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퍼 1 (보급판 문고본) - 순간 이동
스티븐 굴드 지음, 이은정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 나는 여행을 할 수도 은행을 털 수도 있지만, 지각을 하지 않는 것에나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그리핀은 나보다 더 위험한 시련을 겪었기에 복수를 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또한 가족들을 잃고 그 상처를 쓰다 듬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처럼 극한 상황에 엮어 넣기 위해 억지스러운 장면들도 자주 등장한다. SF소설이라기에 잘 짜여진 플롯을 떠올렸으나, 그같은 장면들로 인해 긴박감이 떨어진다. 복선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소설이라고 장르를 한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둘 다 어린 소년이고, 극한 시련 속에서 자아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성장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보면 SF적 요소는 부분적일 뿐이다. 즉 그보다는 성장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의 우연적인 전개가 용서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성장소설에서 주요하게 취급되는 감정이입을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도 많다. SF소설의 장점도 성장소설의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어색한 경계에서 뛰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쉬움이 강하게 남지만, 그래도 <점퍼>는 매력적이다. 이미 순간 이동 능력이 여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루어져 왔기에 낯선 아이템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템이 두 소년들의 활약상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신선하다. 그들은 마냥 착하지도 않고, 정의를 부르짖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에게 순간 이동 능력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 남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투명인간이 되거나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들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다. 애초에 인간 병기로 길러 졌다거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거나 비밀 결사 조직의 회원이라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데이비드는 그저 자신의 괴로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강하게 염원하곤 하였던 것이 순간 이동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스스로 추측하였고, 후속작의 그리핀은 어린 시절 우연찮게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 경우다. 그런 의미에서 후속작은 전작의 매력을 조금 감소시킨다. 순간 이동 능력을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머리를 잘 쓴다고나 할까. 그래서 후속작보다 전작을 좀 더 높게 사고 싶지만, 이야기 전개에서는 후속작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어쨌거나 둘은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 가는 영웅보다는 평범한 소년인 채로 남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점퍼>를 그리 보고 싶지는 않다. 평범한 소년의 면모보다는 영웅적인 면모가 좀 더 강조될 것 같아서이다. 또한 순간 이동을 하는 장면은 분명 흥미로운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기대가 되지만, 원작에서도 부족한 감정 처리나 극적 전개가 잘 처리되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나쁜 선택은 아닐 듯 하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천성이 수필과는 맞지 않는 모양이다. 도종환의 시를 매우 좋아하는 나지만, 수필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니 그의 수필도 내 마음을 크게 울리진 못하나 보다. 아마 그건 도종환의 탓이 아니렷다. 사실상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소설가나 시인이라도 그들의 수필만은 내게 감동적이지 못 했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의 문장은 아름답다. 물론 그의 시만큼이나 아름답지는 못 하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생생한 단어들을 그러모은 느낌이다. 더군다나 도종환은 자신이 표현한 그것들을 아주 사랑하고 있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썼다. 그래서 이 수필은 산, 숲, 나무, 꽃, 새...... 그 모든 자연을 얼싸 안고, 조근조근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 사람을, 사람이라는 존재를 사랑한다.

 

- 꽃 한 송이 사람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잠시 삶의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가까운 곳에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걸 못 보고 끝없이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게 우리 삶이기 때문입니다. (318쪽)

 

 도종환이 산에서 겪는 일상은 매일매일이 비슷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아마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제각각 비슷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한 것처럼, 그렇다. 언제나 쫓기는 듯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 할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산에 데려다 놓는다손 치더라도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맨발로 뛰쳐 나올테다. 처음 하루는 아름다운 산에 반해 잠들겠지만, 이튿날부터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혹은 산밖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울테니까. 아마 나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도종환이 산에서 사는 아름다움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은 아마 천성이리라. 그리고 사람들은 그 천성이 부러운 것 아닐런지.

 

 나 또한 마찬가지라서 지나치게 바쁘고 쫓기는 일상도 싫지만, 지나치게 한가하고 고적한 삶도 싫다. 또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 속에서만 살 자신은 없다. 푸릇한 풀 한 포기는 좋아하지만 그 풀을 쑥쑥 자라게 하는 지렁이는 징그럽고, 새는 좋아하지만 마당 앞에 싸놓은 새똥을 보면 욕이라도 한 바탕 퍼부을 게 뻔하다. 아침마다 새들의 지저귐에 깨어나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지만 괴로울 수도 있고, 밤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고적함을 즐길 수도 있지만 짜증내지 않을 자신이 없다. 또 한낮의 매미 울음은 얼마나 또 시끄러운지. 순식간에 해가 져버리는 산사는 어떠며, 새카맣게 우거진 숲에서 길을 잃고 무서워 하지나 않을런지. 이 모든 게 자연과 함께 하고 그 속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도 이미 도시에 익숙해진 탓일게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사진으로 본 자연은 아름답지만, 실제로 그곳은 적응되지 않은 사람이 살기에는 지치고 고단하기만 하다.

 

 자연이 익숙해 졌다는 도종환도 때때로 그 불편함에 대해 논하는 것처럼, 자연에 동화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가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고 정말 묻는다면, 나는 아마 '조금 더 덕을 닦은 후에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람에 속하려면 한참 멀었으려니, 하고 지레 짐작해보는 탓이다. 앞서도 말했듯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그만큼 아름답지 못하고 선하지 못한 탓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가 스스로 깨달은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진부한 옛 이야기처럼, 혹은 설교처럼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조금씩 맛봐야 한다. 치자물이 천천히 드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선한 마음을 조금씩 나에게 물들일 수 있을 것 같다. 霖

- 오늘 아침엔 한글 정자체 쓰기를 하였습니다. 한글 쓰기 교본을 사다가 '가'자부터 천천히 공들여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이에 이 무슨 퇴행적인 짓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겨울 아침, 글자 하나하나를 반듯하게 다시 쓰는 일부터 하고자 하는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기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어서입니다. 난필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처럼 삶에도 어지러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난필로 어지럽게 남긴 글씨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지닌 채 쫓기며 살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반듯하게 생각하고 쓰고 하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펼쳐 차례를 보니 친근한 이름은 다수 있는데, 이 모두가 경제학자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었다. 김육이나 박제가, 박지원 정도를 제외하면 경제학자라는 제목에 발끝도 못 붙일 철학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긍이 간다. 또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등 몇몇 유명 조선학자들의 책을 읽어 본 적은 있으나 몰랐던 이들도 많았고, 그들의 업적이나 사상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경제학자들이 여러 이론을 제시하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사는 우리가 그것을 경제학으로 인식조차 하고 있지 못 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어졌다.

 

 특히 가장 놀라웠던 것은 <택리지>의 이중환이나 <토정비결>의 이지함 등을 경제학자라 칭한 것이었다. 사실 그들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지도와 풍수지리 뿐이었는데, 그것이 경제학의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을 몰랐기 때문이다. 

 

 <택리지>는 이미 대개가 명당을 찾는 풍수지리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던가. 그런데 실은 이 책이 우리나라의 지리적 조건 및 환경과 경제 간의 상호관련성에 대해 서술한 경제지리서였다니. 내가 국사교과서를 잘못 이해한 것이었는지, 국사교과서에 잘못 기재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점은 보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선생님들에게 <택리지>가 경제지리서라는 얘기는 정말이지 들어 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또 이지함이 최초 양반 사대부 출신의 상인이었다니. 더군다나 이지함은 현대와 비슷하게 자원 개발과 인재 등용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상부상조의 정신까지 더 하니, 오히려 현대 경제인들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채제공에 관해 읽을 때에는 얼핏 보았던 드라마 <이산>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지나가면서 잠깐 본 부분에서 금난전권 철폐를 주장하던 내용이 나왔었는데, 그 시기가 너무 일렀기 때문에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즉위 후, 왕권이 어느정도 인정된 후의 일이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물론 드라마가 픽션이라는 건 안다. 이런 말 하면 꼭 지적하는 사람 있더라. 나 바보 아니다-_-) 어쨌거나 금난전권 철폐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미약하게나마 알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채제공이 그것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미처 몰랐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자 한정주가 조선 후기 최고 재상이 채제공이라 칭했구나, 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

 

 또 생소했던 이름들 중 하나인 유수원에 대해서는 그의 가문이 몰락한 후, 복원되지 않아서라는 한정주의 의견에 공감이 간다. 기축옥사에서도 정도전의 철학을 계승했다는 의심만으로 수많은 인재들이 죽어나가지 않았던가. 아무렴 이렇게나마 알게 된 유수원이 270여년 앞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비판했었다니 매우 놀랍다. 더불어 이렇게 발전한 우리의 경제학이 식민지를 거쳐 오며, 제고되지 못하고 모조리 저평가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이지만, 책 구성에 대한 안타까움 몇 가지. 각 학자들을 시간순으로 놓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점, 머릿말 바로 뒤를 차지한 '가상좌담'을 책의 가장 뒤로 재배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저자 한정주의 바람처럼, 이 책이 그동안 잊혀졌던 조선의 경제학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위선적인 인물 못지 않게 위악적인 인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다. 하지만 현실이 아닌 소설로서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 위악적인 인물만큼 매력적인 인물도 좀처럼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조제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덕분에 상냥한 조제가 베르나르에게 상냥한 미소로 상냥한 설명을, 즉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말 것을, 미쳐버리지 말 것을 충고하는 장면은 아마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187쪽)


 더이상 사랑의 영원성을 진실로 믿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이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는 것처럼 그 모든 것은 하고 또 해도 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제는 그것을 안다. 베르나르처럼 생각하게 되면 죽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 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오직 그녀, 조제만이 시간에 대한 온전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격렬한 본능에 떠밀려 시간의 지속성을, 고독의 완전한 중지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과  같았다. (137쪽)


 베르나르는 결국 조제의 사랑을 얻지는 못 하겠지만, 아마 그래서 그의 사랑을 얻고 싶었으리라.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혹은 더 그 후라고 할지라도 그토록 염원하던 사랑이 언젠가는 변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조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은 물론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으로 아우르는 사강이 말하는 삶이고, 사랑이다.


-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눈(目)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77쪽)


 한편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는 그것이 힘겨워 여행을 떠나지만, 결코 잊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지인들에게 괴로움을 고백해도 천편일률적인 위로 뿐이다. 자기 자신을 보고 마음을 가라 앉히라니. 베르나르는 그것이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라며 부르짖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도 자신을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그 순간의 베르나르는 조제의 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눈은 전혀 소용이 없었으니까. 실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내외적으로 지적이라는 평판을 듣는 베르나르도 사랑 앞에서는 그 위대한 사고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진정 사람이란 어쩔 도리가 없는 존재인가.


 온 몸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하는 이들, 그리고 그것을 냉소하는 이들, 또 한 편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삶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강은 아마 가장 마지막의 그것일 게다. 책에서 등장하는 여러 남녀들의 엇갈린 사랑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훗날 비록 식어 버리고, 퇴색해 버리고, 윤기를 잃어 버리더라도. 그 순간의 믿음과 영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 사건>이라는 무게감 있는 제목으로 시선을 한 번에 잡아 끌었다. 한 발을 내딛어 보니 정여립 사건, 즉 기축옥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디선가 한 번 흘깃 들어 본 적은 있으나, 무슨 내용인지 어떤 내막이 있는지 모르기에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송강 정철이 나온다. 며칠 전, <중세시가작품론>에서도 정철의 작품이 문제로 나왔는데 여기서 보니 반갑다. 어? 그런데 내가 그에게 갖고 있던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나로선 그의 정치 행적보다는 그의 문장력에 대해서만 파고 들었기에 사실 잘 몰랐었던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 게 아닌가. 그저 다사다난했던 그의 정치력, 이라고만 알고 있었기에 기축옥사를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역사에 대해 이리도 무지했었나, 하는 얼뜬 자괴감이 든다. 조선왕조실록은 너무 대충 넘겨 읽었었나. 그러고보니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기도 하고.

 그래도 반가운 건 얼마 전에 읽었던 삼봉 정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덕분에 내심 그의 정치 철학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던 나에게 더욱 흥미거리를 안겨다 주었지만, 당시 정도전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철학을 주창했다는 것으로, 또 <정감록>의 예언에 따라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명목으로 죽음을 맞는다. 아름다운 선비라 일컬어지던 그가 왜 죽음을 맞았는지, 어째서 족보에서까지 지워져야 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지어진 이 책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사건 하나를 두고도 여러 방면으로 살펴 보고 있는데, 이는 정여립이 진실로 역모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 역모를 하려고 했다고 모함 당한 것이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진짜냐, 가짜냐를 가리기에 의심스러운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신정일이 제시하는 길을 쭉 따라가 보아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내리기에도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보기에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정여립에 대한 평가는 이런 애매함 때문에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기에 저자도 스스로 평가를 내리려 하기 보다는 사건을 제시해 주고, 독자 스스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만 그것이 사건에 대한 선명한 시각을 제시해 주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알아 두어야 겠다. 더불어 시간이 아닌 사건 중심이기에, 시점 전환에 따라 헷갈리는 부분도 다수 있다고 하겠다. 어쨌거나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기축옥사로 인해 수많은 인재와 죄 없는 양민들이 죽어 나간 이 사건은 분명, 송익필과 정철의 탓이 크다. 다만 이것은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송익필과 정철은 물론 서인들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선조의 영향 또한 엄청나기 때문이다. 문득 김탁환의 <열하광인>에서 꽃미치광이 김진이 했던 "군왕은 공맹의 도리도 주자의 학문도 따르지 않아요. 군왕은 오직 군왕의 도리만을 따른답니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이처럼 선조가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했려 했기에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기축옥사로 이어졌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이런 면에서 보면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면모에 따라 한 나라가 쇠퇴하거나 부흥하거나 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2007 대선에 대한 잡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책은 서산대사의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마라.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느니라."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불문율이지만, 이런 구절을 볼 때마다 떠오르게 되는 것을 어쩌랴. 만약 그들이 눈 쌓인 벌판을 바르게 걸었다면, 만약 그들이 정직한 정치를 펼쳤다면. 霖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