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가장한 요구, 연약하다고 짐작되는 자를 함부로 대하는 어리석고 한심한 인간들의 수치심 없는 행동. 담요와 시트 속, 캄캄한 어둠속에서 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생체실험에 앞서 인격이 박탈당한 채 수술대 위에 올려진 싸늘한 실험체를 내려다보듯 찬찬히 로를 관찰하면서 비웃는다. 꼬마야, 어른도 없이 너 혼자 이런 데 오면 안 되는 거야. 누군가의 말에 나머지는 배를 움켜잡고 킬킬 웃어댄다. 여자들은 어린아이에게 겁을 주듯 두 손을 얼굴 앞에서 흔들며 유령 흉내를 내기도 한다.
공용화장실. 이 도시에서 그의 신변을 보호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 언제나처럼.
자신의 만족을 위해 경계 밖에 서 있는 타인을 함부로 대한 것, 존엄하게 대하지 않은 것, 그 사람이 아프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것, 나는 그런 것 때문에 화가 나 있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슬펐던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안도할 수는 있었지만 안도 이후엔 또다시 쓸쓸해졌다. 목소리, 감각, 감정, 가족, 관계가 사라진 그곳이 현실과 단절된 곳이 아니라 언젠가 내가 되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시 가야 하는 곳은 이렇듯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곳에서 나 자신의 슬픈 마음조차 의심해야 하는 폐쇄된 공간이란 걸 알기 때문이라고.
‘굿 슬립’에서 나온 로가 우산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걸어간 곳은 생 미셸 대성당이다
은은한 선율은 로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의 지나간 시간들을 어루만지며 맥박과 숨소리에 섞여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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