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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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나자 몸이 나른해졌다. 굉장히 몽환적이고, 따뜻하며, 평온한 느낌이다. 시즈쿠이시처럼 자연에, 산에 기대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온화한 기운이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탓이다.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나 장면들이 종종 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깨끗한 느낌이다. 아직 한 발자국도 찍혀 있지 않은 설원을 뒹구는 느낌 말이다.

 시즈쿠이시와 할머니는 산에 살면서 약초차를 만들어 파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낫게 도와주는 힘이 있다. 시즈쿠이시는 할머니를 돕고, 또 배우며 오손도손 살고 있었지만, 산기슭에서부터 공사가 시작되며 생태계가 일그러지자 결국 산을 떠나기로 한다. 게다가 할머니는 따로 살자고 말한다. 메일을 주고 받던 남자와 함께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똑 부러지게 보이던 할머니의 내면이 의심스러웠으나, 조금이나마 상대방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설정을 통해 무마해 버린다. 이메일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기운을 느끼면 상대방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 속에는 점쟁이가 등장하는 등 기이한 현상을 종종 연출한다. 더군다나 시즈쿠이시 또한 미약하나마 자연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니, 딱히 어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산에서 나와 도시에 살게 된 시즈쿠이시는 할머니가 그리울 뿐더러 산과 떨어져 생활한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버린다. 허나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특히 가에데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면서 온화했던 삶을 되찾는다. 마치 할머니를 도왔던 것처럼 가에데를 도우며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가 도시에서 적응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결국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숨통을 튼다.

 바나나는 시즈쿠이시가 그토록 사랑하는 할머니처럼, 자연뿐 아니라 사람들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을 때에 진정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희생을 강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시즈쿠이시는 스스로가 이미 '동화보다 유치하고, 우화라 하기에는 교훈이 없(14쪽)'는 이야기이며, '어리석은 인간의 삶과 약간 묘한 각도에서 바라본 이 세계(14쪽)'에 대한 사소한 추억이라고 단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허나 내일은 아침 햇살 속에서 따뜻한 새 하루가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잠드는 시즈쿠이시의 모습을 보는 독자는 그렇게 생각치 않을 것이다. 오롯이 혼자서 살 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힘든 일도 많지만, 그만큼 또 행복한 일도 많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은 게 아닐까.
 


덧)  책은 안드로메다 하이츠(Andromeda Heights)라는 곡의 가사를 빌어 시작하는데, 패디 매캘룬(Paddy Mcaloon)은 7-80년대의 영국 팝밴드 프리팹 스프라우트(Prefab Sprout)의 멤버이다. 패디 매캘룬으로 검색해서는 결코 프리팹의 노래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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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버트런드 러셀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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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 비판 서문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석수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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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임마누엘 칸트 지음, 이원봉 옮김 / 책세상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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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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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던 사상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건 그저 원시인으로 생활하며 자연에 기대라는 의미라기 보다, 태초의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원시 상태의 인간은 선악의 구분조차 없었다고 주장하며,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면 괴로움도 슬픔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회에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그가 주장하는 낙관론적 인간상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허나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이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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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미국의 역사
아루카 나츠키.유이 다이자부로 지음, 양영철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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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나라 안팍으로 떠들썩한 요즘,  말로만 영원한 우방국인 미국에 대해 알지 못해서야 그들의 행동에 대해 가타부타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어느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은 '외국인을 위한 미국사 교과서'처럼 여겨지도록 개괄식 논조를 흩트리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데, 이 점은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다. 일단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과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잘 아우르고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허나 일본인의 입장에서 쓰인 글이 논지를 흐트릴 때가 있다는 점, 단순한 설명에 그친다는 점, 독자층을 애매하게 설정하였다는 점은 아쉽다. 또한 내가 보기에는 동조할 수 없는 논리를 들어 설명할 때가 있어 종종 답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독자층은 과연 누구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에는 보조적인 설명을 담은 박스가 간간히 등장했지만, 그 외에도 일반인이 쉽게 접하지 않는 용어들이 종종 나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각주 없이 진행된다. 줄 긋고 돼지 꼬리 땡땡 달아가며 설명을 덧붙이고, 가끔은 별표도 쳐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저자가 서문에도 적어 놓았듯이 1년 내지 반 년 동안 진행해야 할 수업 분량을 적어 놓았다고 하니, 쉽게 받아 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거나, 그래프나 숫자만 보면 울렁증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을 듯 싶다.

 허나 이 책은 마치 소백과사전과 같은 장점이 있다. 종종 궁금해지는 부분을 찾아 읽을 수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인덱스가 있어 활용하기도 쉽다. 다만 목차가 좀 더 세부적이지 않은 것은 아쉽다. 어쨌든 한 번쯤 쉬엄쉬엄 일독한 후에 다시 발췌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내용이 조목조목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나왔던 상식 시리즈의 강점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 한 권만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지만, 그 초석을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요즘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관련서 중에서 기본서로는 적당한 책이 아닐까 싶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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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그릇 1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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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가 쓴 소설이라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허나 의외로 좋은 필력에 감탄하며 빠져 들고 보니, 단숨에 독파하느라 밤을 꼴딱 새었다. 결국 내 예상과는 달리, 도예가가 쓴 소설이기에 더욱 가치있는 책이 되어 버린 셈이다. 어찌 이리도 절실할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바로 여기에 있을 터다. 

 이삼평, 존해, 종전, 백파선 등 주인공 신석을 제외한 인물들은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이들이다. 대개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끌려 간 이들이었지만, 도자기를 빚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높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그릇쟁이라 불리우며 천시받았던 이들이 일본에서는 예술가로 칭송 받았던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선을 그리워 한다.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조선땅에서 나온 흙으로 도자기를 빚으며 살아가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수십 년이 지나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도 이미 터를 잡고 살던 그들은 결국 일본에 남는 쪽을 택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조선이라지만,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곳 또한 조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조선에서 살 수 있는 대책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던 조선 백성들도 안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이 더욱 가여웠던 까닭은 바로 그 사실에 있었다. 더군다나 우여곡절 끝에 조선에 돌아 온 신석이 그릇쟁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천민인 주제에 절하지 않는다며 화내던 관리 또한 조선인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석은 성공이 보장된 일본에서의 생활을 버린다. 지금처럼 시끄러운 정국 속에서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예술을 절실히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타국을 침략한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채우려는 노력 또한 있었다. 물론 임진왜란은 일본 국내의 분란을 잠식시키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는 술책이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허나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이 종식되고서도 국방을 강화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침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그것을 고칠 수도 없다. 타산지석이라지 않던가.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일본은 이도 다완이 조선의 것이기는 하나, 이것은 조선인들의 밥공기로서 막 만들고 막 쓰던 막사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일본에 건너 오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이도 다완은 일본의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허나 이도 다완이라 일컫는 그릇은 바로 황도이며, 이 황도의 용도는 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제기는 그 용도가 다하면 깨버린다.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을 위한 제기를 일본인은 차 마시는 데에 사용했던 것이다. 허나 일본인들은 여전히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이 정설인 양 받아 들여지고 있다. 신한균이 가장 안타깝고 분했던 사실은 바로 이것일 게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니, 얼마나 씁쓸한 우리네 현주소인가.

 신한균은 그러한 역사의식과 도자기에 대한 애정을 통해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이나 이 일에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알 수 있기를, 나 또한 그렇게 소망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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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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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영은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은 교황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하여 얻어간 기술"이라는 앨 고어의 발언을 통해 이 소설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품이 아닌 조선에서 배운 것이라는 전 미국 부통령의 말이 확증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면?'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역사를 파헤쳐 보지만 역시나 알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역사적 미싱링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다. 오세영은 그 고리를 조선 주자소의 야장, 석주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재생한다.

 소설은 줄곧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탄탄한 줄거리와 사건의 연속,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정신차릴 틈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든다. 대개의 사건 또한 필연적인 구조를 갖고 진행되지만, 아쉽게도 그 사건의 실마리는 너무나 우연적이었다. 사건을 해결할 주요한 열쇠가 뻔하고 우연적으로 보인다면, 플롯 자체가 기우뚱하게 된다. 이는 복선이 부재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로 보인다. 어쩌면 이야기의 속도가 빨라, 전개 도중에 홀연히 나타난 열쇠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나타나는 탓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는 이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잡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전작에서 보였던 부족점도 눈에 띈다. 정이 가지 않는 인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오세영은 그가 창조한 대개의 인물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처 풀어 놓지 못한 이야기 보따리를 황급히 헤치느라 그럴 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 속의 석주원은 심성이 너그러워 모든 인물들에게 호의를 갖고 대하지만, 작가인 오세영은 그럴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손끝에서 묻어 나는 석주원의 배려심은 오히려 성급해 보일 지경이다. 도대체 그가 왜 그런 끝도 없는 선심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오세영은 그에 대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석주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 그의 이야기는 풍덩 빠질 수 밖에 없는 재미가 있다. 너울쳐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쉼없이 주워 담느라 정신없이 헤엄치려면 풍덩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르네상스를 이끈 금속활자가 조선의 아들 석주원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가. 더불어 잃어버린 우리의 자존심, 금속활자를 되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또 얼마나 가상한가. 이러한 이야기를 창조한 오세영의 상상력과 역사의식에 갈채를 보내야 한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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