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스 페이지터너스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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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인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진 못하지만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가진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냉전으로 얼어붙은 아이티를 배경으로 한 희비극을 만나보게 되었다.

독재자의 나라에서 인권이 말살되는

처참한 상황 속에 놓인 군중들은 반군을 일으키는데

이 곳은 더더욱 관광객의 발길을 떠나가게 되고 이주를 계획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이곳에 머물러 살고 있는 이국인들의 이야기를

이 책 속에서 살펴보면서 묘하게 동요되어

웃고 떠드는 모습들에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닥치는 상황에 맞추어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요.”

“당신이 인생에서 바라는 건 뭡니까, 브라운? 당신 어머니가 했을 법한 답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뭐죠?”

“그 분은 답을 모르는 나를 비웃으셨을 겁니다. 그 답은 바로 재미랍니다.

하지만 그분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재미’있었죠. 심지어 죽음까지.”

p340

아이티로 향하는 메데이아호 화물선에서

브라운, 존스, 스미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티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브라운은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막막한 현실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인생을

그저 웃고 지켜보려니 안타깝기만 했다.

기회주의자 존스의 이기적인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결국 비극을 맞게 되는 것이 마냥 통쾌하진 않았고,

스미스 부부의 이분법적인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애잔한 감정이 들었다.

비극의 상황을 현실로 떠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난 마냥 이 분위기를 웃음으로 무마하며 전혀 즐기질 못하고 있었다.

아이티가 처한 정치적 상황이나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뒤엉켜 사는 이국인들의 삶이 얼마나 답답할지 가늠하지만

작품 속에서 던지는 위트도 마냥 폭소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건 이 나라의 아픈 정치사를 들여다보게 되니

군주의 독재 속에서 엄청난 탄압과 쿠데타를 겪으며

국민들 모두가 많은 상실감과 무기력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아이티라는 나라를 설정으로

이같은 블랙 코미디물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해학과 웃음의 조화롭지 못한 어색한 상황들이

어둡게 깔린 분위기 속에서 완전히 희극적인 요소를

맘껏 즐기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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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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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유품정리





실제로 시부모님께서 물건들을 정리해 나가는 걸

집에 방문할 때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구체적으로 여쭤본 적은 없지만

어떤 마음에서 당신들의 주변을 스스로 정리해 나가는지를

조금은 가늠하고 있긴 하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늘 말씀하시고,

삶의 태도나 생활 살림이 군더더기 하나 없으신 분들이시기에

요즘 더 휑 할 정도로 집이 텅 비어져있는 걸 보면 더 마음이 쓰라린다.

간소하게 사셔도 좋다고 몸이 불편해서

짐이 많은게 오히려 더 짐스럽고 힘들다고 얘기하시면서

세간살이를 더 줄여 최소한의 삶을 살고 계시는 두 분을 보고 돌아오는 마음이

요즘은 왜 이렇게 아련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와는 정 반대로 넘치다 못해 더 많이 소유하지 못해 안달난

정리되지 못하는 내 짐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숨이 나온다.

삶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정말 필요한 게 더는 없어서일지

남겨진 자식들에게 짐까지 남겨두고 버리는 수고를 덜고 싶은건지

침착만 할 뿐이지만 이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뿐이다.

제목부터도 마음을 울리는터라

고민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어머니, 집에 가족이 열 명은 되나 봐요.

이렇게 비꼬고 싶어졌다.

농담이 아니고 손님 열 명이 와도 곤란하지 않을 양의 그릇이 있다.

그 위에 유아용 그릇과 아이용 젓가락까지 있는데 낯이 익다.

아들인 마사히로가 아기였을 무렵, 놀러오는 손자를 위해 시어머니가 산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p42-43

주인공 모토코는 시어머니의 유품 정리를 하게 된다.

꽤 작은 집에 제법 많은 물건들이 심심치 않게 나와

정리에 정리를 거듭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원망 아닌 원망이 솟아나는데..

누군가 내 물건을 정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보니

나또한 아차 싶었다.

이 엄청난 짐들을 내 자식들이 거둬서 정리할 걸 생각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함께

짐스럽게 느껴질 이면의 다른 감정들로 마음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흘러갈까 싶어 두렵다.

모로코의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와 달리

간소한 물건으로 삶을 살고 계시고

이후에 남겨질 물건들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한다.

살면서 내 욕심 가득한 마음을

물건들로 채우려 했던 사리사욕을

내 자식들에게 들키게 된다는 것도 참 당혹스러울테지만

죽어서도 짐스럽게 느껴질 불편한 감정이 솟아오르면

깨끗하게 정리하고 이 생을 살다간 것인지 다시 되묻게 된다.

구질구질한 내 욕심들을 다 내려놓지 못하고 가는 것처럼

산재한 물건더미 속에 남은 가족들이 둘러 앉아 있는 모습이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다.

어떤 마음으로 물건을 정리하시는지

조금은 이해를 하면서도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었던 마음이

지금은 좀 다르게 바뀌어 있다.

난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의 흔적을 덜 남기고 살 수 있을지를

고심하며 사는 그런 가벼운 삶을

난 살아낼 수 없는 걸까란 걸.

그러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고 깔끔한 마무리 같아서

아직 살아가고 있고 생의 마지막을 생각지 못하며 살아가지만

지금 둘러싼 수많은 물건들을

이젠 좀 비우면서 살아가도 좋을 영감을 얻게 된 책이었다.

살아서도 정리되어진 간결하고 간소한 삶을

나도 지향하며 흐트러짐없이 살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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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주
조양희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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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와 열정, 꿈과 희망, 좌절과 아픔 속에서 얽혀 있는

국경을 초월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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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주
조양희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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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주




이 작품은 10여 년 전 '분홍 구두'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따가 다시 독자들에게 얼굴을 내민 작품이다.

단아해보이는 한 여성의 곧은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인 강렬한 붉은 색 표지의 책을 받아들고서

이 여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담담히 책장을 펼쳤다.

꽤 두꺼운 장편소설이었지만 몰입하기 좋았던 가독성과

흡입력있는 스토리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준주는 유학 생활이 버겁고 혹시 불쾌한 일이 닥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려운 일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는 것은 곧 이곳 문화를 알아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단계를 통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리라 느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면 강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거듭 타일렀다.

p90

"저것 좀 봐, 조센진...... 자신이 예쁘다고 착각하고 뽐내는 꼴이란.....

못 보겠네. 사생활이 고와야지 화장품 모델을 하지.

조선 여자도 일본 화장품 모델을 하냐고 투고했어야지.

백화점에선 모르겠지. 항의서를 투고해야겠네."

"감히 저런 주제에 어딜 넘보고 있어? 어디 왕가를 넘보나!"

p185

"서로를 바라보는 소중한 시간을 열어 둡시다.

당신은 많은 조선 반도 아기들과 산모들을 구할 훌륭한 의사잖아요.

준주 씨 의지와 실력을 잘 알아요.

의학부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해코지들도 다 이겨 낸 강한 여성이잖소."

"이제 우리 시대에 전쟁은 그만이길. 제발 멈췄으면 좋겠어요."

p320

주인공 <준주>는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 유학을 준비한다.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라는 점에서

조선인이 당하게 되는 멸시와 압박,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어려움이 산재해 있는데..

사촌 오빠인 진석과

연인인 도오루.

젊은 청춘들의 숭고하고 얼룩진 삶을

너무나 잘 묘사한 소설이라

읽는 내내 영화화 될 이 책의 미래를 잠시 떠올려보기도 했다.

평범하게 안주할 수 있었던 삶이었으나

이상을 품고 조국을 떠나 유학길에 오르려는

당찬 준주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기도 하면서

현실의 제약에 한없이 밀려나야 했던 모습을 보면서

뼈아픈 실상에 가슴이 타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칠 수 없었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확신한다.

언제까지나 뭉개진 현실의 벽을 박차고 일어날

이 젊음의 패기로 일어서고 바로 잡아가야 할 마음의 빛을

무겁고 아픈 시간 속에서 참고 기다려야했을

이들의 청춘의 희망을 난 함께 끝까지 응원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절절한 희망과 구원이란 단어를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건 아픈 우리 역사를 대신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청년들의

패기와 열정, 꿈과 희망, 좌절과 아픔 속에서 얽혀 있는

국경을 초월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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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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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이 책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했던 마약의 종류를 설명하고 있으면서

전쟁사에 얽혀 있는 민낯을 노르만 올러가 설명해주고 있다.

전쟁의 참사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한 고통이었다.

그렇다보니 우울과 낙감에 빠진 이들이

마약에 손을 덴 것을 보면

독일이 마약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을 침착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신생 공화국 독일이 환각에 빠뜨리는

헤로인과 코카인을 퍼뜨리는 글로벌 딜러로 부상하게 되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욱이 1928년 한 해에만 베를린 약국에서

합법적으로 모르핀과 헤로인을 처방받은 양만 해도 73킬로였다고 한다.

마약 퇴치 정책은 소수 집단에 대한 배제와

말살 수단으로까지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페르비틴>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의사, 노동자, 가수, 시험 응시생, 주부들에게

일상에 상당히 가까이 침투해 있었다.

<항상 기쁨을 선사하는 힐데브란트 프랄린!>이란

스윗한 과자가 흥분, 강한 자극과 에너지 증가 등으로

한층 향상된 노동에 대한 시너지를 체감하니 상당히 인기를 끌만 했다.

페르비틴은 독일 민족을 거대한 집단적 도취와 <자기치유>의 선전에 쉽게 빠지게 할 길을 열어 주었다.

이 강력한 물질은 의료 부문에만 국한되기를 원치 않았던 제조업체의 기대처럼

어느 순간 식품으로 둔갑했다.

<독일이여, 깨어나라!> 나치의 이 요구에 부응하여 이제 메스암페타민은

화학적으로 나라를 깨웠다.

사람들은 선전과 약리 물질로 이루어진 이 재앙의 도취 칵테일에 갈수록 의존하게 되었다.

p67

<혹시 히틀러는 우리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까?

전쟁 판세를 뒤집을만한 기적의 무기를 등 뒤에 숨기고 있을까?>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히틀러에게 그렇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자신을 세계 지배자로 느끼게 하고,

흔들림 없는 낙관적 전망에 빠지게 한 것은 주사약으로 인한 고조된 감정이었다.

p212

마약의 의존도가 더 깊어질 수록 주변 사람들도 히틀러와의 만남이 상당히 버거웠다고 한다.

끊임없이 약에 취해 있으며, 독재자와의 대화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일이였겠는가.

건강한 조금이라도 문제가 보이는 인사는 단번에 제거되기에

주변인들은 심적 불안을 없애고,

긴장된 상황을 견디기 위해 페르비틴을 더 의존했다고 한다.

나치 국가에서 이같은 마약 남용이 얼마나

광범위하고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점차 늘어나는 투여 횟수와 양, 강도.

자신의 체제를 부수고 균열을 파장을 열게 된

폭발물과도 같은 마약의 중독은

온전한 자신을 찾지 못하게 하는 파괴능력을 가진 괴물과도 같았다.

마약의 나라, 현실 도피와 세계의 고통의 나라였던 독일.

희대의 슈퍼 마약 중독자가 있었고,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가장 강력했던 고통을 안겨주었고

환락에 취해했던 어두운 단면을 살펴보았던 시간 또한 나에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시간과 그 세계를 힘있는 목소리로 서술해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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