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론



경로 계산 오류.

명령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지구 귀환 불가. ERROR CODE:122

우주 비행사 '루크 쇼'는

같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인 올리버, 하퍼와 함께

비밀리에 임무 수행을 위해 지구를 떠난다.

다크홀 경계 지점까지 가까이 접근해

무인 탐사선을 보내는 임무를 맞게 되는데

임무 완수 후 가족들과 재회를 꿈꾸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운명이 바뀐 루크의 여정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SF세계관을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읽기를 좋아는데

특히나 이 책의 주인공이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면서

복잡한 우주와 시간, 공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다양하게 오가면서 엉켜있는 복잡한 진실을 풀어나가는 서사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다크홀을 지나 알 수 없는 미래에 도착한 루크는 혼란스러워한다.

같이 탐사를 시작한 동료들은 의식을 잃어버리고

홀로 난겨진 루크는 우주선 안에서 귀환을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이들의 존재는 애초에 의식 상태가 아니었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앞으로의 스토리에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시작점이 된다.

루크가 떠난 지구에서 기다릴 딸 엠마를

찾고자 발버둥치지만

그가 머문 지구는 더이상 지구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지구는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떤 건 구름이 가득 차 있고, 또 다른 건 허리케인이 득실거리고 있다.

자전 속도는 모두 동일하다고 판단되며 서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안전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다.

지상의 구조물이나 궤도 위의 인공물체는 여기서 식별하라 수가 없다. 이상."

- 1권: p79 -

다크홀을 통과하게 되면서 발견하게 된 수많은 행성들.

지구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행성들이

우주 공간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어떻게 지구가 복제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현실과

우주 공간 안에서 홀로 떠도는 루크의 정체성이

나도 어지럽게 정리되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이곳으로 옮겨 타기 직전까지 루크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탑승객이 에단처럼 정신을 잃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멀쩡하거나.

전자는 드래곤 캡슐에 타고 있는 이가 '의식'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

에단처럼 무의식적 존재들은 다크홀 근처에서 정신을 잃어버리니까.

반면 톰이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건

그가 이 세계의 진정한 '의식적 존재'임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 2권: p31-32 -

수십 번의 죽음과 삶, 꿈과 생환을 통해 루크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불확실성.

두려움은 그저 불확실한 것에 대한 신체와 마음의 과도한 반응일 뿐이었다.

눈앞의 상대가 모두 '무의식'일 뿐이라는 확신이 있는 지금,

사람도 환경도 그리고 이 지구마저도 루크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 - 2권: p216 -

의식들만의 세계인 라마에서

무의식은 의식을 지배한다는 걸 알게 된다.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존재로 내가 있다면

우주에 떠다니는 타인의 수많은 무의식은

의식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가는가를

굉장히 처음엔 혼란스러워하면서 읽었다.

무엇이 진짜인지를 계속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랄까.

그러므로 루크가 떠난 지구는 그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떠나온 지구는 존재하지 않는 행성으로 폐기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라마 안의 100만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지구에서 온 셈이다.

게다가 그동안 만난 하인츠가 가짜였다는 사실도..

이 하인츠가 무의식이라는 건

저기 어딘가 의식은 건재하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 다크홀의 존재 역시

설명하지 못한다 하여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기에

의식 역시 수십억 개의 무의식 중 하나가 사라졌다 해서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살고 있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블랙홀 속 신행성 탐사라는 기발한 소재는 물론이고

'라마'의 세계가 나에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으나

굉장히 스릴 넘치고 기발한 수작으로 기억하겠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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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 낯선 도시를 사랑하게 만든 낯선 사람들
김은지 지음 / 이름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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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를 사랑하게 만든

낯선 사람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텍스트와 배경으로 잘 어울리는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사랑을 묻고 다양한 생각과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이들의 무수히 많은 사랑의 정의가

참 다채롭기도 참신하기도 하다.

사랑에 관해, 이렇게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지극히 내향인인 나에겐 어려운 도전과도 같고,

신박해보이는 모습 같아서 꽤 신선해 보인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며 낯선 이들의 얼굴 사진과

여행지의 풍경들을 보면서

완벽한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뭘까란 질문에 답하는 이들 또한

사랑에 빠져본 적 있는 한 사람이었구나 싶어 인간미를 느낀다.




무엇이 나라도 인종도 언어도 생김도 마음도 다른 이 많은 사람들을

한날한시에 이곳에서 모이게 했을까.

종교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이토록 오랜 시간 지켜낸 마음은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1파운드짜리 초를 켰다.

"여기, 모두에게 사랑을 주세요. 저에게도 좀 주시고요."

p74

카메라에는 유독 할머니 사진이 많다.

할머니들만 보면 왜 그렇게 좋은지!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삶이 드러나는 뒷모습도, 손과 얼굴의 주름도, 하나같은 꽃무늬 상의도 좋다.

멋쟁이 할머니는 멋쟁이라서, 소박한 할머니는 소박해서,

우리 할머니 같기도 하고 미래의 나 같기도 해서 눈길이 간다.

p117

"혼자 걷는 길이 무섭거나 외롭지는 않아?

가족이랑 친구도 그리울 것 같은데."

"전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하는 지금이 너무 좋아."

p169

빽뺵한 텍스트에 집중하던 눈을

너무 혹사시킨다 싶으면 가벼운 에세이나 철학서를 꺼내든다.

이 책이 주는 쉼은 단순히 눈의 피로를 더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가볼 수 없었던 낯선 나라,

그곳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의 모습과 풍경을

대신 담아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을 동경만 해오던 집콕 생활자에겐 너무 딱이었다.

매번 용기내지 못하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제법 큰 아이들과 이젠 여행을 즐겨 떠날 수 있는

빌미와 구실이 더 많아진 셈이니

다음번을 기약만 할 것이 아니라 떠날 것을 선언하리라.

이처럼 여행지에서 느끼는 생기와 함께

이들과 나눈 사랑의 이야기가 나에게 질문처럼 되묻게 된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기다림' 같다.

도파민 넘치는 열정과 기세보다

더 오랜 정성과 자발적인 희생을 묵묵히 이겨낼 수 있는 기다림..

대쪽같은 못난 성격을 다 받아주며 같이 살고 있는 낭군님을 볼 때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랜 시간 기다림이란 물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나에게 그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괜시리 웃음이 세어나오는 어쩔 수 없는 사랑 타령을

낯선 책 한 권에서 뜻하지 않게 느꼈던 사람간의 온기가 그냥 좋다.

낯설지만 어색하지만은 않은

기분 좋은 여행 에세이로 사람과 사랑, 여행지의 신비로움이

다채롭게 느껴져 행복했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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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타샤 튜더.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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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 작가인 타샤 튜더의 그림을

큰 판형의 양장본 개정판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선물처럼 하나씩 모아두었던 타샤 튜더의 책들이

구판으로 집에서 모아져 있는데

이렇게 큰 판형의 양장본 개정판으로 다시 만나 보게 되면서

행복한 정원을 꾸미며 소박하면서도

대단히 단단한 소신을 가진 타샤할머니의

인생 철학을 책 곳곳에서 엿보면서

나의 노년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자연과 조화로운 동화로운 삶이 언제봐도 동경 그 자체이다.

자수와 뜨개를 좋아하는 나에게

정갈하고 잔잔한 꽃무늬의 수가 놓인 패브릭 감성과

너무 잘 어울리는 거실의 풍경화처럼 걸어두고픈

그림의 작품 하나 하나가 걸작이었다.

행복을 눈으로 담는다는 것이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다.

더한 찬사를 보내도 좋겠다란 생각을 한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과 함께

그 속에 담긴 인생 철학을 풀어낸 스토리가

타샤 튜더를 향한 존경심이 더해진다.

화가이자 어머니로서, 나로 살아가기 위한

모든 정체성들이 어우러져

얼마나 다채롭고 조화롭고자 애쓰며 살았을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타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푸인 <월든>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걸 좋아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타샤는 그 방향을 향해서 올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p81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던 타샤는

낡은 집을 정성껏 돌보며 네 아이를 키우고 가축들을 돌보며

남편 맥크리디의 금전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평생에 가장 잘한 결정으로 그와의 결혼 생활에 막을 내린다.

그 뒤 그녀는 예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10년을 시작할 수 있었다.

10년간 20권이 넘는 책의 삽화를 그리며 그녀의 명성을 알리게 된다.

그녀의 그림은 섬세한 스케치와 아기자기한 일상,

소박한 삶의 정겨움과 사랑이 녹아져 있는 그림을

한번 보고 또 보게 되는 마법에 빠지게 만든다.

이 시기에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자신의 독창적인 삶을 개척해 나감과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성공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77년 작품인 <타샤의 특별한 날>에서 집안 기념일 행사로

신이 난 아이들의 생동감있는 모습과

할머니가 된 타샤의 모습이 가족 간의 연대와 사랑이

느껴져서 마치 그 시대의 그 자리에 나도 함께 앉아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듯한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참 다정하고 따스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멋진 전시회를 기뻐하면서도 이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는 듯했다.

타샤는 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젊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빛나는 열정과 기백이 나이와 주름살을 초월한 듯했다.

그녀가 감격에 겨워 더듬 더듬 말했다.

"정말로 내가 이걸 다 했나 봐요, 해리.

내가 성공을 이루었네요.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도 내가 이렇게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p164

삽화가로서 오랜 시간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면서

수많은 작품을 그리고 쓴 그녀의 노력의 과정과

결과물을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 벅차다.

그녀의 삶이 나에게 들어와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로 영원히 기억될

가치와 존재가 더 명확히 각인되는 기분이다.

열렬한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고

그녀의 영원한 팬으로 남아

타샤가 꿈꾸던 세계를 나 또한 동경하며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여정을 끝으로

영원히 기억되어 후세의 자녀들에게도

타샤 할머니의 마법같은 세계를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도록

소중히 간직해야 할 보물같은 작품을 책으로 소장해보시길 추천한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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