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대 남자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 죽음에 대한 예감이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언젠가는 그 예감마저 완전히 사라질 때가 오지 않을까? 그건 좀 지나친 바람일까? ( 205쪽)

 

 존 스타인벡의 말을 웅엉거리던 아셀방크가 선명하다. 캐나다의 폭풍설에 발이 묶여, 아내의 애인이었던 패터슨의 집에 며칠 묵게 된 아셀방크는 죽음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메인 남자다. 패터슨 또한 마찬가지다. 유일하게 함께 살고 싶었던 아셀방크의 아내, 안나가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아셀방크가 떠나버린 안나를 찾아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묘하기 짝이 없다. 떠난 아내를 몇 년이 지나서야 우체국 소인만을 단서로 찾아 나서는 것, 자신의 팔뚝에 직접 주사 바늘을 꽂아 넣는 것, 아내의 연인이었던 남자들을 순서대로 만나는 고역을 참아내는 것도 모두 묘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안나는 정말 '온전한 남자'를 찾아 떠난 것일까. 이야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안나는 등장하지 않으므로 알 길이 없다.

 

- 그러니 제 속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보지 않는 게 좋은 겁니다. 거긴 우리의 가장 추한 얼굴이, 평새토록 감추고 살아야 할 얼굴이 숨어 있으니까.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어요. 인간은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동물이라 기억 같은 걸 가져서는 안 된다고, 과거의 일들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그 잡동사니 상자야말로 악의 근원이라고 하셨죠. (211쪽)

 

 몸도 마음도 유약한 남자인 아셀방크에게 패터슨은 '온전한 남자'로 보인다. 안나 역시 그렇게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패터슨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악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기에, 그가 '온전한 남자'인지도 의문이다. 그런 의문 때문에 안나가 패터슨을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두 남자 모두 한 여자에게 버림받은 것이고, 이 책의 제목이 <남자 대 남자>로 이름 붙여진 것이리라. 한 여자의 남편과 애인이라는 자리로써.

 

 그들에게 안나가 돌아온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안나는 행복과 불행을 알아내는 것이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인정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었던 아셀방크는 그 말의 의미를 얻기 위해 안나를 찾아 나서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마침내 행복을 얻기 위해. 하지만 끝내 안나는 종적이 묘연하고, 그 탓에 아셀방크는 답을 들을 수 없다.

 

 아셀방크는 안나를 찾아 내는 것을 그만둔다. 그것은 단순히 안나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었을까. 이미 행복의 답을 찾아 내었기 때문일까. 행복과 불행을 찾아 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말하던 안나가 아셀방크에게서 잊혀질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안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이제사 찾았던 것은 아닐까.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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