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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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래브의 거푸집을 떼어내려 할 때 난감한 일이 생겼다. 거푸집 안에서 새가 둥지를 튼 것이다. 내 집 짓겠다고 남의 집 헐 수도 없고, 하는 수없이 새끼를 길러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계획했던 일정이 보름이나 늦어지고 말았다. (215쪽)

 

 책에서 보여지는 김진송은 그런 사람이다. 새가 새끼를 길러 떠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그런 사람 말이다. 쉰이 다 되었는데 목수 경험 10년인 늦깍이 목수, 김진송. 그의 이 책은 겉보기에서 풍기는 DIY 관련 서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에세이에 가깝다. 예술이나 공예의 분류에 넣기 보다는 에세이에 분류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 상상은 무수히 많은 경험과 사고의 틈 속에 존재하며 그 틈 속에서 인간의 인식을 무한히 넓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바로 현실적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작동했으며 또 작동해야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기 보다 어른들이다. 상상의 세계가 제공하는 시각의 균열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 일상의 경험 속에 매몰되어 상투성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320쪽)

 

 흔히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의 목물 만들기는 나무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살리거나 그 형태에서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가장 처음의 일이 아니라 나무를 깍고 다듬는 도중에 일어난다. 도면을 아예 생략하기도 한다.

 

 나무를 통해 상상하고, 나무를 통해 만드는 것이다. 김진송은 그것이 목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목수일을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라 독학한 것이기에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는 그는 뿌리없는 목수라도 좋다고 한다. 도로 가든 모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 덕에 목수 김씨의 삶은 만족스러워 보인다. 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가늠하고 배려하려 해도 나무는 목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는 그의 말 속에는 나무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 있다. 나무가 목수를 기다려주지 않듯이, 시간도, 사람도, 자연도 마찬가지다.

 

 나무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가더라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듯이, 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 아닐까. 그가 나무와 목물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엿보며, 나 또한 내 것을 소중히 여기리라 다짐해 본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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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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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호의 고백대로, 이 소설집은 그의 이야기다. 그는 「나쁜 소설」이나 「수인」등을 통해 자신의 소설관을 이야기한다. 곡괭이질도 결을 따라 파야 하고, 바람따라 긁는 요령이 있듯이 소설가라는 직업에는 하나의 의지가 관철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신경을 오직 시멘트벽에 집중하려 애썼다.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곡괭이를 내리칠 땐 오직 곡괭이 생각만 했다. 그 자신이 마치 곡괭이의 날이 되고, 곡괭이의 자루가 된 것처럼, 곡괭이와 한 몸을 이뤄, 온몸으로 벽에 부딪쳤다. 「수인(囚人)」

 

 특히 이 소설집의 첫번째인 「나쁜 소설」은 이기호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꽤 인내심을 기르도록 요구하고 있어,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껴질 정도였다. 형식을 허물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제시하고, 우연을 남발하여 연속하는 이기호의 글이 분명 낯선 탓이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이나 표제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같은 황당한 설정, 독특한 서술은 언뜻 스치면 당혹함을 넘어선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허나, 허무맹랑해 보이는 우연의 연속이란 사실 낯선 것이 아니다. 흔히 우리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다시 말해, 필연보다 우연이 더 많다는 말이다. 이기호는 현실에서 현실적인 일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물음을 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이 현실답지 않듯 소설도 소설답지 않은 것들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며, 말갛게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탓에 이 소설집을 마냥 가볍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밭은 기침에 꾸물꾸물 살아 오르는 글자들이 묘한 경계선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눈 앞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실은 여간 성가신게 아니지만, 마냥 새침하게 쏘아 볼 수도 없는 매력이 있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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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 남자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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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대한 예감이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언젠가는 그 예감마저 완전히 사라질 때가 오지 않을까? 그건 좀 지나친 바람일까? ( 205쪽)

 

 존 스타인벡의 말을 웅엉거리던 아셀방크가 선명하다. 캐나다의 폭풍설에 발이 묶여, 아내의 애인이었던 패터슨의 집에 며칠 묵게 된 아셀방크는 죽음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인 남자다. 패터슨 또한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함께 살고 싶었던 아셀방크의 아내, 안나가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아셀방크가 떠나버린 안나를 찾아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묘하기 짝이 없다. 떠난 아내를 몇 년이 지나서야 우체국 소인만을 단서로 찾아 나서는 것, 자신의 팔뚝에 직접 주사 바늘을 꽂아 넣는 것, 아내의 연인이었던 남자들을 순서대로 만나는 고역을 참아내는 것도 모두 묘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안나는 정말 '온전한 남자'를 찾아 떠난 것일까. 이야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안나는 등장하지 않으므로 알 길이 없다.

 

- 그러니 제 속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보지 않는 게 좋은 겁니다. 거긴 우리의 가장 추한 얼굴이, 평새토록 감추고 살아야 할 얼굴이 숨어 있으니까.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인간은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동물이라 기억 같은 걸 가져서는 안 된다고, 과거의 일들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그 잡동사니 상자야말로 악의 근원이라고 하셨죠. (211쪽)

 

 몸도 마음도 유약한 남자인 아셀방크에게 패터슨은 '온전한 남자'로 보인다. 안나 역시 그렇게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패터슨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악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기에, 그가 '온전한 남자'인지도 의문이다. 그런 의문 때문에 안나가 패터슨을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두 남자 모두 한 여자에게 버림받은 것이고, 이 책의 제목이 <남자 대 남자>로 이름 붙여진 것이리라. 한 여자의 남편과 애인이라는 자리로써.

 

 그들에게 안나가 돌아온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안나는 행복과 불행을 알아내는 것이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인정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었던 아셀방크는 그 말의 의미를 얻기 위해 안나를 찾아 나서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마침내 행복을 얻기 위해. 하지만 끝내 안나는 종적이 묘연하고, 그 탓에 아셀방크는 답을 들을 수 없다.

 

 아셀방크는 안나를 찾아 내는 것을 그만둔다. 그것은 단순히 안나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을까. 이미 행복의 답을 찾아 내었기 때문일까. 행복과 불행을 찾아 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말하던 안나가 아셀방크에게서 잊혀질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안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이제사 찾았던 것은 아닐까.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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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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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테를링크는 벌집을 움직히는 힘이 여왕이 아니라 '벌집의 정신'에서 나왔다고 강조한다. 분봉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여왕벌의 질투에 의한 살인을 막느냐 막지 않느냐 하는 것도, 수벌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살인의 시기를 정하는 것도, 심지어 일벌들이 각자 할 일을 토론이라도 한 것처럼 필요한 비율로 나누어 일하는 것도 '벌집의 정신'에 의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메테를링크가 벌을 대하는 방식이다. 마치 인간을 대하듯 조심스럽고, 살갑게, 애정을 담아 표현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육각형 방이나 한 몸이 되어 행하는 동면에 대해서는 경외감마저 표한다. 

 

 메테를링크는 이 책에서 꿀벌의 양봉과 사육에 관한 논문을 쓸 생각은 없다고, 단호한 투로 시작한다. 따라서, 학계에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한 점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이실직고한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쓴 것일까. 실용서도 아니고, 입문서도 아니다. 다만 대중에게 꿀벌의 생태에 대해 알릴 따름이다. 아마 곤충의 사회를 통해 인간의 사회를 보려함이 아니었을까.

 

 허나 메테를링크가 감탄해마지 않는 '벌집의 정신'이나, 그토록 칭찬하는 근면성과 성실성은 놀랍지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게 하지도 않았다. 꿀벌이 모은 양식을 누가 강탈하는지 그들 자신은 모른다는 점을 인간사회에 비유하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기보다 억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꿀벌의 논문도 아니고, 비유한 소설도 아닌 이 책에서 자연의 사고방식을 인간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꿀벌들이 자신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를 알 수 없듯이 인간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허나, 이 불확정성은 꿀벌이나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 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황한 비유도, 최고 걸작이라는 신뢰성 없는 수식어도 메테를링크의 글 속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한 점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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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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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로 인정받는 60년대 작가, 김승옥의 전집을 시작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한 작가, 김승옥. 그 중에서도 그의 대표작인 「무진기행」이 들어간 이 전집은 책 스스로 반짝 빛나는 듯 하다. 한국전쟁 이후, 이념문학과 순수문학의 대립이 깊어져 가는 50년대를 거쳐,  60년대에는 다양한 문학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급부상했다. 그런 시대에 최인훈이나 이청준, 황순원같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김승옥의 존재는 두드러 진다. 이상문학상의 첫 수상자라던가, 당시 문학권력의 중심인 <현대문학>에 단 한 번도 소설이 등재된 적이 없었다던가, 호텔에 붙잡혀 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던가, 하는 강의 시간 잡담 속의 여러가지 이야기는 일단 제쳐두자.

 

 15편의 단편이 담긴 <무진기행>은 표제작 「무진기행」을 비롯하여,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章」같은 그의 대표작이 눈에 띄인다. 소설 쓰기가 생의 구원 수단이었다는 김승옥의 글은 자위와 영혼의 구토였음이 환히 드러난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스물에 「생명연습」을 들고 문단에 나온 그의 티없는 영혼이 부럽다.

 

-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서울 1964년 겨울」, 286쪽)

 

 모든 근심을 쏟아 부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듯 하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한다던 안과 김이 숨을 헐떡거리며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느냐는 소리가 들릴 때, 「무진기행」에서 윤이 아침에 일어나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무진을 삥 둘러싼 안개속에 서 있을 때,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에서 소설쓰기가 먹고 살기의 방편일 뿐이었느냐고 자문하며 진정한 삶을 절규할 때, 나는 숨이 가빠진다. 당시에 팽배했던 결핍의 순간을 체험하며, 갈증은 깊어진다.

 

 헐레벌떡 달려 온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을 다짐했던가. 그 순간을 모두 잊어 버렸나. 단조로움과 위태함에 빠져, 반성조차 갈기갈기 찢어 버렸나. 

 

-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 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무진기행」, 159-160쪽)

 

 안개를 헤칠 수도 흩을 수도 없는 이 순간, 갑작스레 늙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더라도 이제 더는 멈추지 않겠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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