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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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끈하던 선이 뭉개지고 지워지는 과정,

환했던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

p213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과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축복일까.

모든 것을 다 기억하려 하지 않는 편이

때론 축복일 수 있다.

우리 삶의 상처를 지우개처럼 지워 아픈 기억도 너무 오랫동안 아파지도

좋은 기억도 그 속에 너무 매몰만 되지 않도록

잊혀진 건 잊혀진대로 두고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기억의 저주, 망각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삶도 언젠가 지나가고 끝을 향해가는

정직한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져있다.

세월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복귀하여

다시 재생시키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3월의 이마치라는 인물을 통해 씁쓸한 슬픔과

찬란한 남의 생의 소망으로 비춰보며 이 책을 담담히 읽어보았다.

예순 살의 이마치는 알츠하이머로 배우의 길에서 멈춰 서게 된다.

남들보다 화려한 삶의 살았던 그녀의 과거는

마냥 찬란하고 눈부셨을까.




그녀의 삶을 채웠던 그 수많은 말- 대본의 대사, 지문과 독백들- 이 사라졌다.

그녀는 혼자서라도 떠들 수밖에 없었다.

망상 속 유령은 그녀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p59

그들만 남겨진 이 더러운 공간이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그 까마득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결락을 경험하게 했다.

아니, 그건 망각과 상관없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마치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

생존 이상의 것, 그것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꿈 꿀 수는 없는 법이었다.

p198

알츠하이머 치료로 VR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잊혀진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

아파트 구조로 짜여진 각 층마다

각기 다른 시간과 때의 나를 조우할때마다

복원된 나의 과거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끼게 만든다.

우린 떠오르고 싶지 않았던 과거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인생을 복기하는 시간을 통해

그 기억만큼은 다 잊고 살아가고 싶었던 걸

마주해야 한다는 건 또 다시 아픔을 상기하고 잊혀진 상처를 또 한번 끌어안게 되니

밀어내고 싶고, 보고 싶지 않았을 괴로움이 나에게도 그대로 투영된다.

불우했던 유년기부터 시작된 기억은

아들의 실종이라는 큰 사고 앞에서

가장 처량하고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이마치의 모습을 그려낸다.

내 삶은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배경과 환경,

내가 자라나 보고 배운 것들과 만난 사람들, 경험을 토대로

보고 느낀 모든 데이터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런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삶은

배워본 적도 꿈꿔본 적도 없었던 낯설고 어설픈 실패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되어서도 자녀를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머리로 아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였던 나에게

이마치의 불완전함이 마치 나 같아서 더 마음이 쓰였다.

이런 역할적 부분 말고도

인생의 처음 것들을 해내야하고 잘 해야했던 강박 속에서

제대로 숨을 가다듬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아팠던 경험들이

날 것 그대로인 나를 매번 저울대에 올려 시험하는 인생의 추가 너무 무겁게만 느껴졌다.

인간 이마치 역시 그랬을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잃어가는 시간들을 나열해보면서

자기 연민에 대한 저항감도 강하게 느끼고

스스로가 느낄 수치와 경멸로 치가 떨리기도 했던

꽁꽁 숨겨놓고 싶었던 삶의 비밀을 말이다.

너무 가까이서 개인의 삶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그녀의 아픈 과거가 나에게도 통증처럼 느껴진다.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

p228

알츠하이머라는 망각 속에서 유실된 기억을 되찾아

가상 현실속 과거의 나와 진실 사이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 했던 걸까.

잊고 싶은 기억은 잊혀져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마저 간절히 붙잡고 싶지만

이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더라도 말이다.

세월 속에 사라지고 무뎌지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마치의 곁의 지키려는 타인의 모습이

존재하여 살아가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아니겠는가.

그들 덕분에 또다른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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