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그릇 1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도예가가 쓴 소설이라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허나 의외로 좋은 필력에 감탄하며 빠져 들고 보니, 단숨에 독파하느라 밤을 꼴딱 새었다. 결국 내 예상과는 달리, 도예가가 쓴 소설이기에 더욱 가치있는 책이 되어 버린 셈이다. 어찌 이리도 절실할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바로 여기에 있을 터다. 

 이삼평, 존해, 종전, 백파선 등 주인공 신석을 제외한 인물들은 역사 속에서 실재했던 이들이다. 대개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끌려 간 이들이었지만, 도자기를 빚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높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그릇쟁이라 불리우며 천시받았던 이들이 일본에서는 예술가로 칭송 받았던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선을 그리워 한다.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조선땅에서 나온 흙으로 도자기를 빚으며 살아가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수십 년이 지나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도 이미 터를 잡고 살던 그들은 결국 일본에 남는 쪽을 택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조선이라지만,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는 곳 또한 조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조선에서 살 수 있는 대책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던 조선 백성들도 안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이 더욱 가여웠던 까닭은 바로 그 사실에 있었다. 더군다나 우여곡절 끝에 조선에 돌아 온 신석이 그릇쟁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천민인 주제에 절하지 않는다며 화내던 관리 또한 조선인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석은 성공이 보장된 일본에서의 생활을 버린다. 지금처럼 시끄러운 정국 속에서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예술을 절실히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타국을 침략한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채우려는 노력 또한 있었다. 물론 임진왜란은 일본 국내의 분란을 잠식시키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는 술책이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허나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이 종식되고서도 국방을 강화하지 않았고, 여전히 많은 침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그것을 고칠 수도 없다. 타산지석이라지 않던가.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일본은 이도 다완이 조선의 것이기는 하나, 이것은 조선인들의 밥공기로서 막 만들고 막 쓰던 막사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일본에 건너 오지 않았더라면 조선에서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이도 다완은 일본의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허나 이도 다완이라 일컫는 그릇은 바로 황도이며, 이 황도의 용도는 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제기는 그 용도가 다하면 깨버린다.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을 위한 제기를 일본인은 차 마시는 데에 사용했던 것이다. 허나 일본인들은 여전히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이 정설인 양 받아 들여지고 있다. 신한균이 가장 안타깝고 분했던 사실은 바로 이것일 게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니, 얼마나 씁쓸한 우리네 현주소인가.

 신한균은 그러한 역사의식과 도자기에 대한 애정을 통해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이나 이 일에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리라.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알 수 있기를, 나 또한 그렇게 소망한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