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교양으로 들었던 문화인류학 강의는, 독특하고 다양한 사례 면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바로 다양함의 총체성이었는데,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어떤 문화를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으로 그 문화 전체를 일반화하여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가장 주도적인 특성에 의해 무언가를 특징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하지만 이처럼 지극히 일부적인 특성을 차근차근 모아서 보면, 즉 그 문화적 지도에 지명을 하나씩 채울수록, 하나의 문화적 드라이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문화의 패턴>에서는 극단적인 세 부족의 사례를 통해, 그들 문화의 저변을 보여주려고 한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그들 문화를 이해하게 되거나, 그러한 시각에 동조하게 된다면, 루스 베네딕트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주니족, 도부족, 콰키우틀족을 나누는 큰 틀은 먼저 이성과 광기다. 즉 아폴론적 인간과 디오니소스적 인간으로 나뉘는 것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으로서 이성, 절제, 질서 등의 이미지로,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으로서 광기, 충동, 환상 등의 이미지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이미지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나왔는데, 그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갈등과 결합에 의해 문화가 탄생하며, 이것의 가장 조화로운 결합이 그리스의 비극이라고 하였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두 이미지를 빌려와서 세 부족을 가늠하며, 문화를 분석하는 잣대로서 활용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두 극단적인 양상 중에 어느 것이 자신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든간에, 그것을 특정 개인이나 사회의 선과 악, 혹은 옳고 그름의 잣대까지 같이 이용해 판별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부족이 어떤 문화를 갖고 있든, 그것은 각 환경에서 주어지는 여러 갈래 중에 일정한 것을 택하여 발전시켜나간 것일 뿐이다. 그들의 선택은 수많은 행동 양상 중에 그들이 적절하다고 느낀 것이며, 이것이 최선인지 최악인지를 판결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 탓이다. 사람들이 가능한 행동 중에 선택된 것이 비록 전체 세계에서 가장 전형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이 상이한 문화적 목적과 동기를 갖고 있는 한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가장 전형적이라는 문화조차 인간이 추측하거나 판별할 수 없는 수많은 패턴 중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므로, 어떤 문화를 인공적인 방법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기대는 금물이다. 베네딕트에 따르면, 그들의 문화적 양상은 어떤 불가해한 요인으로 인해 상이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들의 사회적 가치나 어떤 행위의 진정한 목적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더불어 또 하나의 주장은 사회와 개인의 상호의존성이다. 어떤 개인도 그들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에서 떨어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비록 문화적 패턴이 어떤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거나, 그들에게 위해를 가한다 할지라도 문화는 존재해야 한다. 문화가 빈약하면 개인은 고통을 겪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인과 문화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킬 때에 우리는 문화의 통합을 달성하고, 그 총체성 가운데 모든 개인이 행복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사회적 약자나 부적응자 또한 그들 유형의 가치를 인정하고 훌륭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껏 이러한 상대주의를 통해, 우리는 관용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 베네딕트가 극단적인 세 부족의 사례를 인용하고, 그들 문명을 임상적으로 묘사하며, 그 사회를 인정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그들 문화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인정되는 모든 행위를 정상적으로 보기 어려울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살인이나 간통, 전쟁과 같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립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별개로 놓고 생각해 보더라도 그들 문화 유형은 대부분은 인정되어야 하며, 지켜져야 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문화적 혹은 사회적 상대성과 같은 유연함은 필수적인 요소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비정상적으로 일부 국가의 힘이 강대하고, 그들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유연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베네딕트가 <문화의 패턴>에서 걱정했던 것과 같은 서구 문명의 강대한 힘, 혹은 문명 및 문화의 진화설, 전파설과 같은 이론들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근본적인 믿음이 될 것이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철학자 50
夢 프로젝트 지음, 박시진 옮김, 배일영 감수 / 삼양미디어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상식시리즈는 언제나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해낸다. 바꿔 말하면, 상식인의 입문서로서는 좋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좁게 보면 각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해 놓은 것들, 넓게 보면 지금 이 세상이 존재하기까지 거쳐 온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철학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것을 전부 담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짧게 축약하다보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철학자 50>은 중고등학교 철학 혹은 윤리 교과서 수준을 면치 못한다. 서술형이면서도 개괄식 정리 노트에 그치는 탓이다. 다만 아름다운 그림, 교과서보다는 덜 딱딱한 표현을 사용하려 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깊이 없는 내용들로 북적대는 이 책에 흠뻑 빠지기는 실상 어렵다. 허나 한정된 시간 속에서, 철학자들의 모든 저서를 읽고 또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철학자를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

 결국은 가만가만 이 책을 읽다가,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사상이 보이면 그들의 저서를 찾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저 이 책만으로는 읽은 것이나 읽지 않은 것이나 그다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불멸을 논증하는 데 몰두했다는 내용과 지에 대한 사랑을 행하기 위해 사형 선고를 받아 들였다는 문장이 이 책 속에 있다. 그런데 이 문장만 가지고서는 그가 어떻게 영혼의 불멸을 논증했는지, 그 근거를 어디서 찾았는지, 그러한 믿음만으로 어떻게 사형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불멸을 어떤 방식으로 타당하게 증명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그의 사형 선택에 동조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파이돈>이나, 그와 관련된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지면상이 문제로 생략된 내용들을 인지한다면, 분명 이 책은 재미있는 출발이 될 것이다. 즉 철학자들의 많은 저서와 사상, 그에 대한 개념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략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꿈프로젝트'라는 일본 집필단의 시각에 치우쳐 보지만 않는다면, 더욱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중력 증후군>은 상당히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책 속에 담겨 있는 말들은 죄다 비유적이지만, 그 말들이 뜻하는 바는 이리저리 어렵게 되돌아 가는 법이 없다. 오히려 직선적으로 현대인의 일상을 내보이고, 그들이 내뱉고 싶어하는 말들을 우박처럼 쏟아 붓는다. 그 우박은 너무나 따끔해서 피하고 싶지만, 가만히 느끼면 피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권정생은 읽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이, 바로 좋은 책이라 했다. <무중력 증후군>이 좋은 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공상같은 배경이 사실인 양, 푹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도 있었기에, 애매모호한 느낌이 가득하다.

 

 책은 달이 하나 둘 씩 증식하면서 점점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양상과 그 혼란에서 빠져 나오는 모습을 말끔하게 그려내고 있다. 혼란에 빠지는 속도도 빨랐지만, 헤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 빨랐다. 얼마 전 폐막한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후끈 달아 올랐다가, 어느새 그 이야기들이 쏙 들어가 버린 것처럼 쉽게 식는다. 하지만 가슴 속에 무언가 하나쯤은 남기 마련이다. 무중력 증후군의 실험자였던 노시보의 엑스레이 가슴 사진에 동그랗게 남은 흰 달처럼 말이다.

 

 <무중력 증후군> 또한 나에게 작은 상흔을 남겨 주었다. 인터넷 뉴스로 하루를 시작하는 노시보, 가슴 뜨겁게 열망했던 달이 사라져도 여전히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노시보의 어머니, 그런 아내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어깨를 움츠리는 노시보의 아버지, 평생 자신의 꿈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노시보의 형, 소설 소재를 다른 신인 작가가 한 발 앞서 발표한 것을 알게 된 구보. 그들이 일상에서 늘 느끼는 소외와 절망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것은 너무나 재빠르고 경쾌해서,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사건들과 대담한 전개, 시답잖아 보이는 언어 유희들이 그 상처를 쉽게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수많은 달이 생기고, 또 몰락하는 과정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 또 어떤 무중력을 느끼게 될지라도, 지구의 연약권을 향해 다이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볍고 또 무거운,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그런 심장을 가지고 달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역사소설의 묘미는 단순히 옛 기록을 풀어 쓰는 것에 있지 않다. 기록되어 있지 않은 부분을 상상으로 재구성해, 있음직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 그래서 대개 기록이라는 뼈대를 두고, 기록과 기록 사이의 비어 있는 부분들에 살을 붙이는 게 정석이라 할 법하다. 허나 <혜초>는 조금 다르다.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된 그의 노정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묘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꿈이라 할 만한 이야기들로 종종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인물들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과 행적은 궁금증을 더한다. 특히 인물들의 개성이 참으로 선명하고, 또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그 분명하던 선을 깨트리는 것도  순식간이라 놀랍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그들을 지켜 본다는 것 또한 흥미를 더한다.

 다만 1권의 후반까지는 차츰 전개되는 이야기를 위한 바탕을 깔기 위해서 준비된, 조각난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자꾸만 길을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풍광을 감상하며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자근자근 길을 밟아 나가는 것은 여행에 있어 필요한 덕목이지만, 자칫 지루함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김탁환은 그리 친절한 안내인이 아니다. 그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듯, 혹은 그저 자신의 일기를 적어 나가는 듯 이야기를 읊는다. 좌우를 잘라 내고, 앞뒤만 엮어 나가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구성과 서술 양식은 꽤나 매력적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허나 이번에는 심심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1권 후반부터는 점점 박진감을 더해 가고, 앞에서 찬찬히 늘어놓은 조각들을 하나의 천으로 꿰는 것 마냥 오밀조밀하게 진행된다. 덕분에 앞서 진행되던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다고 해서 후다닥 넘기며 읽었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맞춰야 할 조각들을 흘리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터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접했던 김탁환은 잊고 책장을 펼치는 것이 좋다. 그는 예전보다 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더 깊게 들이 마시며, 더 멀리 내다본다. 가쁘게 달리고, 느긋하게 쉰다. 그가 연주하는 박자에 몸을 맡길 수만 있다면, 분명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 당신은 이 작품을 픽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에 논픽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8쪽)

 픽션이란 허구다. 즉 상상하여 창조한 것이다. 논픽션이라는 것은 허구가 아닌 것이다. 즉 상상해서 창조한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큐멘터리를 들 수 있겠다. 허나 이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진실로, 온전히, 픽션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실화라 하면 그것이 정말 진실이라고 믿지만, 그 실화란 것은 기억에서 나온다. 인간의 기억이란 온전치 못할 수밖에 없다. 사실에는 주관이 개입할 수 없다. 허나 기억이라는 것은, 그리고 기록이라는 것은 주관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의 한계에 대해 고찰해 보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기억과 기록은 매우 주관적이다. 사람들이 객관적이라고 믿는 것 또한 모두 개인의 주관들이 겹치는 부분들 중 통상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단지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을 통칭하는 게 그 단어일 뿐이듯 논픽션으로 보이는 것을 통칭하는 게 그 단어일 뿐이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개념이란 것은 결국 실재하는 것의 한계를 넘는 것까지 지칭하게 된다. 이것은 언어의 한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 아무리 현재형으로 쓰거나 말하거나 해도 결국 그 말을 뱉는 순간 현재형은 거짓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후루카와 히데오는 이런 철학적 물음을 건네면서 <벨카, 짖지 않는가>를 시작한다. 동시에 매우 객관적인 척, 마치 역사를 기록하듯 서술한다. 사람들이 흔히 문학에서 기대하는 수사적인 문구, 미학적인 묘사들을 절제한다. 그저 단순히 기록하는, 그러니까 사관인 체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말기인 태평양전쟁에서, 21세기의 체첸 항쟁까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개를 통해, 개의 눈을 빌려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개인 척 하는 것일 뿐, 개가 직접 말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신적인 입장에서 개를 통해 본다, 말한다, 기록한다, 그것이 전부다. 급변하는 상황을 간결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표현한다.

 책 표지의 소개글은 개의 눈을 통해 인간을 비판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개가 보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혹자는 개가 인간에게 희생되었다는 표현을 통해 말하곤 하지만, 개들에게 물어 보았는가. 개가 인간에게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후루카와는 상상한다. 그는 신적인 위치에서 개에게 묻고, 또 그들의 입장을 설명하지만,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인간이 신인 척 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묻는다. 결국 모든 것은 픽션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은 픽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국 그것을 알고, 절망하는 수밖에 없는가. 아,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픽션 속에 사는구나, 라고 말이다. 글쎄, 그건 당신의 몫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관론자들이 있지만, 그만큼의 낙관론자도 존재하며,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처럼 독특한 픽션도 존재하는 것 아닌가.

 단지 나는 궁금할 뿐이다.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본의 아니게 지구를 벗어난 첫 생물이 되어버린 라이카를 말이다. 그는 끝이 없는 것마냥 펼쳐진 우주의 별빛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