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라도 인종도 언어도 생김도 마음도 다른 이 많은 사람들을
한날한시에 이곳에서 모이게 했을까.
종교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이토록 오랜 시간 지켜낸 마음은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1파운드짜리 초를 켰다.
"여기, 모두에게 사랑을 주세요. 저에게도 좀 주시고요."
p74
카메라에는 유독 할머니 사진이 많다.
할머니들만 보면 왜 그렇게 좋은지!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삶이 드러나는 뒷모습도, 손과 얼굴의 주름도, 하나같은 꽃무늬 상의도 좋다.
멋쟁이 할머니는 멋쟁이라서, 소박한 할머니는 소박해서,
우리 할머니 같기도 하고 미래의 나 같기도 해서 눈길이 간다.
p117
"혼자 걷는 길이 무섭거나 외롭지는 않아?
가족이랑 친구도 그리울 것 같은데."
"전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하는 지금이 너무 좋아."
p169
빽뺵한 텍스트에 집중하던 눈을
너무 혹사시킨다 싶으면 가벼운 에세이나 철학서를 꺼내든다.
이 책이 주는 쉼은 단순히 눈의 피로를 더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가볼 수 없었던 낯선 나라,
그곳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의 모습과 풍경을
대신 담아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을 동경만 해오던 집콕 생활자에겐 너무 딱이었다.
매번 용기내지 못하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제법 큰 아이들과 이젠 여행을 즐겨 떠날 수 있는
빌미와 구실이 더 많아진 셈이니
다음번을 기약만 할 것이 아니라 떠날 것을 선언하리라.
이처럼 여행지에서 느끼는 생기와 함께
이들과 나눈 사랑의 이야기가 나에게 질문처럼 되묻게 된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기다림' 같다.
도파민 넘치는 열정과 기세보다
더 오랜 정성과 자발적인 희생을 묵묵히 이겨낼 수 있는 기다림..
대쪽같은 못난 성격을 다 받아주며 같이 살고 있는 낭군님을 볼 때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오랜 시간 기다림이란 물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나에게 그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괜시리 웃음이 세어나오는 어쩔 수 없는 사랑 타령을
낯선 책 한 권에서 뜻하지 않게 느꼈던 사람간의 온기가 그냥 좋다.
낯설지만 어색하지만은 않은
기분 좋은 여행 에세이로 사람과 사랑, 여행지의 신비로움이
다채롭게 느껴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