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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순간부터 당신은 무례함을 금지하는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주민에게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116쪽) 또한,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됩니다. (117쪽)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당신에게 이것을 허용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아마 비웃을 것이다. 예의를 지키는 것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 전달자>의 세계에서는 그 모든 것을 금지한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인구 또한 적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한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치부된다.
이처럼 통제된 사회 속에서 조너스는 성장한다. '기억 보유자'라는 직업에 선택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가 되자, 그는 처음으로 이 사회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사람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으면 우리 마을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단다. 넌 이렇게 물어야 했어. '어머니 아버지는 저와 즐거우세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란다. / 아니면 '어머니 아버지는 제 성과에 자부심을 느끼세요? 라고 물었어야지. 그리고 그 대답은 진심으로 '물론.'이다. / '사랑'같은 단어를 쓰는 게 왜 부적절한지 이해되니? (216-217쪽)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란 조너스는 이태껏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당연하다 여겼지만 '기억 보유자'가 된 후 거짓말을 할 권리를 허용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만다. '사랑'같은 단어를 쓰는 게 왜 부적절한지 몰랐지만, 이해한다고 거짓을 말한 것이다. 그 순간 조너스가 받았을 상처는 현재 조너스에게 '기억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선대 '기억 보유자'만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억 보유자'란 <기억 전달자>에서 보여지는 통제 사회 이전의 사회에 대한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 조너스는 이런 '기억 보유자'가 된 후,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고대에 있었던 색깔과 노래 등을 모두 빼앗기고, 심지어 사랑 등의 감정까지 빼앗긴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그것을 다시 되찾았을 때 한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되찾은 것들을 보유하고 있는 자는 조너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롭고, 또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산아 제한은 물론 이미 태어났다 하더라도 개성적이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혹은 늙어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다면 '임무 해제'라는 허울 좋은 말로 살해하는 사회가 바로 <기억 전달자>에서 보여지는 사회다. 그것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는 정의할 수 없다. 조너스가 '기억 보유자'가 되기 전까지 모든 걸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었듯이 아예 이전 사회를 모른다면 그것이 행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선뜻 통제 사회를 디스토피아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다. 또, 그 탓에 조지 오웰의 <1984>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이 통제 사회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공명정대하게 비교를 하려고 해도 '자유'에 손을 들게 될 수밖에 없다. 허나 냉전의 시대를 생각해 보라. 소련은 사회주의, 즉 통제 사회에 대한 이념을 얼마나 확고히 긍정했는가. 우리가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았더라면, 사회주의가 잘못된 것이라 비판할 수 있었을까. 현대 사회에 대한 긍정을 확고히 주장할만한 기치를 마련하지 못한 내가 이 혼란을 받아 들이기는 매우 힘들다. 이것을 부정하기에는 각 이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정확히 이해한 후 판단을 내린다 해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 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는 없나요? 왜 색깔들이 사라졌나요? / 우리들이 그쪽을 선택했어. '늘 같음 상태'로 가는 길을 택했지. 내가 있기도 전에, 이 시대보다도 전에, 옛날 아주 오랜 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햇볕을 포기하고 차이를 없앴을 때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지. / 그럼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들은 포기해야 했단다. (163쪽)
어쨌든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수정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그처럼 조너스는 고대에 다수가 선택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았다. 허나 안타까운 점은 그 잘못이 수정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제 몸 하나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뿐이다. 이 심심한 결말에 대해서는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다. 허나,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재차 삼차 계속 수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개운해진다.
- 하지만 모든 사람이 기억을 품을 수는 없나요? 모두 조금씩 기억을 함께 나눈다면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한다면 기억 전달자님과 제가 그렇게나 많은 고통을 떠맡을 필요가 없잖아요. (193쪽)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잘못에 순응하고 있는가, 개혁하려 하는가. 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