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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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로 인정받는 60년대 작가, 김승옥의 전집을 시작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한 작가, 김승옥. 그 중에서도 그의 대표작인 「무진기행」이 들어간 이 전집은 책 스스로 반짝 빛나는 듯 하다. 한국전쟁 이후, 이념문학과 순수문학의 대립이 깊어져 가는 50년대를 거쳐,  60년대에는 다양한 문학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급부상했다. 그런 시대에 최인훈이나 이청준, 황순원같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김승옥의 존재는 두드러 진다. 이상문학상의 첫 수상자라던가, 당시 문학권력의 중심인 <현대문학>에 단 한 번도 소설이 등재된 적이 없었다던가, 호텔에 붙잡혀 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던가, 하는 강의 시간 잡담 속의 여러가지 이야기는 일단 제쳐두자.

 

 15편의 단편이 담긴 <무진기행>은 표제작 「무진기행」을 비롯하여,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章」같은 그의 대표작이 눈에 띄인다. 소설 쓰기가 생의 구원 수단이었다는 김승옥의 글은 자위와 영혼의 구토였음이 환히 드러난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스물에 「생명연습」을 들고 문단에 나온 그의 티없는 영혼이 부럽다.

 

-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서울 1964년 겨울」, 286쪽)

 

 모든 근심을 쏟아 부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듯 하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한다던 안과 김이 숨을 헐떡거리며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느냐는 소리가 들릴 때, 「무진기행」에서 윤이 아침에 일어나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무진을 삥 둘러싼 안개속에 서 있을 때,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에서 소설쓰기가 먹고 살기의 방편일 뿐이었느냐고 자문하며 진정한 삶을 절규할 때, 나는 숨이 가빠진다. 당시에 팽배했던 결핍의 순간을 체험하며, 갈증은 깊어진다.

 

 헐레벌떡 달려 온 시간 앞에서, 나는 무엇을 다짐했던가. 그 순간을 모두 잊어 버렸나. 단조로움과 위태함에 빠져, 반성조차 갈기갈기 찢어 버렸나. 

 

-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 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무진기행」, 159-160쪽)

 

 안개를 헤칠 수도 흩을 수도 없는 이 순간, 갑작스레 늙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더라도 이제 더는 멈추지 않겠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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