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레이더를 위한 성공전략 - 사이버 주식
데이비드 나사르 지음 황보윤 옮김 / 청아출판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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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DAT, 즉 Electronic Direct Access Trading은 전자 직접 투자를 말한다. 특히, HTS(Home Trading System)의 확산으로 가입만 한다면 누구나 모니터 앞에 앉아 간단하고 빠르게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은 단기와 장기를 정의하는 기간이 달라졌다는 것을 뜻하며, 더 간단히 말해 그 기간이 짧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 책은 그에 따라 발빠르게 대응하여 E-DAT을 이용한 핵심적인 투자전략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은 미국에서 E-DAT이 가능하게 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나온 책이라 현재와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허나 무엇이든 기본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사람은 더욱 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이 같고, 욕심이 같으며, 어떤 상황에서 두려움이 생기거나 자신감이 넘치는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트레이딩에는 무엇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주요히 작용하기에 타인의 입장에 서서 손익을 판단하는 것이, 내 입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트레이딩의 성공비결을 꼽아 보라. 하나같이 심리적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덧붙여 책에서는 성공 비결을 '지식, 자신감, 실천력, 모르는 것은 언제든지 배운다는 자세, 실패를 인정하고 책임을 감수하는 정서적 능력(170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쯤 되면, 트레이딩뿐 아니라 무엇에나 해당하는 성공 비결임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꼽고 싶은 점은 바로 자신감과 규칙이다. 자신감을 잃으면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두려움은 들어가야 할 때에는 자신이 없어서 못 들어가게 가로막고 나와야 할 때에는 머뭇거리다 못 나오게 한다. 결국 손실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손실에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레이딩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고, 그에 따라서 가능한한 손실을 줄여야 한다. 또 손실을 보게 되더라도 이것이 필연적이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자신감, 즉 결단력이 있다면 손실을 빨리 끊을 수 있다. 두려움은 잊어 버리고 냉정한 계산에 의해 산출해낸 규칙에 의거해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규칙이란 무엇인가. 이미 언급했듯 규칙은 냉정한 계산에 의해 산출해낸 것이라야 한다. 먼저 어떤 트레이딩을 할 것인지 유형을 잡아야 한다. 장기, 중기, 단기 이 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한다. 특히 초보가 하나 이상의 포지션을 취할 경우에는 실패를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소유한 종목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서가 된다. 장기 트레이더라면 회사에 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한 되팔지 않을 것이며, 스윙(중기) 트레이더라면 며칠동안 주식을 보유할 수도 있지만 주말은 넘기지 않을 것이다. 또 SEC(단기 혹은 스캘퍼) 트레이더라면 짧게는 몇 분, 길어도 한 시간 이상 보유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거래 철학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목표와 전략이다. 앞서 언급한 거래 철학을 명심한 후, 벌어들이고자 하는 금액을 정한다. 하루에 얼마, 혹은 하루에 몇% 혹은 일주일, 한 달 단위로 정하는 것이 좋다. 목표의 골자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구체적 계산을 해보라는 의미이다. 또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한계는 어디까지 잡을 것인지 등을 정하는 것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리스크 관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익이 클수록 반대급부로 손해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한 후, 투자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트레이딩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후 그래프나 데이타, 뉴스 등의 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시점에서, 그래프의 수치가 어떨 때 투자하라고 가르쳐 주는 책은 없다. 있다면 그 안의 내용은 모두 헛것이다. 이 책에서도 몇몇의 기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지만 그 기법들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 대다수이어서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더 쉽게 정의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법들은 오래되었지만, 현재에도 80%이상 통하는 기법들이다. 다만, 바탕만 제시할 뿐 위에서 언급한 세부적인 것들까지 말하지는 않는다.

 

 성급한 일반화나 괜한 오해가 아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이미 위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이다. 당신이라면 10년 동안 투자하여 얻은 기법을 책 한 권으로 타인에게 전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변화가 빠른 현대를 생각하면 매우 오래된 책이지만, 아직까지도 믿을만한 정보임에 확실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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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1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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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대를 먼저 만들고 살을 붙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살을 발라 뼈대만 남기거나 뼈대 위로 조금의 살만 남겨 놓는 이가 있다. 이 살은 대체적으로 맛있어 보인다. 허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아무리 맛있어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체한다. <논개>는 뼈대 위에는 맛있는 살만 붙이거나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논개는 어느 방향인가. 최근 읽은 양쯔쥔의 <사자개>를 볼 때보다 더 큰 아쉬움이 무럭무럭 꽃핀다.

 

 배나무로 따지자면 곁가지를 치지 않아 성장을 저해시키거나 배꽃을 제대로 따지 않아 열매가 달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이다. 김별아는 어떤 곁가지를 처내야 하고, 언제 배꽃을 따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인정받는다, 는 것을 몸소 터득한 것이리라. 어쨌든 지나친 미사여구나 현학은 감탄의 대상은 될 지언정 마음의 감동은 얻지 못한다. 때로 그 감탄을 진심에서 우러 나오는 감동이라 믿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속을 수 없어 애석하다. 게다가 작중개입은 또 얼마나 남발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로 그 외 다른 것에서 감동을 얻었다면, 아마 이리도 표독스레 책을 노려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당대의 사회상을 아무리 떠벌려 보아도 작중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사건의 개연성은 희끄무레하기만 하다. 선명하던 인물이 갑작스레 희미해지다가 죽어 버리기도 하는 등 전반적인 구성 자체에 강약의 조절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이런저런 아쉬움에 곁가지를 잘라내지 못하고 머뭇거린 결과다.

 

 김별아는 이야기를 찾아 헤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허송세월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찾아오길 강렬히 고대했다고 한다. 그 순간 찾아 온 <논개>가 그를 흥분하게 했으리라. 작가는 그 흥분을 가라 앉힌 후,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그러다보니 강약조절에 실패하게 되고, 그것을 미사여구로 감추게 되었으며, 결국 어정쩡한 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그의 말처럼, 논개는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다. 허나 동시에 누구나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논개라는 기생이 왜적을 껴안고 강에 뛰어 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논개가 누구인지 그 왜적이 누구인지 왜 같이 뛰어 들어야 했는지 또 어떤 시대였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그것을 소재로 삼기에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소설적 허구로 재창조하기 편해진다. 그럼에도 <논개>는 허장성세에 불과하게 되어 버렸지만, 그렇기에 안타까움을 면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러한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논개의 죽음 하나만은 선명하다.

 

 적의 장수를 껴안은 논개가 기우뚱 떨어진다. 그 모습이 분분한 낙화를 떠오르게 한다. 김별아는 그것을 이팝나무 꽃마냥 너즈러진다, 했던가. 시인 조지훈은 <낙화>에서 '꽃이 떨어지기로서니 / 바람을 탓하랴' 라고 말했다. 바람 불지 않아도 언젠가 생을 다해 떨어질진대, 바람을 탓해 무엇하느냐는 의미일게다.

 

 논개가 충절을 위해 죽음을 맞았는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죽음을 향하던 논개가 낙화할 때에 슬프고 괴로워하되 누구든 무엇이든 탓하지는 않았으리라.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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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개
양쯔쥔 지음, 이성희 옮김 / 황금여우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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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아오, 즉 <사자개>를 중심으로 화자의 '아버지'가 겪은 일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티베트 시제구 초원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이야기는 먼저 스토리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제법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엮어 무리없이 소화해 내고 있다. 하지만 문체라던가 서툰 묘사, 지나친 오역과 역주, 오타 등은 책에 대한 호감을 상당히 반감시킨다.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문장 자체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시처럼 미문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아니오, 기사처럼 정문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아니오, 다만 스토리 자체에만 메리트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34장동안 매장마다 사자개와 인간과의 관계, 사자개의 우수성, 야수성, 인강성을 일깨워주는 것이 굉장히 지루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은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문학성을 높여준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사자개>는 사자개에 대한 사랑이 둘째 가라면 서러웠던 양쯔쥔이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화자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직접 사자개와 함께 생활했던 아버지를 둔 양쯔쥔은 어릴 때는 도무지 사자개에 정감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자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 냄새가 묻어 있는 양쯔쥔에게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사자개를 보고서야 사자개에 대한 사랑이 피어 났다 한다. 사자개가 더이상 초원에서 살지 못하고 드문드문 도시 속에서 애완견으로 키워지기 시작하며, 야성이 죽어 사자개답지 않아졌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는 매우 슬퍼하며 돌아 가셨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이 소설은 자연히 아버지와 사자개에 대한 사랑이 물씬 풍긴다.

 

 오래 전에 인터넷에 떠돌던 사자개의 사진이 기억난다. 더럽고 냄새가 날 것 같은 털을 가진 채, 기죽어 있는 사자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 사자개가 예전에는 초원을 누비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던 야생동물이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야성을 잃고 초라한 모습으로 도시 속에서 죽어가는 사자개들에 진정 조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개라며 인터넷에서 떠돌던 사진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그 때는 사자개를 잘 몰랐어도 안쓰러움이 절로 피어났다. 하물며 그 일면을 조금 들여다 본 지금은 오죽하랴.

 

 지금껏 무협소설이 아닌 중국소설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번역도 문제지만, 그 자체의 문학성이 비하당했기 때문이다. <사자개>는 2005년 이후 10위권으로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장기 베스트셀러이다. 그런 만큼 좀 더 훌륭한 성취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 기대에는 약간 뒤떨어지지만, 소재의 참신함과 작가의 애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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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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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순간부터 당신은 무례함을 금지하는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주민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116쪽) 또한,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117쪽)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당신에게 이것을 허용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아마 비웃을 것이다. 예의를 지키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 전달자>의 세계에서는 그 모든 것을 금지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인구 또한 적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한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치부된다.

 

 이처럼 통제된 사회 속에서 조너스는 성장한다.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에 선택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가 되자, 그는 처음으로 이 사회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사람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으면 우리 마을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단다. 넌 이렇게 물어야 했어.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란다. / 아니면 '어머니 아버지는 제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세요? 라고 물었어야지. 그리고 그 대답은 진심으로 '물론.'이다. / '사랑'같은 단어를 쓰는 게 왜 부적절한지 이해되니? (216-217쪽)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란 조너스는 이태껏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지만 '기억 보유자'가 된 후 거짓말을 할 권리를 허용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만다. '사랑'같은 단어를 쓰는 게 왜 부적절한지 몰랐지만, 이해한다고 거짓을 말한 것이다. 그 순간 조너스가 받았을 상처는 현재 조너스에게 '기억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선대 '기억 보유자'만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억 보유자'란 <기억 전달자>에서 보여지는 통제 사회 이전의 사회에 대한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조너스는 이런 '기억 보유자'가 된 후,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고대에 있었던 색깔과 노래 등을 모두 빼앗기고, 심지어 사랑 등의 감정까지 빼앗긴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그것을 다시 되찾았을 때 한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되찾은 것들을 보유하고 있는 자는 조너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롭고, 또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산아 제한은 물론 이미 태어났다 하더라도 개성적이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혹은 늙어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다면 '임무 해제'라는 허울 좋은 말로 살해하는 사회가 바로 <기억 전달자>에서 보여지는 사회다. 그것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정의할 수 없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가 되기 전까지 모든 걸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었듯이 아예 이전 사회를 모른다면 그것이 행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선뜻 통제 사회를 디스토피아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다. 또, 그 탓에 조지 오웰의 <1984>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이 통제 사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공명정대하게 비교를 하려고 해도 '자유'에 손을 들게 될 수밖에 없다. 허나 냉전의 시대를 생각해 보라. 소련은 사회주의, 즉 통제 사회에 대한 이념을 얼마나 확고히 긍정했는가. 우리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았더라면, 사회주의가 잘못된 것이라 비판할 수 있었을까. 현대 사회에 대한 긍정을 확고히 주장할만한 기치를 마련하지 못한 내가 이 혼란을 받아 들이기는 매우 힘들다. 이것을 부정하기에는 각 이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이해한 후 판단을 내린다 해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 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는 없나요? 왜 색깔들이 사라졌나요? / 우리들이 그쪽을 선택했어. '늘 같음 상태'로 가는 길을 택했지. 내가 있기도 전에, 이 시대보다도 전에,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앴을 때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지. / 그럼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은 포기해야 했단다. (163쪽)

 

 어쨌든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수정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그처럼 조너스는 고대에 다수가 선택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았다. 허나 안타까운 점은 그 잘못이 수정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제 몸 하나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뿐이다. 이 심심한 결말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다. 허나,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재차 삼차 계속 수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개운해진다.

 

- 하지만 모든 사람이 기억을 품을 수는 없나요? 모두 조금씩 기억을 함께 나눈다면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한다면 기억 전달자님과 제가 그렇게나 많은 고통을 떠맡을 필요가 없잖아요. (193쪽)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잘못에 순응하고 있는가, 개혁하려 하는가.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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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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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때때로 눈물을 참아 내기가 힘들었음을 미리 말하고자 한다. 내가 직접 겪지 못했더라도 우리네 부모, 혹은 우리네 역사와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세월이 못내 안타까웠던 탓이리라. 혹은 그것의 해결을 향한 막연한 열망 탓인지도 모른다.

 

- 이거 잡수세요, 어머니가 꼭 드시게 하라구 그러셨어요. / 두부…… 거 다 미신이다. / 이제부턴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하셔야 된대요. (상권 17쪽)

 

 남들처럼 눈치 보다 제 갈길 찾아 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허비한 오현우에게 조카는 이런 말을 전한다. 현우의 누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출소하면 생두부를 먹는 것처럼, 이제는 남들과 같이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리라. 허나 18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던 연인이 죽고, 이제는 체취조차 찾을 수 없는 오랜 시간이었던 것이다.

 

 한때 사랑을 나누었던 윤희가 이미 몇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현우의 마음은 이루 설명하지 못할만큼 찢어 졌으리라. 감옥에 들기 전 혼인 신고라도 했더라면 만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윤희를 만날 길도 연락을 주고 받을 길도 없던 현우는 그가 죽은 것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우는 직계가족 외에는 면회도 안되고 편지도 안부 외에는 안되고 더구나 그냥 친지의 것은 열람한 뒤에 다시 반납하게 되어 있었다. 갈뫼에서 짧은 몇달을 함께 보냈을 뿐이지만, 그네들의 인연까지 짧은 것은 아니었기에 마음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계절을 함께 한 연인들의 속도와 깊이를 따라 잡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그런 둘이 함께했던 갈뫼에 마침내 현우가 돌아 간다. 간단한 개조를 제외하고는 거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갈뫼의 오두막은 현우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그것이 윤희의 배려였음을 모를 수 없으리라. 현우는 그 곳에서 여러 권의 일기를 발견한다. 그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윤희가 현우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그가 없는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 왔는지, 어떨 때 그가 생각났는지를 말하려고…… 그리고 그들 사이에 딸이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현우는 그동안 윤희가 살아왔던 것을 보고 느낀다. 그가 없는 외로움을 온몸으로 느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현우가 감옥에 있는 동안 느꼈던 외로움과 고통 또한 그 못지 않지만, 그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댓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윤희가 더욱 안타깝다.

 

- 나는 거울 속에서나 자신을 볼 수밖에 없으므로 나의 두 눈은 화면 이쪽의 렌즈에 지나지 않고 세상은 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이 저 바깥쪽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하권 111쪽)

 

- 어딘가 살아 있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의 부재는 거기 남은 한사람까지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126쪽)

 

 인간은 누구나 혼자기에 감당해야 할 원죄같은 외로움을 항상 느낀다. 그것이 특별히 현우와 윤희를 비켜갈 까닭은 없다. 하지만 그 외로움 속에 풍덩 빠져 자신을 내맡기는 이는 흔치 않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다른 거대한 힘의 뜻으로 가져야 하는 외로움이기에 그것의 깊이는 더한다.

 

- 잠잘 때를 생각해봐. 온 밤내 같은 줄거리의 꿈을 꾸게 되지는 않아. 깨고 나면 몇 장면만 또렷하게 남곤 하지. 아무도 그 흐름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어요. 생이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들이 서로 끼여들지 않고는 어떤 대목이 중요했는가를 모르고 죽게 될 거야. (하권 232쪽)

 

 마침내 윤희의 일기는 끝을 맺는다. 죽기 전 남긴 몇 통의 편지와 함께 윤희의 삶은 마감한다. 18년간 만나지 못하고 갈망했던 서로를 묻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들뿐 아니라 우리네 삶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과 같은 장기수, 남북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 이념으로 인한 오해등으로 누군가의 삶은 여전히 얼룩져 있다.

 

-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하권 308쪽)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딸 은결이로 인해 한 줄기 희망을 발한다. 그것은 그들의 딸일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 세대를 이끌어 나갈 우리다. 우리는 그들이 남기고 간 유산을 본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오래된 정원을 본다. 그것은 색색가지 꽃이 만발하기도 하였지만, 우리네 가슴 속에 남긴 오열의 유산이다. 칠팔십년대의 피로 얼룩진 삶, 우리는 그것을 해결했는가. 우리네 오래된 정원을 찾았는가. 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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